[ 아시아경제 ]
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야. 나에겐 창문이 없어. 수많은 데이터를 보관하는 곳인 만큼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지. 서버와 통신장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먼지가 쌓여도 안 되고 온도와 습도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해. 가장 중요한 건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해야 하는 점이야. 사람들은 나를 '전기 먹는 하마'라고 불러.
서울 가산동에는 SK브로드밴드가 2021년에 지은 도심 최대의 데이터센터(가산센터)가 있어. IT 부하 46㎿ 규모인데 이건 200W짜리 가정용 컴퓨터 23만대를 동시에 돌리는 것과 같은 전기를 사용해. 7㎾ 완속 충전기로 전기자동차 6500대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용량이기도 해.
나는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 이렇게 전기를 많이 쓰는 데이터센터는 해마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전국에 데이터센터 수는 2020년 139개였는데 2024년에는 161개로 증가했어. 5년 새 16% 늘어난 거야. 한국전력이 이들 데이터센터에 공급하겠다고 약속한 계약 전력도 2020년 1.6GW에서 2024년 2.5GW로 늘어났어. 울진 한울원자력발전소의 원전 6호기가 1000㎿급인데, 공사 기간만 6년3개월이 걸렸어. 2499㎿는 이러한 원전을 2~3기 짓는 것과 비슷한 규모야.
앞으로 내가 쓰는 전기량은 더욱 빠르게 늘어날 거야. 2023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29년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수요는 723개, 여기에 쓰이는 전력 용량은 49GW에 이른다고 해. 전문가들은 내가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발전소를 더 짓거나 송전선을 더 깔아야 한다고 얘기해.
특히 AI가 확산하면서 전기가 더욱 필요해졌어. AI 모델을 학습시키거나 챗GPT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동시에 빠르게 처리하는 고성능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있어야 해. AI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6배의 전력을 더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졌어. 전자제품이 고장 나는 가장 큰 원인이 뭔지 알지? 바로 열이야. 내가 쓰는 전기의 40% 정도는 장비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는 데에 들어가. 참고로 나는 18도를 가장 좋아해.
지상 10층, 지하 5층으로 된 연면적 6만9000㎡ 규모의 가산센터도 지하에는 냉방 설비가 있고, 층마다 항온항습 시설을 갖추고 있어.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영업 면적이 약 5만㎡이니까 웬만한 대형 백화점과 비슷한 크기라고 보면 돼. 서버 10만대 이상을 수용하는 하이퍼스케일의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 열이 덜 나게 만드는 기술도 중요해질 것 같아.
하지만 그만큼 걱정도 많아. 앞으로 전기가 어마어마하게 필요하지만 공급받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야. 주거지역이 밀집한 수도권에서는 전자파 걱정으로 주민들이 나를 싫어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전기가 풍부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나를 끌어당기고 싶어 하지. 문제는 이동통신 3사와 같은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의 3분의 2가 나를 싫어하는 수도권에 짓기를 원하고 있어. 통신 설비투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야. 유지보수, 관리 인력들도 수도권으로 출근하기를 선호하는 편이지.
한국전력이 도심에 송·변전 시설을 짓는 것도 어려워졌고, 전력 수급이 불안정해져 최악의 경우 '블랙아웃'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그래서 전기 공급뿐 아니라 어떻게 쓸지는 앞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거야.
정부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만들어 지난해 6월부터 시행 중이야. 이 법을 통해 데이터센터를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거지. 대표적인 규제로 '전력계통영향평가'가 있어. 10㎿ 이상의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지와 직접 고용과 같이 지역 경제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평가받아야 해. 하지만 제도 시행 이후에 통과한 데는 아무도 없어.
어쨌든 통신망이 전국적으로 깔린 우리나라는 데이터센터를 짓기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야. 글로벌 기업들도 한국을 주목하고 있어. 마이크로소프트(MS)는 부산시에 총 6개의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이미 2016년에 시와 협약을 맺었고, 싱가포르의 데이터센터 개발기업 '엠피리온 디지털'은 서울 양재동에 AI에 최적화된 40㎿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어.
전기를 어떻게 확보하냐가 나의 운명을 좌우할 거야. AI 혁명이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AI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이 미래 먹거리가 될 거라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엔비디아의 H100을 올해 안에 1만5000개를 확보해 2027년까지 비수도권에 '국가 AI 컴퓨팅센터'를 구축한다고 발표했어. 전기 확보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온 거야.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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