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을 통한 기업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주주 배당이 인색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식품업계의 '짠물 배당'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일부 식품기업이 배당금을 크게 늘렸지만, 기업가치에 비해 인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오리온의 지난해 결산배당금은 보통주 1주당 2500원으로 1년 전(1250원)보다 두 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당금 총액도 494억원에서 988억원으로 늘었고, 시가배당률도 1.1%에서 2.4%로 1.2%포인트 상승했다. 시가배당률은 배당기준일 주가 대비 배당금액을 나타내는 지표다.
기준일 주가에 따라 주가가 내리면 시가배당률은 높아지고, 시가배당률이 높을수록 해당 회사의 배당 성향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시가배당률이 5% 이상인 기업을 고배당주로 분류한다.
오리온은 지난해 해외 매출이 증가하면서 역대 최대 실적으로 '매출 3조 클럽'에 입성했다. 연결 기준 매출은 3조1043억원, 영업이익은 5436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6.6%, 10.4% 늘었다. 이 같은 실적은 중국·베트남 법인의 성장세 덕으로 지난해 오리온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 비중은 65%까지 늘었다. 오리온은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았지만 해외 법인이 실적 호조를 보였다"며 "재무안정성도 견고해져 순 현금보유액이 1조6000억원 수준"이라며 배당 확대 배경을 밝혔다.
K-푸드 열풍을 주도하며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둔 삼양식품도 주당 배당금을 전년(1100원) 대비 700원 늘린 1800원으로 결정하며 배당금 상향 정책을 시행했다. 중간배당 1500원을 더한 2024년 연간 배당금은 주당 3300원으로 2023년(2100원)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삼양식품의 지난해 매출은 1조1729억원으로 전년 대비 45% 늘었고, 영업이익은 3442억원으로 133% 증가했다. 식품업계 최대업체인 CJ제일제당도 결산배당금 3000원에 분기배당금 3000원을 더해 1년 전(5500원)보다 늘어난 총 6000원을 연간 배당금으로 결정했다.
주요 식품사 대부분은 배당금을 동결하거나 소폭 인상에 그치는 모습이다. 풀무원은 지난해 연간 매출액이 3조원을 돌파하며 최대 실적을 썼고, 영업이익은 50% 뛰어 1000억원 돌파를 목전에 뒀다. 당기순이익도 340억원으로 전년 대비 154.7% 늘었지만 배당은 동결했다. 주당배당금은 102원으로 6년째 동결이다.
동원F&B도 지난해 수출과 기업간거래(B2B) 사업의 수익이 개선되면서 영업이익(1835억원)과 당기순이익(1260억원)이 전년 대비 각각 10.0%, 15.8% 증가하며 수익성 개선을 이뤘지만 배당을 동결했다. 주당 배당금은 800원으로 2년 연속 같은 금액을 유지했고, 배당금 총액도 동일한 154억원이다.
정부가 기업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식품업계가 여전히 주주환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소액주주를 중심으로 주주행동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기업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지녔음에도 주주환원이 부족하다면 행동주의 캠페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농심의 익명 소수주주 '언로킹 밸류(Unlocking Value)'는 농심에 연내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표를 요구하는 공개 주주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지난 1월에 이어 두 번째 공개서한이다.
국내 기업의 배당성향은 주요국과 비교해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는 가운데 순 현금 상태에 있는 기업에 대해선 주주환원 확대 압박이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농심은 배당 확대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도 꼽혔다. 김윤정 LS증권 연구원은 "농심은 배당성향이 최근 3년 평균치 대비 하회한다"며 "자본유보율이 지난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해 순 현금 상태로 주주환원 확대 여력이 있고,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으로 저평가 상태에 있어 배당 확대 주주제안 대상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라고 짚었다.
자사주 관련 규정이 재정비되면서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주주행동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자사주 제도 개정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됐다. 주된 내용은 주권상장법인의 인적 분할시 자사주에 신주배정 제한, 자사주 보유·처분 등 과정에서 공시 대폭 강화, 자사주 취득·처분 과정에서 규제차익 해소 등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말(결산일) 기준 보유 자사주 지분 비중이 5% 이상인 기업들은 향후 계획 공시 의무가 발생하고, 동시에 행동주의 펀드의 이익소각 주주제안 대상이 될 수 있다.
당장 올해 들어 일부 업체가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 주주가치 제고에 나서고 있다. 앞서 현대그린푸드는 약 25억원 규모의 자사주 18만3000여주를 5월 23일까지 장내 매수를 통해 취득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남양유업은 지난 7일 이사회를 열고 약 200억원 규모의 자사주(30만5464주) 소각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두 회사 모두 주주가치 제고를 자사주 취득과 소각의 목적으로 밝혔다.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시중에 유통하는 주식 수가 줄어 주가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한편 이른바 '깜깜이 배당'도 상당 부분 개선됐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모습이다. 그동안 국내 상장사들은 연말에 배당받을 주주를 먼저 정한 뒤 다음 해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배당금을 확정해 깜깜이 배당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2023년 1월부터 금융당국이 맞춰 '선(先) 배당액 확정 후(後) 배당받을 주주 확정'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하면서 투자자들이 배당금액을 확인한 후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이후 권리 주주를 확정하는 배당기준일을 배당액 확정 이후로 옮기는 정관 개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하이트진로, 농심, SPC삼립, 매일유업 등은 여전히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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