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통상 압박이 농축산업 분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관련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미국이 그동안 문제 삼아온 한국 검역 제도가 한미 통상 협상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정부에 따르면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 만나 무역 정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측은 한국의 위생·검역(SPS) 문제를 지적하며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과 관련한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하는 사안은 한국의 미국산 소고기 월령 제한 조치다. 한국은 광우병 위험을 고려해 2008년부터 30개월령 미만 미국산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30개월령 미만 소의 광우병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하지만 미국 축산업계는 중국과 일본, 대만 등은 이미 월령 제한을 해제했다며 한국도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전국소고기협회(NCBA)는 이달 초 USTR에 월령 제한 폐지를 공식 요청했다. USTR 역시 매년 발간하는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한국의 소고기 수입 제한을 문제 삼아 왔다.
하지만 국내 축산농가는 월령 제한 폐지가 한우 시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월령 제한을 폐지하면 광우병에 대한 소비자 우려가 커지고 한우 소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한우협회는 성명을 내고 "국회와 정부는 농민의 생존권과 국민 건강권을 위해 이를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아직 미국과 관련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미국산 소고기 월령 제한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요청이 없었고 미국 측 구체적인 입장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소고기뿐만 아니라 과일류 검역 문제도 통상 압박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 농산물 검역을 과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진행하는 구조다. 농산물 수입 시 외래 병해충 유입 위험을 평가하고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수입 위험 분석 절차는 8단계로 이뤄지고 법적으로 일부 절차를 생략하거나 간소화할 수 없다.
실제 우리나라가 농산물을 수입하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8.1년이다. 현재 한국은 미국을 포함한 11개국과 사과 수입 검역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협상이 완료된 국가는 없다. 일본은 1992년 검역 협상 신청이 받아들여진 이후 5단계까지 진행됐으며, 미국은 1993년 협상이 시작됐으나 현재 3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와 함께 유전자 변형 생물(GMO) 농산물 수입 규제 완화 요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수입 농산물의 안전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며 "안전성 평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GMO 농산물 수입 비율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 콩과 옥수수 등을 GMO 작물로 수입하고 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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