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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정담]80년 장수기업 '샘표家 3세' 박진선 대표의 '직원 행복론'
    입력 2025.03.19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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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직원들의 행복."

장수 기업의 비결은 다소 철학적이었다. 내년 창사 80주년을 맞는 샘표식품의 박진선 대표(75)는 '이익 극대화'라는 기업의 흔한 목표대신 직원들의 행복을 장수 비결로 꼽은 것이다. 이는 인터뷰에 동석한 임직원들의 함박 웃음에서 증명됐다. 박 대표는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웃음을 보였다.

샘표식품은 창업주 박규회 회장의 '직원은 가족이고, 사람이 중요하다'는 경영철학에 따라 그동안 한 차례로 구조조정이나 감원으로 직원을 내보낸 적이 없다. 가업을 물려받은 박 대표도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기업 가치의 최우선으로 뒀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사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안전사고를 직접 보고받고 있다. 박 대표는 "고객과 직원이 회사의 존립과 성장의 기반"이라며 "직원이 눈이 내려 미끄러졌다는 내용도 보고로 올라온다"고 전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샘표식품 본사 기념관에서 만난 박 대표는 뚝배기처럼 질박해 보이면서도, 현안에 대해선 강단 있게 파고드는 풍격(風格)이 국내 대표 장수 기업 수장의 면모를 보였다.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가 12일 서울 중구 샘표 헤리티지 스페이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박 대표는 1946년 8월 샘표식품을 설립한 박규회 회장의 손주로, 아버지인 박승복 전 샘표식품 회장에 이어 3대째 가업을 맡아 경영하고 있다. 소매가 낡은 와이셔츠를 입은 모습은 '오너 3세'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검소했다.

'샘표간장'으로 유명한 샘표식품은 요리 에센스 연두와 샘표 토장, 폰타나, 백년동안, 질러, 순작, 새미네부엌, 차오차이 등 제품을 확대하며 성장한 식품 기업이다. 간장 점유율은 전체 시장의 50%가 넘는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4049억원, 영업이익은 64억원이다.

1950년생인 박 대표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전자공학 석사,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를 마쳤다. 미국 빌라노바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94년 샘표식품에 입사했다. 뉴욕 지사장, 기획실장을 거쳐 1997년부터 샘표식품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박 대표는 최근 필라테스와 실내 걷기운동으로 체력을 관리한다. 특히 몸의 균형과 올바른 자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나가던 직원들의 자세까지 세심하게 살필 정도다. 이같은 박 대표의 모습은 샘표식품이 전통 발효식품 전문 기업으로 '외길'을 걸어온 모습과 닮았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절약이 몸에 밴 듯하다. 와이셔츠 소매가 다 해졌다

▲선대 회장님들의 개인적인 삶은 검소했다. 아버지(박승복 선대 회장)는 달력 뒷면과 이면지를 활용해 메모지로 썼다. 근검절약의 생활 태도를 그대로 배운 것 같다.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10년 된 자동차를 물려받아 2년 전까지 타고 다녔다. 주행거리가 40만㎞ 정도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갑자기 차가 섰다. 고치려고 했는데 더는 못 탄다고 하더라. 지금은 새 차를 타고 다닌다. (웃음) 그래도 최신 기기는 다 경험해보려고 한다.

-철학 교수에서 경영인으로 이력이 남다르다

▲아버지도 한국식산은행(현 한국산업은행 전신), 재무부 기획관리실장,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등을 지내다 샘표를 운영했다. 회사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할아버지(박규회 회장)가 아셨던 것 같다. 마흔살에 샘표에 입사했는데, 처음에는 기업 운영을 거부했었다. 10년간 미국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교수로 지내며 회사와 거리를 뒀다.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회사 상황을 보고 위기를 느껴 생각을 바꿨다. 미국은 격변하고 있는데, 회사는 간장 공장을 운영하는 회사 그대로였다. 1994년에 회사에 입사했고, 1997년에 대표로 취임했다.

-대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지킨 신념이 있나

▲공급이 많은 상황에서 다른 회사와 경쟁하려면 저렴하게 파는 것 밖에 없는데 그러면 살아남을 수 없다. 솔직히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웃음) 사람들이 필요로 하면서 다른 회사와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샘표는 매출의 5%가량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주변에서는 "간장만 잘 담그면 되지, 연구할 필요가 있냐"고 말하기도 했다. 발효식품 기업이야말로 연구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발효식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생물 연구가 필요하다. 미생물 기술을 어느 정도 쌓아 올리면 그 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사업도 할 수 있다. 요리에센스 연두가 샘표의 발표기술이 집약된 제품이다. 연두는 콩을 발효해 얻은 천연 맛 성분이 풍부하고, 채수를 더 해 다른 양념이나 부재료 없이 요리를 맛있게 만들 수 있다.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가 12일 샘표의 70년역사가 담긴 서울 중구 샘표 헤리티지 스페이스에서 식사를 마친 뒤 전시물을 보며 걷고 있다. 강진형 기자

-샘표의 인재상은

▲겸손하고, 사심 없으며, 열정적인 사람이다. 인재상을 정할 때 '어떤 사람과 일하면 행복할까'가 기준이었다. '내 가족이 먹지 못하는 것은 절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샘표의 경영 이념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윤리경영을 하려면 서로 간의 신뢰가 필요하다.

-최근 K-푸드 열풍이 뜨겁다

▲샘표의 해외 진출은 단순한 매출 확대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2010년 초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최고 요리 행사 '마드리드 퓨전'에 참석했을 때다. 500여명의 셰프들이 자기의 요리법을 공개하고, 경연을 펼쳤다. 특히 본인만의 비법을 자랑하는 셰프들의 모습이 의아했다. 한국에서는 며느리에게도 요리법을 알려주지 않는데 셰프들은 모든 과정을 공개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해할 수 없어 사흘을 꼬박 8시간씩 행사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지막 날 오전에 문득 "요리를 기능이 아닌 예술로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최정윤 연구실장이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한국·대만 의장으로 임명됐다.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은 미쉐린 가이드와 함께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미식 평가 가이드다. 세계 50대 레스토랑을 선정하며, 올해도 6월에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2025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을 발표한다. 의장은 해당 지역 미식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로 선정된다.

최정윤 실장은 우리 맛 연구와 한국 전통 장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장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한식의 기본이 되는 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현지 식재료와 요리법에 적용해 150여개의 레시피를 완성해 냈다. 그동안 우리는 한국의 식문화가 해외 식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데 주력했다. 간장 한 병 더 파는 것보다 우리 식문화를 세계에 제대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최 실장이 의장으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것이다. 최근 해외에서 한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 문제는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1만~3만원대 한식당들의 질이 올라갈 수 있도록 다양한 소스 및 제품을 만들 것이다.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가 12일 서울 중구 샘표 헤리티지 스페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식품회사는 안전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샘표는 고객과 직원이 회사의 존립과 성장의 기반이다. 고객과 직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최근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10년 전쯤 일이다. 간장을 생산하는 경기 이천 공장은 화재가 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1년에 3~4번씩 작은 사고가 생기더라. 그래서 컨설팅 회사에 맡겨 소방 점검을 실시했다. 시설을 바꾸려면 25억원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1986년 준공된 공장인데, 그 당시 소방법을 따르면 아무 문제 없다며 직원들이 공사를 반대했다. 절약하려는 마음이겠지만,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샘표는 모든 안전사고는 직접 보고하게 돼 있다. '직원이 눈이 내려 미끄러졌다'는 내용도 보고로 올라온다.

-한국식품산업협회장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아버지도 식품산업협회장을 10년간 역임했다. 당시 협회장은 억대 연봉을 받고, 차량과 기사도 있는 자리였다. 회장으로 지낸 동안 아버지는 비상근으로 바꾸고, 연봉도 없앴다. 업무 추진비도 주로 회삿돈으로 썼다. 협회가 잘 되려면 재정적인 기반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부산에 연구소도 더 지었다. 협회에 애정이 많다. 협회가 성장했으면 좋겠고, 우리나라 식문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추진하길 바란다. 사실 6년 전에 회장직을 제안받았는데, 도저히 할 상황이 안돼 고사했다. 이제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식품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협회장의 역할, 덕목은 무엇일까.

▲협회는 192개 식품회사가 회원사다. 회장직은 회원사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개인적인 이익과 안위를 위한 자리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관계, 식품 사업을 위축시키는 규제 개혁 등 개인회사가 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협회가 대신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애로사항도 살펴봐야 한다. 중소기업들은 자금력, 실행력, 홍보력이 약하다. 경기침체로 어려운 상황 중에 협회에서 지원해주면 중소기업의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본다. 소비자단체와의 유연한 관계도 맺어야 한다. 이 역할을 하려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기업이 맡아야 한다. 협회 예산액은 500억원 규모이며, 이익이 160억~170억원이다. 식품 산업을 끌어올리기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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