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조선은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 문호를 개방했지만,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이에 일찍이 은행 제도를 도입한 일본이 대량 생산된 상품을 팔기 위해 조선에 들어와 금융과 화폐를 무기로 상업 시장을 교란했고 부산에 제일은행 출장소를 설치해 일본 상인들에게 저리 자금을 지원해 조선 상인들은 점점 무너져갔다.
경제 위기를 맞이한 조선 정부는 화폐 개혁을 추진하고,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조세의 금납화를 도입하여 세금을 쌀이나 포목 대신 화폐로 걷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화폐를 유통하고 보관할 은행의 필요성이 커졌고, 1899년 고종 황제의 내탕금을 자본금으로 삼고 민족 자본가들과 상인들의 출자금이 더해져 최초의 민족은행 대한천일은행이 설립되었다.
이 은행은 대출, 예금, 국고금 수납 등의 금융 업무를 통해 조선 경제의 근대화를 촉진했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대한천일은행은 일본의 자본 통제 아래 운영 되었고, 조선상업은행으로 개칭된 후 여러 변화를 거쳐 현재의 우리은행으로 이어졌다.
대한천일은행은 한국 최초의 민족 자본 은행으로, 한국 경제 자립과 민족 자본의 결집을 도모한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출처 : 유튜브 채널 '이야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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