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신창재 회장과 재무적 투자자(FI)의 장기적 분쟁이 끝을 향하고 있습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은 2012년 교보생명 지분 24%(어피니티 9.05%, IMM PE 5.23%, EQT파트너스 5.23%, 싱가포르투자청 4.50%)를 주당 24만5000원에 총 1조2054억 원 규모로 매입하였습니다. 이 때 2015년까지 상장하지 않으면 풋옵션 행사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된 주주간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교보생명이 약속한 기간 내 상장에 실패하였고, 2018년 어피니티가 풋옵션 행사하며 제시한 주식가치는 주당 40만 9000원이었습니다.
신 회장 측은 어피너티 컨소시엄이 산출한 가격이 교보생명 본질 가치보다 과도하게 높다며 가격 산정 방식 등에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또한 교보생명은 형사고발을 불사하는 등 주주간 계약에 정해진 절차이행을 전면 거부하였습니다. 이에 어피너티측은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교보생명 측은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안진회계법인에 대한 형사 고발을 두고 "가치평가보고서 가격이 너무 부풀려져 묵인할 수 없었다"는 증언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공인회계사법 위반으로 공소제기된 안진회계법인 회계사들과 어피니티 임원이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1심과 2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데 이어, 2025년 1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1, 2심 법원은 전문가적 판단 없이 어피니티 측의 일방적 지시에 따라 가치 평가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볼 객관적인 증거가 없고,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도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원 역시 구 공인회계사법에서의 허위보고, 부정한 청탁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원심 판단을 유지하였습니다.
이렇게 형사적 분쟁은 어피니티와 가치 평가를 담당했던 회계사들의 ‘무죄’ 판결로 종결되었지만, 상사적 분쟁은 계속되었었습니다.
어피니티는 2019년 3월 신 회장을 상대로 ICC에 중재를 제기했습니다. 2021년 1차 중재 당시 중재재판부는 어피니티가 요구한 41만원을 이행할 의무가 없으며 상호 합의에 따라 재산정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고 판정했습니다.
신 회장 측은 어피니티가 요구하는 41만원의 절반 수준인 주당 19만원을 주장하고 있으며 어피니티 측은 2022년 2월 2차 중재를 신청했습니다.
이에 2차 중재에서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신 회장이 어피니티의 풋옵션 주식 FMV(Fair Market Value, 공정한 시장가치)를 산정할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해야 한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30일 내 감정평가인을 선임하고 30일 내에 평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하루에 20만 달러의 페널티를 부과 받는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주주간 계약에 따르면 FMV 산출 과정은 양측이 각각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해 평가한 FMV의 차이가 10% 이내이면 두 가격의 평균을 행사가격으로 인정합니다. 단 차이가 10% 이상일 경우 어피니티가 제3의 평가기관 3곳을 제시하고 그 중 하나를 신 회장이 택하면 그 평가기관이 제시한 가격이 풋옵션 가격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피티니 컨소시엄 중 큰 축이었던 어피티니와 싱가포르 투자청은 보유 지분을 각 일본계 SBI그룹과 신한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에 매각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IB업계에서 들려왔습니다.
양사의 매각 단가는 투자 원금(24만5000원, 액면분할 전 기준)보다 소폭 낮은 주당 23만4000원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2018년 풋옵션을 행사하며 제시했던 가격 약 40만 원과 비교하면 상당 부분 내려 왔습니다. 어피니티와 싱가포르투자청 측은 계약상 풋옵션 조건을 무리하게 주장하여 회사와의 장기적 분쟁을 지속하기보다, 배당을 포함하면 적어도 큰 손실을 보지는 않는 수준에서 주식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국제중재재판부 결정과 주주간 계약이 정한대로 가치평가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른 풋옵션 가격으로 결정해야 하며, 최소 30만 원은 넘어야 합의에 응한다는 주주도 있기에 주주와의 분쟁을 어떻게 완전 종결할 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신 회장측은 EY한영회계법인을 평가기관으로 선정하였지만 여전히 풋옵션 가격을 제시하고 있지 않고 있고, 2~3달 후 가격 산정을 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평가기관을 통한 가격제시보다 남아있는 분쟁 주주와의 합의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교보생명 분쟁의 시초가 된 ‘기업가치’, 비상장 주식의 기업가치 산정은 상장사의 가격과 비교해 분쟁의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애당초 교보생명이 적절한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상장에 성공하였다면 분쟁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 이후 보험사 자본규제가 강화되고,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생명보험사 수입은 줄어드는데 지출이 많아지는 등 경영 환경이 어려워지자, 교보생명 기업가치가 크게 오르지 못했고 상장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주주들과의 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원금 또는 장기간의 비용을 포함한 원금 이상의 투자금 회수가 필요한 주주들과 상장에는 실패하였지만 적정한 가격으로 주주들과의 분쟁을 마무리하고 싶은 교보생명의 입장이 나뉘면서 답을 찾지 못한 바 있습니다.
기업의 가치평가는 기업 자체 뿐만 아니라 투자자에게도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상장 기업의 시장 가치, 즉 시가는 주가에 발행 주식을 곱하여 제시할 수 있지만, 비상장 기업의 가치 평가 프로세스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매우 복잡한 공식이 적용됩니다.
공개적으로 제시된 재무 정보 등 주요 정보도 상장사와 비교해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비교기업이 적거나 없다면 더욱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모든 계산을 가정 및 추정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확한 가치라고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피니티 측이 풋옵션 행사 당시 제시하였던 기업가치 평가보고서가 문제가 되어 형사 고발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새롭게 주식가치 평가기관으로 선정된 EY한영회계법인이 교보생명의 공정가치를 어떻게 제시할지에 관심이 모아졌었습니다.‘기업 밸류업’이 강조되는 최근 자본시장 환경에서 교보생명 기업가치 산정에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3·1절을 맞아 일제 강점기에 맞서 싸운 독립 운동가들을 지원했던 기업을 살펴보니 교보생명이 거론됩니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는 독립 운동가들을 적극 지원한 대표 기업인이죠.
주주와의 장기적 분쟁은 분명 기업가치 상승에 도움이 될 리 없습니다. 주주와의 장기적 분쟁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지배구조 개선 및 사업 재편으로 새로운 성장을 시도하는 교보생명, 그 본질적 가치를 하루빨리 되찾을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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