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0
5
0
오피니언
[최보기의 책보기] 법관의 법과 양심과 기개에 대하여
    온라인뉴스팀
    입력 2025.02.03 10:29
    0

『영원히 정의의 편에』 홍윤오 지음/ 도서출판 새빛
『영원히 정의의 편에』 홍윤오 지음/ 도서출판 새빛

1974년 7월 9일, 국방부 영내 육군본부에 마련된 비상보통군법회의 법정에서 ‘민청학련’ 사건 결심공판이 있었는데 김병곤, 김지하, 나병식, 여정남, 유인태, 이철, 이현배 등 7명에게 사형이 구형되었고 이듬해 대법원의 원심 확정 후 18시간 만에 일부의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한다. 군인도 아닌 민간인 학생을 군법회의에서 재판하고 사형했다는 것인데 무슨 이런 시대가 있었는지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하다. 군사독재의 한복판에 용기 있게 나서서 이들을 변호했던 변호사는 그날 법정의 판검사에게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좋다. 저항할 수 있다. 변호인으로서 차라리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것만 못한 심정이다”라며 저항의 변론을 했다가 그 역시 감옥에 가야 했다. ‘1세대 인권변호사 고(故) 강신옥’의 육성회고록 『영원히 정의의 편에』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의 서문에는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의 시 <불굴 Invictus>의 전문이 인용됐는데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문이 아무리 좁고(It matters not how strait the gate), 죄악의 기록이 아무리 가득 차 있어도(How charged with punishments the scroll),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고(I am the master oh my fate),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I am the captain of my soul). 1936년 출생한 강신옥은 서울법대를 졸업, 사법고시에 합격해 1962년 판사가 됐지만 1년 3개월 만에 스스로 사표를 던지고 변호사가 됐다. 독재에 고분고분하면 어마어마한 권력이 주어졌던 판사의 자리를 걷어찬 것도, 젊은 나이에 전업 변호사로 나선 것도 당시에는 극히 이례적이었다. <불굴>과 정확히 맥락이 통한다.

독재정권의 부당함에 항의해 판사복을 벗어 던질 때 그는 “자유는 마음껏 즐겨보는 대신, 그 결과는 운명으로 감수하고 책임질 각오나 단단히 가져야겠다”고 다짐했고, 나중에는 ‘운명은 결과론적 개념이다. 나는 운명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상황 논리에 소극적으로 순응하는 삶은 살아오지 않았다.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인생의 진로를 담대하게 개척해 왔다고 자부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와 같은 기개가 요구되는 때에 종종 직면하기 마련이다. 법조인은 이러한 기개에 더하여 양심 또한 필요한 직업일 것이다’라며 자기 자신을 확인했다. 그가 1979년 ‘10.26 김재규’의 변호를 맡아 진심을 다했던 ‘기개와 양심’의 배경은 이토록 역사가 깊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한 명만 있었어도 불벼락을 피할 수 있었을 터, 대한민국에는 억압과 야만의 시대에 다행히 강신옥 변호사가 있었다. 진심으로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애국청년이라면, 현직 법조인이거나 예비 법조인이라면 『영원히 정의의 편에』를 한 번은 정독하는 양심과 성의를 기대한다. 기개는 각자의 몫일지라도.

최보기 (책글문화네트워크 대표)

    #독재
    #조인
    #양심
    #강신옥
    #운명
    #정의
    #변호사
    #보기
    #새빛
    #법관
포인트 뉴스 모아보기
트렌드 뉴스 모아보기
이 기사, 어떠셨나요?
  • 기뻐요
  • 기뻐요
  • 0
  • 응원해요
  • 응원해요
  • 0
  • 실망이에요
  • 실망이에요
  • 0
  • 슬퍼요
  • 슬퍼요
  • 0
댓글
정보작성하신 댓글이 타인의 명예훼손, 모욕, 성희롱, 허위사실 유포 등에 해당할 경우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오피니언 주요뉴스
  • 1
  • 민주당 의총서 그가 말할 땐 모두가 쉿!…‘전략통’ 천준호[주간 여의도 Who?]
    서울신문
    0
  • 민주당 의총서 그가 말할 땐 모두가 쉿!…‘전략통’ 천준호[주간 여의도 Who?]
  • 2
  • 전지전능 AI 키우는 나는 유령 노동자[비하人드 AI]
    서울신문
    0
  • 전지전능 AI 키우는 나는 유령 노동자[비하人드 AI]
  • 3
  • [인사]호반그룹
    중앙이코노미뉴스
    0
  • [인사]호반그룹
  • 4
  • [부고]이태형(하나증권 롯데월드타워WM센터장)씨 모친상 
    중앙이코노미뉴스
    0
  • [부고]이태형(하나증권 롯데월드타워WM센터장)씨 모친상 
  • 5
  • ‘AI 육아’ 뛰어든 퇴직자… “1세 아이라 생각하고 만물 가르쳐요”[비하人드 AI]
    서울신문
    0
  • ‘AI 육아’ 뛰어든 퇴직자… “1세 아이라 생각하고 만물 가르쳐요”[비하人드 AI]
  • 6
  • [인사] 생명보험협회
    중앙이코노미뉴스
    0
  • [인사] 생명보험협회
  • 7
  • 머리 나쁜 물고기? 어류도 사람 구분해 인식한다 [달콤한 사이언스]
    서울신문
    0
  • 머리 나쁜 물고기? 어류도 사람 구분해 인식한다 [달콤한 사이언스]
  • 8
  • 운동이 암 환자 장기 생존율 높인다 [달콤한 사이언스]
    서울신문
    0
  • 운동이 암 환자 장기 생존율 높인다 [달콤한 사이언스]
  • 9
  • 후보자 기부행위 금지… 지위 이용한 선거운동도 허용 안 돼
    서울신문
    0
  • 후보자 기부행위 금지… 지위 이용한 선거운동도 허용 안 돼
  • 10
  •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체육활동으로 극복해볼까[생생우동]
    서울신문
    0
  •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체육활동으로 극복해볼까[생생우동]
트렌드 뉴스
    최신뉴스
    인기뉴스
닫기
  • 뉴스
  • 투표
  • 게임
  •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