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마켓노트] 빅컷에도 불확실성 큰 미국 통화정책
    김영대 기자
    입력 2024.10.05 10:30
연준 금리 인하
올해 9월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 발표 후 로스앤젤레스의 한 부동산 사무실이 게시한 주택 담보 대출 금리. AFP_연합뉴스

올해 9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한 번에 0.5% 포인트를 내린 빅컷(big cut)이다. 역사적으로 빅컷은 주식시장에 나쁜 신호로 해석됐다. 시장은 통상적인 금리 조정 폭인 0.25% 포인트를 넘어서는 0.5% 포인트의 인하를 경제 상황이 그만큼 나쁘다는 증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연준이 기준금리를 낮추는 금융완화 사이클은 세 번 나타났다. IT 버블 붕괴 국면(2001년 1월~2023년 6월), 미국 부동산 시장 붕괴와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국면(2007년 9월~2014년 10월, 양적완화 기간 포함), 단기 자금시장 교란과 코로나19 팬데믹 국면(2019년 6월~2022년 2월, 양적완화 기간 포함) 등이다.

2001년과 2007년에 시작된 금융완화 국면에서 연준은 첫 번째 금리 인하를 0.5% 포인트로 시작했다. 두 번 모두 연준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1년 1월의 금리 인하는 직전 해인 2000년에 기술주 거품이 빠지면서 나스닥지수가 50% 이상 급락한 이후 단행됐다.

IT산업의 과잉투자 후유증이 미국 경제의 이중침체(double-dip) 진입 논란으로 이어지는 와중에 연준은 첫 번째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결과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7년 9월에 단행된 금리 인하도 한 박자 늦었다. 역시 0.5% 포인트 인하로 금리 인하 사이클이 개시됐다. 당시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번지기 시작했던 때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산하의 헤지펀드가 유동성 위기에 처했고, 미국 최대 모기지 업체 컨트리와이드파이낸셜도 파산 위기에 내몰려 있었다.

연준의 금리 인하는 밀려오는 위기의 파도를 막지 못했고, 이후 베어스턴스와 리먼 브러더스 등은 파산했다.

2019년 6월에는 0.25% 포인트를 낮추는 베이비 스탭으로 금리 인하가 시작됐다. 당시 이는 명실상부한 선제적 인하였다. 단기 자금시장의 교란이 일시적으로 나타났지만 중앙은행이 굳이 금리를 낮춰야 할 명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연준 부의장이었던 앨런 블라인더는 당시 금리 인하에 '보험용'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당연히 주식시장은 금리 인하를 호재로 받아들였다.

이번 금리 인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연준이 보내는 메시지는 모호하다. 9월 FOMC 이후의 기자회견에서 파월 연준 의장은 이번 빅컷에도 불구하고 연준의 페이스가 급격히 금리 인하로 내달리는(rush) 페이스는 아니라고 밝혔다.

연준 내에서도 0.5% 포인트 인하는 만장일치가 아니었다. 미셀 바우먼 연준 이사는 이번 FOMC에서 0.25% 포인트 인하를 주장하며 명시적인 반대표를 행사했다. 연준 이사가 FOMC 결정에 반해 소수의견을 내놓은 것은 2005년 9월 이후 처음이다.

FOMC 구성원들의 금리 전망이 투영되는 점도표 역시 매우 분열적이었다. FOMC 위원 19명 중 9명은 연내 두 번 남은 FOMC(11월 8일, 12월 19일)에서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내릴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11월과 12월 FOMC에서 각각 0.25% 포인트씩 내리는 경로다. 빅컷으로 출발한 금리 인하가 감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다름 아니다.

더 느린 속도를 전망하는 FOMC 멤버도 7명이나 됐다. 이들은 연말까지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 폭이 0.25% 포인트에 그칠 것이란 기대를 점도표에 투영했다. 11월과 12월 FOMC 중 한 차례는 0.25% 포인트 인하, 한 차례는 동결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과거에는 0.5% 포인트의 금리 인하가 주식시장에 악재로 작용했다. 상황이 나빠진 것을 모두 인지한 다음 후행적으로 금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금리 인하 직후 연준 관계자들이 보여준 언사가 과거와 다르다.

미국 경제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지만, 경기가 일방향의 침체로 가고 있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최근 발표되는 미국 경제지표들은 경기둔화 우려와 견조한 경기라는 상반된 내용이 혼재돼 있다. 고용지표와 제조업지수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시사하는 반면, 소비는 꺾일 기미가 없다.

무엇보다도 2024년 GDP 성장률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면서 2.5%에 달할 정도로 총량적 성장세가 견조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미국과 같은 큰 덩치의 경제가 한국의 성장률을 상회하거나 비슷한 성장률을 나타낸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중기적으로 보면 미국은 빅컷에서 연상될 수 있는 경기 침체 우려보다 인플레이션 부담의 지속과 연준의 더딘 금리 인하에 따른 고금리 스트레스가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려 속에서도 미국 경기가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출 때문이다. 올해 2분기에도 미국 연방정부의 지출은 6조8천억 달러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던 2021년 2분기 이후 최대치였다. 정부가 이렇게 돈을 쓰면 경기가 꺾이기 어렵고, 그 반대급부는 경직적 인플레이션이다.

연준이 9월 FOMC에서 빅컷을 단행했음에도 이후 행보는 오리무중이다. 경기 침체보다는 시장의 관성적인 기대치보다 현저히 더딘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예상보다 경직적인 인플레이션, 간헐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시장금리의 상승세가 주식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신영증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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