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비자가 목돈이 있어 은행을 찾았다. 그는 예금보다 더 큰 이자를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 창구 직원으로부터 "예금보다 더 큰 수익을 주면서 안전한 상품"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가입절차도 단순했다. 서류에서 동그라미 쳐 준 곳에 사인하고 ‘이 상품에 가입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녹음하면 된다고 했다. 상품 가입한 지 1년이 지나고 은행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녹인(Knock-In·원금손실)됐다고.
올해 초 일어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으로 발생한 피해는 대개 이런 식으로 발생했다. 누구의 잘못이 클까.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직원과 성과지표(KPI)를 내세워 영업에 내몰리게 만든 은행이 잘못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탓도 있다. 불완전판매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가까이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금융사고가 있었다. 금융당국은 녹취절차 마련·KPI 통한 판매조장 금지 등 재발방지책을 내놨다. 결과는 모두가 알듯이 비슷했다.
상품 판매 규제를 강화하고 은행 영업을 막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고객 스스로가 상품을 잘 모르면 가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경험이 금융교육을 통해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 금융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시작해보니 전 국민 대상 금융교육은 어려웠다. 그렇다면 필요할 때 적절한 교육을 해야 한다. 금감원이 실시한 조사에서 복리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상품 특성을 파악하지 않고 투자하는 금융소비자가 대다수였다. 적시 적소에 수요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육이 당장 필요하다. 처음 대출을 받을 때와 같이 최소한의 지식이 필요할 때 기본 지식을 알려줘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부터 금융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금융과 경제생활’이 선택과목으로 신설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초등학생부터 가르쳐야 한다. 교육부가 나서서 학년별 맞춤 교육과정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처 간 칸막이도 극복해야 한다. 금융위원회·한국은행·기획재정부 등 주체가 다양해 각자만의 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 금융교육 관련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금융정책을 통할하는 금융위의 경우 금융소비자법에 명시된 정례회의(1년 2회)만 챙기는 것을 넘어 지속적인 정책 발굴을 해야 한다.
취재하면서 계속 떠올랐던 장면이 있다. 초등학교 정규수업에서 아이들이 금융교육용 부루마불 게임을 하던 모습이다. 각자의 전략을 가지고 자산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이런 교육을 받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게 금융교육을 받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차이가 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의 말처럼 재밌게, 어렸을 때부터 금융에 대해 배운다면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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