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마켓노트] 유동성이 주가 밀어 올리는 독일 증시
    김영대 기자
    입력 2024.11.02 10:30

자산시장과 펀더멘털의 괴리

독일 GDP는 작년에 역성장(-0.3%)한 데 이어 올해도 -0.2%로 2년 연속 역성장이 예상된다. 바람에 나부끼는 독일 국기.
[촬영 안철수]

자산 가격은 펀더멘털과 유동성의 함수다. 펀더멘털은 향후 그 자산이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되는 현금 흐름의 현재 가치이고, 유동성은 자산을 매수하고자 하는 가용 현금의 총량이다. 자산 가격 변화를 펀더멘털과 유동성 요인으로 분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근 글로벌 증시의 강세는 유동성 요인이 큰 것 같다.

미국은 견고한 펀더멘털을 고려하면 올해 9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단행한 빅컷(0.5% 포인트 기준금리 인하)이 다소 과한 처방이라는 생각이고, 유럽은 펀더멘털은 나쁘지만 유동성이 주가를 밀어 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와 ECB(유럽중앙은행)의 처방은 자산시장에서 풍선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준은 9월 FOMC에서 빅컷이라는 나름의 파격을 선택했지만 이후 발표된 미국의 경제지표들은 견조했다. 우려를 낳았던 고용지표는 9~10월을 거치면서 확연히 개선됐고, 민간 소비는 꺾일 기미가 없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GDP(국내총생산) 추정 메뉴인 'GDP Now'는 미국의 3분기 GDP 성장률을 전기 대비 연율 3.4%로 제시하고 있다. 또 블룸버그 서베이 기준 2024년 GDP 성장률 컨센서스는 2.5%에서 2.6%로, 2025년 컨센서스는 1.7%에서 1.8%로 상향 조정됐다.

경기가 좋은데 물가가 안정되긴 어렵다. 물가상승률이 경향적으로 둔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9월 CPI(소비자물가지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근원물가를 중심으로 여전히 불안 요인이 남아 있다.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우려의 재점화와 연준 기준금리 인하 기대 후퇴, 장기금리 상승이 악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은 양호한 경기 상황인데도 파격적으로 금리 인하가 주식시장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유동성이 주가를 밀어 올리는 효과는 유럽에서 더 극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국가가 독일이다. 독일 경제가 직면한 어려움은 한국 언론을 통해서도 자주 접한다. 독일 경제의 부진은 복합적 요인에 기인한다. 독일은 유럽에서 중국 경제에 대한 노출도가 가장 큰 국가다. 중국 경제가 호황일 때는 대중 수출이 성장에 크게 기여했지만 최근 수년 동안에는 중국의 경기 부진으로 독일도 타격을 받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독일 경제의 약점이다. 독일은 오랫동안 러시아와 밀월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스 등의 에너지를 러시아로부터 구매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적성국으로 바뀌며 에너지 수급에 큰 차질을 경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산업의 부진도 독일 경제에 타격을 준다. 내연기관차 생산에서 일가를 이뤘던 독일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등 차세대 자동차 개발 경쟁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

독일 GDP는 작년에 -0.3%의 역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독일 재무부가 올해 10월 초 제시한 성장률 전망치도 -0.2%다. 2년 연속 역성장은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독일 DAX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독일 GDP 성장률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시기는 통독의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던 2002~2003년이 유일했는데, 당시 DAX지수는 29%나 하락했다. 반면 2023~2024년에는 사상 두 번째의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유력하지만 DAX지수는 41%의 상승률(2022년 말~2024년 10월 18일)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와 주가의 괴리가 매우 크다. 돈의 힘이 아니고선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힘들다.

경제에 풀린 돈의 양이 많다는 사실이 실물경제와 대비되는 자산시장의 호황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 길게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짧게 보면 코로나 팬데믹 직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앙은행발 유동성 폭증이 있었다.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의 자산은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최초에 경제에 주입한 본원통화에 가까운 개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중앙은행이 풀어낸 본원통화 규모는 압도적으로 커졌다. 유로존 GDP 대비 ECB 자산 비율은 2024년 9월 말 43.8%에 달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이 비율은 13.5%에 불과했다.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2023년 3월부터 양적긴축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유로존 GDP 대비 ECB 자산 비율은 코로나 팬데믹 직전이었던 2020년 2월(38.9%)보다 높다. GDP로 대표되는 실물경제 대비 화폐 영역에서 풀리는 돈이 훨씬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유동성이 주가를 설명하는 주된 요인이라면 경기 둔화 우려보다 인플레이션과 장기 금리 상승이 주식시장이 직면할 수 있는 주된 리스크 요인이 아닐까 싶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신영증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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