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보험사 '실적 뻥튀기' 논란이 일었던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을 개선하고 보험 건전성 감독을 강화한다. 특히 당국은 앞으로 무·저해지보험의 상품 리스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지급여력제도(K-ICS·킥스) 해지율 적용기준을 정교화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4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소비자학회 등 학계·유관기관·연구기관·보험회사·보험협회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제4차 보험개혁회의를 개최해 IFRS17 안착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확정했다.
지난해 보험사에 도입된 IFRS17은 '시가평가'와 '발생주의'가 원칙이다. 결산 시점마다 손해율·해지율 등 최적의 계리가정을 반영하고 시장금리 등 경제적 상황을 감안한 할인율로 시가를 평가한다. 발생주의는 보험계약으로 인한 수익과 비용을 전체 계약기간에 골고루 나눠 인식하는 것이다. IFRS17 체제에서 보험계약마진(CSM)이 보험사 이익의 핵심이자 건전성 관리 수단으로 부각하면서 보험사 간 신계약 유치경쟁이 치열했다. 이 과정에서 과당경쟁과 함께 낙관적인 해지율 가정을 통한 실적 부풀리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당국이 IFRS17 주요 개선안으로 주목한 건 무·저해지 보험상품이다. 무·저해지 보험은 보험료가 저렴한 대신 중도해지 시 계약자에게 돌아가는 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상품이다. 보통 해지율이 높으면 보험사 순자산에 긍정적이고, 해지율이 낮으면 부정적이다. 당국은 보험사들이 해지율을 너무 높게 가정했다고 보고 있다. 당국은 앞으로 킥스 산출 시 무·저해지상품의 해지위험은 일반(표준형) 상품과 분리해 해지율 기준을 따로 적용하기로 했다. 보험계약 해지 시 순자산이 늘어나는 무·저해지 상품은 해지율 과다계상을 방지하기 위해 1차연도 최적해지율의 60%만 적용한다.
반면 보험계약 해지 시 순자산이 줄어드는 무·저해지 상품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보험사들이 해지율을 과소계상할 수 있기 때문에 1차연도 최적해지율에 고환급형은 35%포인트, 비(非)고환급형은 25%포인트를 가산한다.
보험 재무정보의 투명성과 책임성도 강화됐다. IFRS17 도입으로 보험사의 가치평가에서 계리적 가정과 CSM 등 구체적인 재무정보의 중요성이 커졌다. 하지만 보험사 공시는 포괄적 가정과 일반론만 압축 제시하고 있어 유의미한 정보 제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시가평가 기반 결산 신뢰성 확보를 위해 회계·계리법인 외부검증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형식적 운영에 머물러 외부검증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당국은 사업비 집행 합리화 방안도 마련했다. IFRS17이 도입된 이후 보험사의 회계상 계약 초기 사업비 집행 부담이 감소했다. 실제 지난해 보험사 수입보험료는 전년 대비 15조8000억원 줄었지만 사업비 집행은 4조9000억원 늘었다. 당국은 사업비가 과다집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계약체결비 증가가 전체 사업비 증가를 견인하는 추세여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건전성 악화뿐 아니라 신계약 판매 과열에 따른 불완전판매와 유지율 하락 등으로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는 판단이다.
이에 당국은 보험사의 사업비 집행에 대한 모니터링·감독 지속 방안을 마련했다. 보험료·보험금·사업비 등을 포함하는 실제 현금 유출입에 대한 업무보고서를 마련해 상시 점검체계를 운영하고 지속 모니터링해 합리적인 사업비 집행을 유도할 계획이다. 보험업법 등 법령의 위임근거를 명확히 해 규정 위반 시 제재를 추진하고 무책임한 수당 정책 관행도 근절할 방침이다.
앞으로는 투명한 공시와 책임성 있는 외부검증을 통해 시장에서의 자정기능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우선 보험사 단위로 제공되던 보험부채 현황을 포트폴리오 단위로 세분화해 보험부채 세부 현황과 변동, 최적가정 등을 공시(협회 경영공시·사업보고서 주석공시)토록 할 예정이다. 앞으로 정보이용자들은 회사별 수익성이 좋은 상품유형, CSM 변동 사유, 장래 현금흐름에 대한 추정 현황 등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회사 간 비교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해외 건전성 공시 사례를 비교·분석해 국내 경영공시 개선 필요사항을 파악하고 일반·건전성 회계 간 차이와 민감도 정보 공시도 추진할 방침이다. 결산 외부검증에 대해서는 감리 근거와 자료 제출 요구권을 신설해 종래에 마련된 자율규제의 이행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가이드에 따라 적정한 외부검증이 이뤄졌는지 등 부실 검증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시 자료요구를 통해 면밀히 점검할 방침이다. 부실 검증 시 벌칙 부과 조항도 신설해 계리법인의 책임성도 높일 예정이다.
이번 보험개혁회의에서 논의한 안건은 시장에 신속히 적용될 수 있도록 관련 세칙 개정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이다. 킥스 해지위험액 정교화와 재무정보 공시 확대는 올해 말 결산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계리적 가정 등이 전제되는 IFRS17이 고무줄식 회계가 아니라 보험사의 실질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개별 회사의 비합리적·자의적 회계는 반드시 뿌리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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