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정부가 12년 만에 그린벨트를 풀어 수도권에 5만 가구의 신규 주택을 공급한다고 발표했으나 전문가들은 집값 안정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 진단했다. 교통망이 이미 확보된 지역을 선정한 것은 적절했다면서도, 공급 규모나 위치가 서울의 주택 수요를 분산하기에는 매력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효과를 높이려면 공급 시기를 앞당겨야 하는데, 토지 보상 등 분쟁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그린벨트 해제가 결정된 ▲서울 서초구 서리풀지구 ▲고양 대곡 역세권 ▲의왕 오전왕곡 ▲의정부 용현은 교통망을 이미 확보한 만큼 입지적 장점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박합수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서초구 염곡·내곡·원지동 일대는 강남에 남아있는 노른자 그린벨트 지역"이라며 "강남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신분당선을 통해 서울 도심까지 갈 수 있는 교통 연계성이 뛰어난 입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양 대곡도 신도시 발표 때마다 0순위로 거론되던 곳"이라며 "판교처럼 서북권의 대규모 테크노밸리가 계획된 곳이어서 그린벨트 해제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서울 외곽 택지개발의 관건은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입주 때 같이 해결이 안 되면 위례나 김포신도시처럼 난제로 남기 쉽다"며 "이미 교통개발계획이 세워진 지역의 그린벨트를 해제하기로 한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도 "역세권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을 많이 건설하기에 공급확충 효과가 클 것"이라며 "교통이 불편한 외곽에 신도시를 지어 우회적으로 주택공급 확대를 꾀하는 것보다는 수요자들이 필요로 하는 지역에 집중적으로 짓는 정공법을 택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은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 외에도 주택공급 불안심리가 작용했는데 이번 발표로 어느 정도 시장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존 예상과 달리 강남·송파 일대가 제외되면서 주택공급 분산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에 발표된 서울의 그린벨트 해제지역은 서초구 원지동·신원동·염곡동·내곡동·우면동 일대다. 정부는 2만 가구를 공급하되, 이 중 1만1000가구는 신혼부부를 위한 장기전세주택Ⅱ 방식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서울 공급 규모의 절반이 장기전세임대로 빠져 실제는 9000가구가 공급되는 효과만 있을 뿐"이라며 "집값이 과열되고 있는 주택 수요의 대체재로서 시장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특정 수요층의 로또분양 효과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도 "위치나 물량이 예상보다 적다. 공급 확대로 주택 가격을 낮추기에는 수요를 분산하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집값이 과열된 서울 주요 도심지역의 주택 가격을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의 큰 아파트 단지의 규모가 약 1만 가구라는 것에 비춰보면 이번 공급 규모는 그런 아파트 단지를 분산해 3~4개 짓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해당 지역에 미치는 효과도 그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 확대라는 큰 틀에서는 기존에 발표한 3기 신도시 등의 주택공급 물량을 늘리고,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합수 교수는 "3기 신도시 용적률을 높여 공급량을 늘렸으면 이번에 그린벨트 해제를 굳이 발표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며 "발표한 지 4년이 지난 3기 신도시 일부는 아직도 택지 토지 보상을 마무리 짓지 못한 곳이 있다. 기존에 발표한 대책부터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고 짚었다.
이번 대책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사업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정책은 내용이 구체적일수록 시장 심리에 반영된다"며 "임대 살면서 기다릴만한가 아닌가를 따져서 주택 매수 대기자들이 많아질수록 시장안정 효과도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행정절차를 단축해 2026년 상반기 공공주택지구 지정, 2029년 첫 분양, 2031년 첫 입주라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통상 그린벨트 해제 이후 실제 입주까지 10년가량이 걸리는데, 이를 7년으로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어떤 절차보다 토지 보상이 빠르게 마무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박원갑 위원은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보상을 둘러싼 분쟁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이번 주택공급의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효선 수석위원은 "그린벨트는 활용되지 않은 땅이다 보니 토지감정평가만으로도 협의가 가능해 상대적으로 보상 협상이 용이할 가능성이 높다"며 "장점을 살려서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승현 대표도 "보상 절차나 문화재와 같은 이슈, 사업성 때문에 계획보다 늦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주택을 공급한다는 발상이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효선 수석위원은 "일본, 싱가포르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도시계획을 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도시경쟁력이 가장 높은 서울에 12년 전과 유사한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한다는 게 시대에 맞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짚었다. 이어 "보존하는 지역을 푼다고 하면 드라마틱한 주거안정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공급 시점도, 물량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왕 그린벨트를 해제한 만큼 과감하게 용적률을 높여 고밀 개발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합수 교수는 "사실상 서울의 마지막 그린벨트라는 것을 생각하면 밀도 있는 개발이 필요하다"며 "현재로서는 250% 정도까지 용적률을 높일 수 있는데 1기 신도시처럼 300~350%, 30~40층까지 층수를 완화해 물량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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