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어르신 낙상사고 위험성은 겪어보지 않으면 정말 모릅니다. 저 역시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죠. '노인이 그렇지 뭐'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큰 화를 입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회사도 처음에는 단순히 낙상예방 복지용구를 취급하고 기부하는 기업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앱을 개발해 디지털 영역으로도 확장하고 있습니다. 초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노인 낙상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양쪽 모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론조사 회사에서 15년 넘게 마케팅 조사 연구원으로 일했던 권경혁 '해피에이징' 대표(54)가 노인 낙상예방 전문가로 변신한 건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고 때문이었다. 78세였던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넘어져 손목이 골절되는 등 여기저기 부상을 당한 채 지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늙으면 그럴 수 있지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상적인 위험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 부모님의 노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그는 큰 자괴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6년 해피에이징을 설립했다. 정부의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돼 받은 3000만원의 지원금으로 노인 100명을 돕는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연 매출 10억원을 바라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안전손잡이를 저렴하게 구매해서 나눠주는 것을 구상했지만, 시장조사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직접 제품 개발로 방향을 전환했다. 실리콘 안전손잡이를 개발하고 미끄럼방지매트 등을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개발, 제조하며 사업의 기틀을 다졌다.
-창업 계기가 된 어머님의 사고 이후,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는가.
▲처음에는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다. 사회적으로 공익에 가까운 일을 사업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던 거다. 그러다 우연히 소셜벤처 경진대회를 알게 되었고, 노인 낙상예방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다행히 선정돼서 3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고, 그걸로 100명의 노인분을 도와드리자는 계획으로 시작했다. 창업 이듬해에는 다른 여러 지원사업에 선정되고 상도 받으면서 점차 사업의 방향이 잡혀갔다. 문과 출신이라 처음에는 제품 개발이 걱정됐지만, 시장조사 전문가로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창업 초기와 비교해 노인 낙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다고 느끼는지.
▲일반적인 인식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내년이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정책적 관심은 매우 높아졌다.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예방 정책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노인들의 가장 큰 이슈인 치매의 경우 지자체별로 '치매안심센터'를 만들어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그다음에 찾은 스텝이 낙상인 것으로 읽힌다. 일본의 개호보험(장기요양보험) 관련 정책도 벤치마킹해 집을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인테리어 교체 시범사업(재가환경 개선)도 나오고 있지 않나.
다만 아쉬운 점은 아직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낙상위험이 있는 일반 장판 교체 같은 건 지원 대상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공단에 등록된 복지용구 중심으로 바꿔야 해서 그런 것 같다.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검증이 된 제품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경북대학교 산학협력단 학생들과 함께 낙상위험도를 분석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벌써 1년이 넘었다. 특히 75세 이상 어르신들의 경우, 본인의 노화 정도를 잘 인지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앱이 객관적인 위험도 평가를 도와준다. 집안 공간을 촬영하면 AI가 자동으로 위험요소를 분석해서 맞춤형 예방책을 제시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화장실 사진을 찍으면 바닥의 미끄러움 정도를 평가하고, 어떤 안전용품이 필요한지 알려준다. 현재 기초 지자체 단위에서 지원받아 1200여 가구에 적용 중이고, 서울시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구당 지원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는데 대체로 가구당 몇십만원 수준이다. 앞으로는 침실, 거실, 현관 등 공간별 분석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다. 서버비용이 20만~30만원 정도 나오던데, 사용비를 소액이라도 받을지 고민하고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지불할 만한 정도로 책정하면 된다고 본다.
-제품 개발과 품질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해외 선진국의 모범 사례들을 많이 참고했다. 특히 강조하는 건 '적확하지 않은 보조용품은 없는 것보다 위험하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품 하나하나를 연구하고 개발할 때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실리콘 안전손잡이의 경우, 기존 제품들의 단점을 보완해 미끄럽지 않고 견고하면서도 설치가 쉽게 만들었다. 안전손잡이, 미끄럼방지 욕실매트 등이 대표 제품이다.
-일반적으로 어르신들의 낙상예방용품 선호도가 어떻게 되나.
▲관련해서 조사해본 적이 있는데, 안전손잡이-욕실 미끄럼방지매트-목욕의자-보행기-지팡이 순이더라. 아무래도 집안 곳곳에 설치할 수 있는 안전손잡이의 활용성이 높은 것 같다.
-매출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2022년 3억원, 2023년 6억원, 올해는 1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전국 지자체와의 협력이 늘어나면서 성장세가 부각된다.
-해외시장 진출 계획도 있는지.
▲초기에는 시도해봤지만, 나라마다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더라. 중국의 경우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오히려 국내 시장에서 발전할 여지가 더 많다고 본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특성과 주거환경에 맞춘 제품과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10년 후에는 연 매출 100억원의 대표적인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단순한 수익 추구가 아니라, 진정성 있게 노인 낙상예방 사업을 펼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회사만 해도, 처음에는 규모의 성장이나 확장을 고민했지만, 결국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에 얼마나 진정성 있게 접근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난 뒤 시작한 이 일이 이제는 더 많은 어르신의 안전한 노후를 지키는 일이 된 셈이다.
사회적 가치와 수익성, 이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게 바로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 직원들에게도 항상 강조한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거다. 더 많은 지자체와 협력하고, 더 많은 어르신에게 다가갈수록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해질 거라고 믿는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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