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약세에 식품 원재료 수입 가격 상승 가능성
라면·빵·커피·과일·고기까지 대다수 먹거리 영향권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신선미 전재훈 기자 = 지난 몇 년간 뜀박질한 먹거리 물가가 고환율 여파로 내년에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식량자급률이 하위권인 한국은 식품 원재료 등을 많이 수입하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으로 원재료 수입 가격이 오르면 식품 물가가 오를 수 있어서다.
내수 부진 속에 라면부터 빵과 고기, 과일, 커피에 이르기까지 가격이 오를 경우 장바구니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원/달러 환율 1,400원대 굳어지나…"변동성 커져"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월에만 해도 달러당 1,300원대 초반이었으나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에 1,400원을 뚫은 이후 1,400원대가 굳어지는 모습이다.
트럼프의 재집권을 앞두고 강달러 강화되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져 원화 약세를 더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원/달러 환율은 비상계엄 선포 후 지난 4일 새벽 1,442.0원까지 뛴 이후 널뛰기하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주간 거래 종가는 1,419.2원으로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고환율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8일 연합뉴스와 전화에서 "환율 변동성은 앞으로 확대될 것이다. 1,430원을 다시 넘을 수 있고, 그다음은 1,450원으로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탄핵안이나 개헌 추진 등으로 정치적 불안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환율이 1,500원 가까이 오른다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 가공식품 원재료 수입 많아…농·축·수산물도 영향
식품의약품안전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로 수입된 식품 등은 1천838만t(톤), 348억달러(약 50조원)에 이른다.
한국은 라면 원재료인 밀가루와 팜유, 피자에 들어가는 치즈, 커피 원두 등 각종 식품 원재료를 많이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 상승으로 폭넓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이 낮다.
한국은 식량자급률이 2022년 기준 49.3%로 절반에 못 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에 있다.
곡물자급률은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식량자급률보다 훨씬 낮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를 보면 한국의 최근 3개년(2021∼2023년) 평균 곡물자급률은 19.5%로 10여년 전보다 10%포인트 이상 내려갔다.
밀과 옥수수는 곡물자급률이 0%대이며 콩도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밀은 라면과 국수, 빵, 과자 등에 들어간다. 수입 콩은 장류, 식용유, 두부의 원료이며 옥수수는 액상과당의 원료로 음료에 들어간다. 옥수수는 사료 원료라 축산물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수입 원재료는 우리 식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예를 들어 버터를 바른 토스트와 바나나, 오렌지주스로 아침을 해결하고, 점심에는 파스타를 먹고 커피 한잔을 마셨다고 한다면 대부분 원재료는 수입산이다. 파스타와 토스트에 들어간 밀가루, 버터, 바나나, 커피, 오렌지 농축액 등은 수입에 의존한다.
치킨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튀김 기름은 대두유나 해바라기유, 카놀라유, 올리브유 등 수입산이다. 맥주도 원재료인 맥아를 수입한다.
기후 변화로 과일, 수산물 수입도 대폭 늘고 있다.
한 외식 업체 관계자는 "고기부터 소스, 버터, 치즈, 파스타 면까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 (환율 상승)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식품·외식업계 "고환율 장기화땐 인상할 수도…환율 예의주시"
유지류, 유제품 등 국제 가격이 많이 오른 상황에서 원화 약세까지 이어지는 것은 식품 가격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식품 물가는 이미 몇 년 전과 비교해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달 기준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 지수는 121.3으로 기준시점인 2020년(100) 대비 21.3% 올랐다. 지난달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는 이보다 낮은 114.4였다.
올해 롯데웰푸드[280360], 오리온[271560] 등 식품업체들은 과자, 커피, 김 등의 가격을 올렸다.
외식업체로는 BBQ와 굽네가 치킨 가격을 올렸고 맥도날드, 롯데리아, 맘스터치는 버거 가격을 인상했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농심[004370], 파리바게뜨, BBQ 등 식품·외식업체가 앞다퉈 가격을 올렸는데 정국 혼란으로 정부의 물가 관리가 느슨해지면 일부 기업이 가격 인상을 서두를 수 있다.
기업들은 환율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환율이 더 오르기 전에 최대한 많은 원재료를 확보할 계획이다.
한 중소 두부 업체 대표는 "콩 공급받는 계약 물량이 있어서 아직 괜찮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문제다. 환율이 올라 콩 수입 가격이 오르면 두부 가격도 올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종합식품기업 관계자는 "달러 강세가 계속돼 장기적으로 견딜 수 있는 정도를 벗어나면 제품 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미 물가가 많이 오른 데다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가격을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영 효율화나 원가 절감으로 버텨볼 것이라는 업체들이 다수 있었다.
한 외식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불경기, 고물가 상황에서 외식 물가에 대한 정부와 언론이 관심이 크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는 데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고민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에서 개인 제과점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불경기라서 3개 사가던 손님이 1개나 2개 사는데 동네 장사 하면서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양천구의 한 카페 점주는 "배달 매출이 많은데 배달앱에서 가격 비교가 쉬우니 100원이라도 싸게 팔려고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가격을 올리는 것은 재료를 저렴한 것으로 대체하거나 이런저런 노력을 다해보고 나서 할 것"이라고 했다.
ykim@yna.co.kr, sun@yna.co.kr, ke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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