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부동산 시장은 당분간 집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는 관망세가 자리잡을 것으로 관측됐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단기적으로 집값이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로 매수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정치적 이슈까지 겹치며 관망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탄핵 정국이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급력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 정책과 국회가 마비되며 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15일 한국부동산원의 시계열 자료를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 집값은 단기간 하락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2월 전국의 아파트 실거래 매매가격은 전달 대비 0.33% 하락했다. 서울은 0.6%가 떨어졌다. 10월까지만 해도 각각 0.69%, 1.32% 올랐으나 11월 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 이후 본격적인 탄핵정국으로 들어서면서 가격이 꺾였다. 이 지수는 2017년 1월까지 반짝 하락했다가, 이후 회복했고 대선을 치른 5월에는 서울 기준 2.03%까지 상승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던 2004년 3~5월 당시 주택 가격은 전국이 0.12%, 서울이 0.39% 올랐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통계만으로는 탄핵 정국이 직접적으로 부동산 거래나 가격에 긴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정국 변화에 따른 연관성보다는 주택 거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출, 금리정책 흐름이나 관련 제도가 여전히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도 "나라가 흔들리는 정치적 불확실성의 최고조는 탄핵을 할 거냐 말 거냐 할 때이고, 이번 탄핵안 가결로 일부 해소가 된 것으로 보인다"며 "헌법재판소 판결, 조기 대선 등 변수가 남았지만 6개월이면 그 과정이 끝나는데 부동산 시장과의 연결고리를 찾긴 어렵다. 정치 이슈는 기본적으로 부동산 시장에서는 다분히 중립 요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탄핵 가결 이후에도 대출 규제로 움츠러든 매수 심리가 개선되기 힘들 것으로 봤다. 고준석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상남경영원 교수는 "부동산 시장은 비수기라고 하는 겨울시즌에 들어섰고, 탄핵안 통과 후에도 거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대출 규제는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런 거래가 침체할 수 있는 여건이기에 벌어지는 매수세 감소는 피할 수 없다. 당분간은 관망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실수요자 관점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현재 대출"이라며 "정국이 불안해서 매수를 미룬다기보다 지금은 대출이 안 나와서 못 사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김규정 위원은 탄핵 정국이 매수심리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무게를 두며 "수요자들이 시장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 보니 기본적으로 거래가 줄어들면서 관망세가 심화하는 현상들이 현장에서 제일 먼저 포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택 거래량 감소가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고 교수는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아무것도 안 하는 관망세가 유지된다는 것은 호가도 지금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라며 "가격이 떨어진다기보다 당분간은 가격이 횡보하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내년 정치 상황과 그에 따른 부동산 관련 정책 변화에 따라 집값이 확장세로 갈지, 더 위축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 외곽이나 지방의 집값은 하락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 위원은 "거래가 줄어들면 비선호 지역을 중심으로 외곽부터 가격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환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대출 규제는 시행되는데 주택공급과 같은 당근책은 지연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 시장 침체가 우려된다"며 "특히 비수도권이 더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탄핵 가결로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각종 주택공급 정책은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내년부터 3년간 아파트 입주 물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마저 좌초 또는 지연될 경우 전·월세 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두성규 목민경제연구소 대표는 "정부가 공급 측면에서 짊어지고 있는 막중한 업무가 많은데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이슈까지 만났다"며 "신규 입주단지에서 전세 물량이 나오는데 절대적인 물량이 없는 상황이 되면 한순간에 전세난을 맞닥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과 인접 수도권은 1년 넘게 전셋값이 올라 이미 문제는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셋값이 오르면 집값도 불필요한 급등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환 부연구위원도 "집을 사려는 사람이 줄면 전세수요가 늘어날 수 있는데, 신규 입주 물량 감소로 전셋값이 오를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전세가율이 워낙 떨어져 있어서 전셋값이 조금 오른다고 해도 매매가격을 밀어 올릴 수준까지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규정 위원은 "대출 규제나 정치적 변수와 같이 거래를 위축시킬 변수와 더불어 공급부족 등 가격상승 요인도 혼재돼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려와 달리 현 정부의 주택정책 공급정책이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3기 신도시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고, 1기 신도시는 노후계획도시정비특별법으로 확장할 때 야당이 협조를 한 것"이라며 "공급정책은 여야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어 정책이 지연되거나 좌초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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