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 선포’ 이후 일련의 사태에 주목한 나라 밖 시선은 참담했다. 특히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의 지적은 폐부를 찌르듯 날카로웠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예고했다. “한국 정부가 경제 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고, 행정부는 레임덕을 넘어 잊혀지는 영역으로 들어설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기적 시도는 5100만명의 한국 국민이 장시간에 걸쳐 할부로 치르게 될 것이다.”
국민이 장시간에 걸쳐 할부로 치러야 할 것들. 불가피한 결과로, 이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이후 치러야 할 대가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정부가 내놓은 5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증안펀드)·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등을 필요시 즉각 투입하겠다는 긴급 대책이 그렇고, 한국은행은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해 직접 시중에 자금을 풀기로 한 결정 또한 그렇다. 정부의 결정으로 당장 국내증시와 원달러 환율이 안정되는 듯 보여도 수개월 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청구서’가 날아올 것이라는 얘기다.
당장 관세인상 등 트럼프 2기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여러 경로를 통해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대통령 권한대행 중심의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설 수가 없다. 탄핵 결정시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올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까지 정부 불확실성이 계속될 것이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에서 1%대로 낮아질 상황이며, 석유화학 전자 등은 물론이고 반도체까지 주력산업들이 중국에게 쫓겨 허둥대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피크 차이나(Peak China)'를 얘기하며, 그게 한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분석했다. 그러나 이제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가 더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가 됐고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과 탄핵 국면은 고스란히 금융시장에 반영돼 있다. 탄핵안 가결로 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탄핵안 가결 직후 첫 거래일인 16일에 코스피지수와 원화가치는 반등하는 듯했다가 이내 고꾸라졌다. 노무라증권 등 몇몇의 글로벌 투자은행(IB)은 내년 상반기 원달러 환율을 1500원대로 전망하기도 했다. 정국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고, 41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은 금세 쪼그라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리더의 잘못된 선택이 야기한 위험이 사회화되는 과정이다.
눈에 보이는 유형의 자산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추락한 국가 신뢰도를 복원하는 데 추가로 얼마의 비용이 들지 가늠하기 어렵다. 계엄 사태 직후 미국 국방장관이 방한 일정을 취소했고, 스웨덴 총리와 카자흐스탄 국방장관이 방한 일정을 변경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일행은 여행을 취소했다. 여기에 글로벌 외교당국은 내란, 전쟁, 소요사태 등이 벌어지고 있는 국가를 대상으로 발령하고는 했던 여행주의보 대상국 리스트에 한국을 올렸다. 한때 민주주의 선진국이며, 손꼽히는 안전한 국가였던 한국의 이미지가 이번 사태를 거치며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조야의 시각이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수장이 서둘러 주요 외신과 인터뷰를 하고 해외 주요 기관과 소통 채널을 보완하고 있지만 훼손된 신뢰를 복원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기존의 내각이 ‘한국 정부가 가진 역량으로 금융불안을 해소하겠다’고 한들 ‘카운터파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당장 동의할 국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냉정한 분석까지 나온다.
헌정을 유린한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는 극도의 불확실성을 야기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천문학적인 유무형의 비용은 돌이킬 수 없다. 질서 있는 퇴진, 거국 내각 등 말의 성찬은 물론이고 각종 태스크포스(TF), 무제한 유동성 공급 등 임시 처방으로는 해소할 수 없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신속한 과정을 통해, 국민과 함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국가 시스템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지켜낼 수 있다. 주권자인 국민의 회복탄력성이 작동할 최소한의 조건인 윤 대통령 탄핵 절차가 이제 겨우 본격화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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