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이코노미뉴스 김국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만나 화제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한국 대기업 회장이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만난 것이라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신세계그룹이 취할 이점을 넘어 앞으로 정용진 부회장이 한국과 미국의 경제동맹을 더욱 굳건히 해줄 수 있는 주춧돌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정 회장, 20일 트럼프 사저인 마머라고에서 트럼프 만나...정치·경제 대화 나눠
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의 초대로 지난 12월 16일부터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5박6일간 체류하다가 귀국했다. 마러라고 리조트는 플로리다주에 있으며 트럼프 당선인의 사저다. 정용진 회장은 트럼프 주니어의 주선으로 지난 20일 경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정 회장과 만났다.
정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과 만나 10분에서 15분 정도 대화를 나눴으며, 이어 식사도 함께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정치, 경제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귀국 인터뷰에서 정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도 만났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주니어가 초대한 인물들 중에는 일론 머스크도 있었는데 정 회장은 "짧은 인사만 나눴다"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라는 질문에는 "거기까지 제가 말씀드릴 처지가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트럼프 주니어 등 측근들에게 "대한민국은 저력 있는 나라로 빠른 정상화가 될테니 믿고 기다려 달라"고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민간 가교 역할론’과 관련해선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며 “사업하는 입장에서 제가 맡은 위치에서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미국 사업 확대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엔 “사업적인 이야기라 여기서 말할 게 아니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번 회동이 의미를 갖는 것은 대선 이후 한국 정 재계 인사를 통틀어 공식적으로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만난 최초의 인물이 정 회장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전 세계 주요 인사들이 트럼프 당선인과의 접촉하기 위해 애닳아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주니어가 초대를 했고, 트럼프를 직접 만났다는 사실은 신세계그룹을 넘어 한국의 호재꺼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정 회장의 인맥이 트럼프 일가와 깊게 연관돼 있는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해 1월 정 회장은 트럼프 주니어와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왔다고 SNS에 글과 사진을 올린 바 있다.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 2021년부터 공화당에 입당했다. 그는 트럼프의 공화당 경선과 대선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해 온 트럼프 정권의 핵심인사다.
지난 1월 경 정 회장은 트럼프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Jared Kushner)와 만난 사진을 SNS에 게재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백악관 수석 고문으로 역시 트럼프 정권의 핵심이다.
정 회장과 트럼프와의 만남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이 처한 현실 때문이다.
정 회장의 이번 트럼프와 회동은 계엄과 탄핵 추진 속에서 심각하게 흘러가는 한국 정치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는 평가다. 한국 정치상황을 리얼하게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해줄 수 자리였다. '멸공'을 외쳐왔던 정 회장과 중국식 사회주의 세력을 쓸어내려고 하는 트럼프 간의 공통점이 이번 자리를 만들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용진 회장과 트럼프 당선인을 관통하는 공통 키워드: 멸공
정용진 회장과 트럼프 당선인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멸공'이다. 정 회장이 북한을 향한 멸공을 주장했다면, 트럼프는 중국 공산당을 대상으로 멸공을 주장해 왔다.
정 회장의 '멸공' 메세지는 유명할 대로 유명하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인 2022년 1월을 뜨겁게 달궜다.
정 회장은 부회장이던 시절인 2022년 1월 5일 숙취해소제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테다. 멸공!!!"이라는 글을 올렸는데 이 글이 “신체적 폭력 및 선동에 관한 인스타그램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삭제 조치됐다.
이에 정 회장은 인스타그램에 "[보도자료] 갑자기 삭제됨 이게 왜 폭력 선동이냐 끝까지 살아남을테다 #멸공 !!", "난 공산주의가 싫다"는 글을 게시했다. 이어 관련 기사 사진을 공유하면서 "#기사뜸 #노빠꾸 #ㅁㅕㄹㄱㅗㅇ"라는 태그를 달기도 했다. 이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논란이 일었고 인스타그램 측에서 시스템 오류라고 해명하면서 해당 게시물은 하루 만에 복구됐다.
2022년 1월 6일 정 회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멸공, #승공통일, #반공방첩, #대한민국이여영원하라, #이것도지워라 등의 여러 태그와 함께 ‘“소국이 감히 대국에…” 안하무인 中에 항의 한번 못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 캡처를 올렸다. 해당 기사는 중국 외교부가 한국에 안하무인격 태도를 보여왔고 한국 정부는 중국의 노골적 하대에 항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며, 시진핑 주석의 신년회견 사진도 함께 담겼다.
2022년 1월 7일에는 #멸공, #이것도지워라라는 태그와 함께 올렸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서 삭제하고 대신 김정은 사진을 올리면서 "나의 멸공은 중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로지 우리 위에 사는 애들(북한)에 대한 멸공이고 나랑 중국이랑 연결시키지 말길 바란다"고 말했으며 이어 "대한민국을 소국으로 칭한 것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반감 때문에 나온 반응이었다. 다들 괜히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날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검찰이 자신을 통신 조회했다고 알렸다. '통신 자료 제공 내역 확인서'를 올리며 "‘진행 중인 재판이 없고 형의 집행이 없고 별다른 수사 중인 사건이 없다면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내 통신 내역을 털었다는 이야기인데…"라는 내용의 글을 덧붙였다.
2022년 1월 9일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넘버원 노빠꾸'라는 글자 장식이 꽂힌 케이크 사진을 올리면서 "나의 멸공은 오로지 우리를 위협하는 위에 있는 애들(북한)을 향한 멸공"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날 비난할 시간에 좌우 없이 사이좋게 싸우지 말고 다 같이 멸공을 외치자. 그게 바로 국민들이 바라는 대화합"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고 한자로 직접 ‘사업보국(事業報國), 수산보국(水産報國)'을 쓰는 동영상도 공개했다.
이후 정 회장은 SNS에 올린 멸공 관련 글들이 이슈화되자 부담감을 느꼈는지 정치와 관련된 글이나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이번 트럼프 회동에서 보듯 그가 지금까지 주장해온 멸공 주장이 트럼프 당선 이후 새로운 긍정적 계기를 마련하는 느낌이다.
미국 정부와 우리 정부간 물밑 가교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 제기 중
트럼프 역시 '멸공'이라는 역사 인식은 정 회장과 궤를 같이 한다. 트럼프는 부동산·스포츠·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탁월한 사업가로 성장하면서 정치가 바로 서야 국가 발전과 세계 평화도 가능함을 깨닫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트럼프는 미국의 무질서를 바로 잡을 보수주의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프로 반공주의자, 로널드 레이건을 능가하는 공산 박멸 주의자, 군사 전법에도 통달한 고도의 전략가로 통한다.
지난 2018년 대통령 시절 트럼프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 73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사회주의를 거론하며 중국을 강하게 비판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구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중 하나였던 베네수엘라에서 인간 비극을 목도하고 있다"며 "사회주의가 석유가 풍부한 나라를 파산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사실상 모든 곳에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시도됐지만 고통과 부패를 만들어냈고, 사회주의 권력에 대한 갈증이 팽창과 침략 억압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사회주의와 그 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져온 고통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9년 신년 국정연설에서도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현 정권을 겨냥해 "그들의 사회주의 정책은 베네수엘라를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극도의 가난과 절망의 나라로 전락시켰다"고 지적하며, "여기 미국에서도 사회주의를 채택해야 한다는 새로운 요구들이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미국이 결코 사회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의 결의를 거듭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트럼프 2기에서도 전혀 변화가 없다. 중국을 더욱 옥죌 것이 분명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트럼프 2기가 1월에 발족하면서 각 기업들이 대응마련에 분주한 상태다. 재계에서는 이번 트럼프 당선인과 정 회장의 회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정재계를 통틀어 한국 기업 회장이 트럼프와 직접 만나 담화를 하고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한미 소통창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멸공'을 핵심 아젠다로 설정하고 있는 미국 대통령과 정 회장이기에 통할 것도 많을 것이고, 한국 기업의 입장을 정 회장이 대표해서 얘기하기가 수월하다는 점에서 정 회장의 그간 행적이 재평가 받는 분위기다.
정 회장은 내년 1월 20일 워싱턴DC의 미국 연방의회에서 열리는 트럼프 당선인의 제47대 대통령 취임식에 공식 초청을 받았는지에는 "취임식 이야기는 특별히 연락받은 바 없고 정부 사절단이 꾸려지는 대로 저한테 참여 요청이 오면 기꺼이 응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차기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정부와 우리 정부간 물밑 가교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부터 정 회장이 트럼프 일가와 인연을 맺어 온 것이 한국 기업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대리 수혜를 입을 수 있다"며 "정 회장이 개인 인맥을 활용해 트럼프 일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 회장이 재계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 한국과 미국 정부의 가교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이 추진하는 다양한 사업들에게도 긍정적 결과 가져다 줄 것
이번 방문은 신세계그룹이 추진하는 다양한 사업들에게도 긍정적 결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향후 신세계그룹이 추진할 여러 사업에서 정 회장이 가진 의외의 트럼프 일가 인맥이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신세계그룹은 내수에 치중된 기업이지 해외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은 아니다. 올해 이마트의 3분기 누계 해외 사업 매출은 1조7460억원으로 전년동기비 14.3% 증가했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국 사업이 계속 확장 추세에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미국 그로서리 및 와인 사업 부문에서 거둔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6302억원, 342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9.8%, 영업이익은 104.8% 증가했다. 연간 매출 2조원, 영업이익 300억원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8년 이마트는 미국에 ‘PK 리테일 홀딩스’를 세웠다. 현지에서 슈퍼마켓 체인을 운영하는 ‘굿푸드홀딩스(Good Food Holdings)’ 지분 100%도 인수했다. 굿푸드홀딩스는 ‘브리스톨 팜스(Bristol Farms)’, ‘뉴 시즌스 마켓(New Seasons Market)’ 등 5개 브랜드와 56개 프리미엄 그로서리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산하 미국 현지법인을 통해 벤처캐피털 '퍼시픽얼라이언스벤처스'도 운영하고 있다. 첫 투자처로 올해 초 오프라인 소매 공간을 효율화하는 데 특화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버틀러를 투자했다. 미국 최대 유통, 부동산 개발회사인 사이먼그룹은국내에서는 신세계그룹과 유일하게 손잡고 2005년 신세계사이먼을 합작해 국내에서 아웃렛 사업도 하고 있다.
정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4조6000억원 규모의 화성시 국제테마파크 복합개발사업 과정에도 이번 만남은 미국 등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 회장은 이미 핵심 시설인 테마파크 설계를 미국의 글로벌 미디어그룹 파라마운트와 함께 하기로 확정했다.
정 회장이 스타벅스를 한국에 도입했듯이 트럼프 집권 이후 인맥을 바탕으로 또 다른 미국 연계 사업이 활발해 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기대감에 신세계그룹 주가가 급등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후 1시57분 기준 이마트의 주가는 전일보다 5.9% 상승한 6만97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23%, 신세계푸드 30%, 신세계아이앤씨(I&C) 30% 신세계 4% 등 신세계 그룹 관련 상장사 전반이 상승세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일가와 친분관계가 있다는 것은 앞으로 신세계그룹의 향후 미국 연계 사업이 수월하게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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