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이코노미뉴스 정재혁]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한일‧상업은행 출신들 간 '계파갈등'을 잠재우기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외부인사 영입' 카드를 꺼내들었다.
임 회장은 취임 이후 은행장 선정 과정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갈등 해소에 상당한 공을 들였지만, 손태승 전 회장 관련 '부당대출 사건'이 터지며 자신의 입지마저 크게 흔들리자 외부인사 영입을 통한 조직 쇄신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풀이된다.
내부 출신으론 한계…임종룡, '외부 영입'으로 계파갈등 해소 전략 '선회'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지난 26일 내부통제 컨트롤타워 격인 '윤리경영실'을 신설하면서 실장으로 외부 인사인 이동수 변호사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1971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 40회(연수원 30기)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2021년 의정부지검 차장검사를 끝으로 검찰에서 나와 변호사 일을 시작했으며, 지난달 중순경 우리금융 합류를 위해 소속 법무법인인 대륙아주에서 퇴임했다.
윤리경영실은 지주 감사위원회 산하에서 △그룹사 임원 감찰 △윤리정책 수립 및 전파 △내부자신고 제도 정책 수립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아울러 금융권 최초로 시행되는 '임원 친인척 개인(신용)정보 등록제' 운영도 총괄하게 된다.
앞서 임종룡 회장은 우리카드 창사 이래 최초로 외부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차기 우리카드 사장에 내정된 진성원 전 현대카드 본부장은 현대‧삼성‧롯데카드 등에서 30년간 근무한 카드업계 전문가다.
진 내정자는 지난 8월 우리카드 경영 컨설팅을 맡으면서 우리금융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진 내정자는 우리카드의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전문성 떨어지는 '낙하산 인사'를 꼬집었는데, 본인이 스스로 해결사로 나서게 됐다.
아울러 최근 추진 중인 동양‧ABL생명 인수 성공 시 대표로 거론되는 인물도 외부 출신으로 현재 인수추진단장 역할 맡고 있는 성대규 전 신한라이프 사장이다.
관료 출신인 성 전 사장은 금융위원회에서 보험과장과 은행과장 등을 역임했다. 2016년 보험개발원장에 이어 2019년 신한생명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2021년엔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의 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새로 출범한 신한라이프 초대 사장 자리에 올랐다.
'자강두천' 상업‧한일 계파갈등 역사…'채용비리'부터 '부당대출'까지
임 회장이 임기 마지막 해인 내년 3년차를 앞두고 '외부인사 영입' 카드를 꺼낸 것은 상업‧한일은행 출신들을 적절히 기용하는 '탕평인사'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본인이 외부 출신이기에 가능한 선택이기도 하다.
우리은행 계파 갈등의 역사는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그해 합병해 한빛은행이 탄생했고, 이후 2002년 사명을 우리은행으로 변경했다.
상업은행은 1899년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을, 한일은행은 1932년 설립된 조선신탁주식회사를 각각 모태로 하고 있다. 역사가 깊은 만큼 각 은행 인사들의 출신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두 은행의 만남은 요즘 말로 '자강두천(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에 가깝다. 합병 이후에도 서로를 동료가 아닌 견제 대상으로 여겨왔으며, 이는 마치 조선 중기 이후 형성된 '붕당 정치'와도 유사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은행장 자리는 상업‧한일 출신들이 번갈아 맡는 것이 관례가 됐다.
이러한 균형의 추가 흔들리게 된 시점은 상업 출신인 이광구 전 행장 때다. 전임 이순우 행장에 이어 상업 출신들이 연달아 은행장에 올라 한일 출신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였는데, 당시 민영화를 위한 지주 설립 과정에서 이광구 행장이 지주 회장에 오르고 차기 우리은행장으로 또 다시 상업 출신인 남기명 부행장이 유력 거론되면서 한일 계파의 불만이 폭발했다.
그 결과로 발생한 사건이 지난 2017년 '신입행원 채용비리 사태'다. 상업 출신들의 독주에 불만을 품은 한일 측이 국회의원실(심상정 전 의원)에 관련 내용을 제보했다는 것이 업계 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광구 전 행장은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자 사의를 표명했고, 이후 '어부지리' 격으로 한일 출신인 손태승 당시 부행장이 지주 회장과 은행장 자리를 독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역사가 반복되듯 한일 출신의 독주는 또 다시 상업 출신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손 전 회장은 상업 출신인 권광석 전 행장을 외부에서 데려오며 행내 불만을 잠재우는 듯 보였으나, 사상 초유의 '1+1' 임기만 부여하며 조기에 내쳤다. 이후 권 행장 후임으로 한일 출신 이원덕 행장을 앉히며 친정 체제를 공고히 했다.
손 전 회장은 강력한 내부 장악력을 드러내며 3연임에 도전했지만, 금융당국의 제재 압박 등에 부담을 느껴 결국 뜻을 접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손 전 회장은 'DLF 사태' 관련 금융당국의 중징계에 대해 대법원까지 가는 끝에 2022년 '중징계 취소'를 이끌어냈지만, '라임펀드 사태' 불완전판매에 대해 금융당국이 부과한 중징계 처분에 대해서는 징계 취소 행정소송에 나서지 않으면서 3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임종룡 회장 취임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임 회장, '결자해지' 나서야
금융권에선 손 전 회장이 떠난 자리에 예상치 못한 외부 인사(임종룡 회장)가 들어온 것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된 것으로 본다. 특히 수 년간 한일 출신들에 눌려 있던 상업 출신들 입장에선 응당 자신들의 자리가 돼야 할 지주 회장직이 외부 인사에게 돌아간 것에 큰 좌절감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손태승 전 회장과 친인척 및 전현직 은행 직원들이 연루된 '부당대출 사건'이 터지고, 이를 현직 회장과 은행장에게 결부시키는 프레임이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등장한 것이 임 회장 취임 2년차인 올해 벌어진 일이다.
임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우리은행 내 계파 갈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자신이 취임 초기 은행장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한 조병규 은행장이 부당대출 사건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시작했고, 임 회장 본인도 이 사건과 관련해 불명예 퇴진 압박까지 받게 되면서 그간 쌓아온 커리어에 상당한 흠집이 생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 회장은 줄곧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측근들에게 밝혀왔으며, 은행장 공백 등을 고려해 차기 은행장 선임 뒤에는 실제로 물러날 생각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자신의 사퇴를 압박해 왔던 윤석열 정부가 탄핵에 내몰리면서 임 회장 입장에선 자진 사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굳이 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실상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임 회장이 내년 임기 마지막 해를 맞아 조직 쇄신을 위해 외부 인사 영입이라는 새로운 시도에 나선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계파 갈등으로 곪아 터진 우리금융에 투입된 외부 인사들이 강력한 치료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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