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이코노미뉴스 정재혁] 법원이 시중은행들의 '돈잔치'를 방조한다는 비판을 받던 '공탁출연금 상‧하한제'를 전격 폐지키로 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작년 12월 31일 '공탁금관리위원회 규칙 일부개정규칙안'을 입법예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개정이유에 대해 "공탁출연금 상‧하한제를 폐지해 사법서비스진흥기금의 안정적 운용을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공탁금관리위원회 규칙 제19조 제1항(출연금액의 확정 등)은 '위원회는 매년 4월말까지 보관은행별로 전년도의 공탁금 운용수익금에서 이자비용과 포괄이윤 등을 뺀 금액의 범위 내에서 당해 연도에 납부할 출연금액을 확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다만, 해당 연도에 납부할 출연금액은 전년도 출연금액의 100분의 30을 초과해 증액하거나 감액할 수 없다'는 내용의 단서를 달았다.
올해 바뀌는 개정규칙안은 '전년도 출연금액의 100분의 30을 초과해 증액하거나 감액할 수 없다'는 단서의 삭제를 골자로 한다. 이를 통해 공탁출연금 상‧하한제를 폐지한 것이다.
공탁금은 형사 피고인이 피해금을 갚겠다는 의지를 재판부에 보여주기 위해 법원에 내거나 민사상 채무자가 판결이 날 때까지 법원에 맡기는 금액(유가증권‧물품 등)을 말한다.
법원은 이러한 거액의 공탁금을 직접 보관할 수 없어 공탁법 제3조에 의거 별도의 공탁금 보관은행을 지정해 맡겨놓고 있다.
보관은행은 법원이 맡긴 공탁금을 운용해 수익을 내고, 수익금의 일부를 법으로 정한 방식에 따라 법원(공탁금관리위원회)에 출연금으로 납부한다. 해당 출연금은 '사법서비스진흥기금'의 재원으로 사용된다. 이 기금은 법원이 지난 2015년 국민들에 대한 사법서비스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했다.
따라서 출연금 상‧하한제가 존재하는 경우엔 보관은행이 전년 대비 압도적으로 큰 운용수익을 거두더라도, 법원은 전년도 출연금액의 30%까지만 출연금을 증액해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2020년 공탁출연금 산정방식을 변경하며 출연금 상‧하한제(20%)를 도입했으며, 이후 2022년 말 '기준금리 인상'을 이유로 상‧하한 비율을 30%로 10%포인트 늘린 바 있다. 이 시기 보관은행들은 고금리 기조 하에서 막대한 운용수익을 거뒀다.
그럼에도 출연금 상‧하한제가 은행들의 이익을 보전해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자, 법원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출연금이 국민 사법서비스 향상에 쓰인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다분했다.
실제로 이탄희 전 국회의원은 지난 2023년 제21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법원 질의를 통해 해당 문제를 거론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이 전 의원실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2019~2023년 사이 시중은행들로부터 최소 약 576억 원에 달하는 출연금을 더 징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상‧하한제로 인해 출연금을 더 거둘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법원의 이번 규칙 개정으로 당장 올해부터 보관은행들의 공탁금 운용수익이 줄어들 공산이 커졌다. 특히, 공탁금 점유율 압도적 1위인 신한은행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연합회가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한창민 의원실(사회민주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을 비롯한 10개 시중‧지방은행의 공탁금 평균잔액은 2023년 말 기준 11조 4869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신한은행이 7조 4369억 원을 보관하고 있어 전체의 64.7%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KB국민은행 1조 1018억 원(9.6%), NH농협은행 1조 504억 원(9.1%) 순이었다. 10개 보관은행이 최근 5년간 벌어들인 운용수익은 1조 1861억 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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