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국내 기업 10개 중 1개는 돈을 벌어서 이자도 갚지 못하는 만성부실기업(이른바 좀비기업)인 것으로 조사됐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좀비기업 비중은 매년 올라가는 추세다. 생산성이 낮은 좀비기업이 살아남아 정상기업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어 정부와 은행이 보다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20일 한국금융연구원의 '만성부실기업 : 원인·영향·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코스피, 코스닥 상장법인을 포함한 외부감사법인 3만6990개 중에서 좀비기업 비중은 2016년 3.01%에서 2020년 5.42%, 2021년 6.3%, 2023년 9.8%로 매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연구원이 기준으로 삼은 좀비기업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비율이 3년 연속으로 100%를 밑돌고, 부채비율은 200%를 웃도는 부실회사다. 이자보상비율이 100%가 안 된다는 것은 기업이 버는 돈으로 은행 이자조차 감당을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업종별로 만성부실 비중을 살펴보면, 부동산업·건설업·운수업·숙박음식업 부채의 부실률이 높았다. 부동산과 건설업은 장기간 침체된 부동산 시장의 영향을 받았다. 운수업은 코로나19 대유행과 공급망 문제, 숙박음식업은 소비부진 등의 영향이 컸다.
기업 규모별로 만성부실부채 비중(만성부실률)을 보면 2023년 말 기준 대기업은 5.6%에 불과하지만 소기업은 16.1%, 중기업은 18.7%에 달했다.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생존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보고서는 좀비기업들이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로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를 꼽았다. 저금리 기조하에서 부실자산을 정리할 유인이 낮은 금융기관들이 원금을 상환하지 않는 이자 납부를 계속 허용하면서 만성부실기업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건전성이 낮은 기업임에도 금리가 낮으니까 대출을 대손상각하지 않고 만기를 연장해주는 구조가 부실기업이 증가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부실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로는 정책금융을 들었다. 일반은행에서 취급하는 정책금융은 대부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데 만성부실 중소기업이 정책금융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좀비기업은 정상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면서 경제 전체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생산성이 낮은 기업이 자원을 점유하면서 업종 내 제품가격은 하방 압력을 받고, 인건비와 금융비는 상승 압력을 받아 생산성이 높은 정상기업의 성장(투자 및 고용)이 구축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분석 결과 만성부실기업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할 때 정상기업의 투자증가율은 0.08%포인트, 고용증가율은 0.07%포인트 각각 하락했다.
보고서는 작년 말부터 다시 금리 하락기에 접어들면서 좀비기업 증가율이 높아질 수 있어 금융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좀비기업 퇴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금융기관과 감독 당국이 기업들의 만성부실이 증가하지 않도록 스트레스테스트(건전성시험) 등 미시건전성 감독 강화를 통해 선제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들이 후속 조치를 잘 이행할 수 있도록 감독 당국의 철저한 사후 관리 역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은행들이 기업 구조조정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기 위해 은행 경영진에게 구조조정과 관련된 유인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고려할 사안이다. 이 밖에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출자전환 활성화, 기업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펀드 조성 등도 부실기업 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로 꼽혔다.
이지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실이 만성화하면 기업 생태계의 악순환과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초래해 경제 성장동력과 활력이 저해된다"며 "따라서 만성부실기업에 대해서는 해당 기업의 자구노력과 함께 금융기관과 감독 당국의 모니터링과 적정한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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