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에 대한 관세 인상을 유예하면서 '관세 전쟁'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산업계에선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있지만,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4일 국내 산업계에선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유예 결정에 대해 당초 예측이 어느 정도 맞아들어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앞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트럼프 정부의 멕시코·캐나다를 향한 관세 인상 압박은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 재협상을 위한 카드"라며 "USMCA는 2026년 재검토가 예정돼 있지만, 트럼프는 더 빨리 재협상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는 가시지 않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의 이번 결정으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산업별 관세 부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또 향후 미국의 각국 무역 협정 검토 과정에서 한국 역시 타깃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멕시코에 대한 관세 유예는 단순히 무역 상대국과의 협상에 따른 것일 뿐, 산업 부문별 관세 부과 여지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얘기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철강, 의약품, 알루미늄, 구리, 석유, 가스 등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만약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의 다음 차례는 유럽연합(EU), 그다음 차례는 아시아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업계에서도 트럼프의 멕시코·캐나다·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행정명령 서명 이후 그다음 타깃이 한국을 비롯해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특히 한국은 미국의 무역 상대국 적자 순위에서 캐나다보다 높은 자리에 위치해 있어 이러한 우려를 가중시켰다. 한국무역협회가 미국 상무부 수출입동향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미국의 한국 상대 누적 무역적자는 340억7800만달러를 기록, 미국의 무역 상대국 중 6위를 차지했다. 이는 캐나다 291억9300만달러(9위)보다도 높은 금액이다.
우리나라는 그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대부분의 품목에 대해 관세가 철폐돼 현재 거의 제로에 가까운 관세율을 적용받고 있었다. 미국은 품목 수 및 금액 기준 모두100% 상품의 대(對)한국 관세를 최종 철폐하기로 약속했고, 현재 99% 이상의 품목에서 관세 철폐가 이뤄진 상태다. 특히 한국은 지난해 대미 수출 1278억달러, 무역흑자 557억달러로 모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무역흑자는 전년보다 25% 급증했다.
미국이 예고한 대로 산업 부문별로 관세를 매기거나 보편 관세를 적용한다면, 우리 대미 수출 최대 품목인 자동차, 차량용 부품, 컴퓨터 부품, 석유제품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국가에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주요국들이 이에 맞대응할 경우 한국의 수출이 최대 448억 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실질 국내총생산(GDP) 감소폭이 0.29%에서 0.69%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트럼프 정부는 오는 4월 1일까지 기존 무역협정과 수출 통제 제도, 각국 환율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추가 조치를 취한다는 계획이다. 이 시기가 도래하기 전 우리 정부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장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고려할 때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명분이 충분하다"며 "한국은 조선업이나 SMR(소형모듈원자로) 분야 등 강점을 무기로 미국과의 협상·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산업부 관계자는"(미국의) 관세 조치의 직간접적인 영향에 놓인 관련 업계와 함께 대응 전략을 함께 점검하고 유럽·일본 등 유사한 상황에 놓인 주요국들의 동향도 주시 중"이라며 "가용한 모든 협력 채널을 활용해 미국 신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는 등 최선의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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