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차세대 핵심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해상풍력’이 규제에 가로막혔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해상풍력의 빠른 성장이 필수적인데, 지켜야 하는 법률과 인허가를 받아내야 하는 기관만 수십개에 달한다. 규제를 통폐합하는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4일 풍력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4일 전기위원회는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허가해달라는 요청 두 건을 심의하지 않고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대상은 아이에스동서의 ‘통영 욕지도 해상풍력’과 이순신해상풍력의 ‘여수 이순신1 해상풍력’ 사업이다. 각각 설비용량만 340MW, 345MW에 달하는데 총사업비만 1조5409억원, 1조7250억원에 육박한다. 사업을 진행하려면 지역주민의 동의가 더 필요하다는 게 전기위 측 입장이다.
문제는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해상풍력은 특성상 건설하게 되면 어업활동에 차질을 준다. 현재 해상풍력발전 건설 예정지 80%가 어업활동이 활발한 해역과 중복되다 보니 어민들의 반대가 거세다. 주민과의 협의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민간기업이 알아서 해야 한다. 한 해상풍력발전 기업 관계자는 “사업 자체가 허가받기 굉장히 까다로운데 제일 어려운 것이 지역 수용성”라면서 “이 단계에서만 시간을 많이 잡아먹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규제들도 발목을 잡고 있다.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하려면 총 29개의 규제를 따르면서 10개 기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국방부는 해상풍력 높이가 500피트(약 152.4m)를 넘어가면 조정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다. 해상풍력 날개가 군 레이더망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이유다. 해양수산부와는 항로 협의를 거쳐야 한다. 연안 여객의 안전성을 도모한다는 목적이다. 또 환경부와 조류 및 해양수산자원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는 해상풍력발전의 타당성을 분석하고 준공까지 하려면 평균 68개월이 걸린다. 업계에서는 유럽 선진국의 경우 평균 42개월, 덴마크는 30여개월이면 개발이 끝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풍력에너지위원회도 지난해 4월 ‘세계풍력보고서 2024’에서 한국을 언급하며 “대한민국의 재생에너지 규제 인허가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사업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며 “심각한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허가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업이 좌초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한국풍력협회 관계자는 “입찰이 통과됐지만 그사이 비용이 너무 많이 올라 착공이 어려워지거나, 완공이 거의 다 됐는데 계통연계를 해주지 않아서 안 되는 경우도 많다”면서 “불확실성이 굉장히 높으니 자금조달도 더 안 된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세운 해상풍력발전 목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023년 발표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해상풍력으로 1만2000MW에 달하는 에너지를 보급해야 한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 가동될 것으로 예상되는 발전기를 포함해도 국내 상업용 해상풍력단지는 320.5MW에 불과하다. 5년간 빠르게 해상풍력을 늘려나가야 하지만 건설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세계 시장에서는 이미 뒤처지고 있다.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은 2023년 10.8기가와트(GW)에서 2028년 37.1GW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풍력발전에서 해상설치가 차지하는 비중도 9%에서 20%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기간 한국의 신규 해상풍력 발전량은 3.1GW 남짓이다. 72GW에 달하는 해상풍력 기반을 마련 중인 중국과 딴판이다. 유럽연합(EU)에서는 영국 주도로 42GW 규모의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고, 대만도 6.9GW의 새 해상풍력이 예상된다.
이런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해상풍력특별법이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해상풍력특별법은 정부가 발전지구를 미리 지정하고, 통합심의기구를 설치해 인허가 절차를 대폭 단축하는 게 골자다. 이날 오전 정부와 여야는 국정협의체 실무회의를 열고 해상풍력특별법 등을 포함한 에너지 3법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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