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삼성화재가 국내 상장 보험사 최초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하면서 업계 관심이 뜨겁다. 삼성화재의 이번 계획은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이후 높은 실적을 거두고 있는 대형 보험사들의 주주환원 계획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어서다. 다만 삼성화재가 '2028년까지 주주환원율 50%'라는 밸류업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다양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화재는 지난달 31일 밸류업 공시를 통해 지급여력비율(K-ICS·킥스)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의 목표수준을 각각 220%, 11~13%로 설정하고 주주환원율을 2028년까지 50%로 단계적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현재 보유중인 자사주 15.93%는 5% 미만으로 점차 축소한다는 방침이다.
삼성화재가 지난해 결산 실적 발표를 앞두고 밸류업 카드를 꺼낸 건 탄탄한 실적이 뒷받침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화재 당기순이익은 2020년 8000억원에서 IFRS17 도입 첫해인 2023년 1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은 1조8665억원으로 이미 2023년 실적을 뛰어넘었다. 삼성화재는 이번 밸류업을 발표하면서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2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달성한 것으로 예상했다.
실적이 증가하면서 주당순이익(EPS)도 늘었지만 주주환원율은 되레 후퇴했다. EPS는 순이익을 발행주식수로 나눈 값으로 실적 증가분에 대한 주주몫을 나타내는 지표다. 주주환원율은 기업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쓴 돈을 순이익으로 나눈 비율이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기업이 이익을 주주들에게 더 많이 나눠줬다는 얘기다. 삼성화재 EPS는 2020년 1만7643원에서 해마다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엔 4만8700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주주환원율은 2020년 49.6%에서 2023년 37.4%로 하락했고 지난해엔 약 39%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삼성화재 주주가 주주환원율을 높이라고 요구해온 것도 이런 이유다.
삼성화재는 이번 밸류업을 주도할 핵심지표로 킥스와 자기자본이익률(ROE)를 꼽았다. 킥스는 보험사가 가입자들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 나타내는 자본건전성 지표다. 삼성화재가 예상한 지난해 말 기준 킥스는 265%로 금융당국 권고치인 150%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삼성화재는 현재 여유가 있는 킥스를 중장기적으로 220%대로 낮춰 관리하는 대신 ROE를 11~13% 수준으로 유지해 자본 효율화를 꾀한다는 목표다. 그동안 곳간에 방어적으로 쌓아뒀던 돈을 앞으로는 적극 활용해 이익을 늘리고 이를 주주들에게 배분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삼성화재의 밸류업 계획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밸류업 목표달성을 위한 전제조건은 안정적인 실적인데 올해 보험업 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화재가 점유율 1위인 자동차보험 시장은 금융당국의 계속된 보험료 인하 압박과 자동차 정비수가 인상 등으로 갈수록 손해율이 악화하고 있다. 삼성화재의 지난해 자동차 보험 누적 손해율은 83.2%로 전년(80.4%)대비 2.8%포인트 증가했다. 손해율은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이다. 업계에서는 손해율이 82%가 넘어가면 손익분기점을 벗어났다고 본다. 삼성화재는 상생금융 동참 차원에서 올해도 자동차보험료를 1% 내렸다. 이밖에 건강보험 부문에서도 생명·손해보험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기준금리 인하 기조와 트럼프 2기 출범 등의 영향으로 대외 여건도 좋지않다. 금리가 내리면 보험사 부채에 적용하는 할인율이 줄면서 자산 증가 속도보다 부채 증가 속도가 더 빨라져 킥스가 하락한다. 업계에서는 기준금리가 1%포인트 내리면 손보사 킥스가 30%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본다. 보험사는 고객에게 보험료를 받아 국내외 채권 등에 투자하며 자산을 불린다. 하지만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올해 투자부문에서 고전이 예상된다. 보험연구원 금융시장분석실 관계자는 "경제성장률 둔화와 금리하락 등의 영향으로 올해 보험산업은 성장성·수익성·건전성 악화가 예상된다"면서 "보험개혁회의 주요 과제였던 상품구조와 회계제도에 관한 제도 개선도 보험료와 부채평가, 순이익 등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화재가 밸류업을 온전히 성사하기 위해 거쳐야 할 또 다른 관문은 공교롭게도 같은 삼성금융그룹 맏형인 삼성생명이다. 삼성화재의 밸류업 계획대로라면 2028년까지 현재 보유중인 자사주를 최소 10% 이상 처분해야 한다. 문제는 삼성화재가 자사주를 소각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율(14.98%)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보험업법에서는 보험사가 다른 회사 주식을 15% 초과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15%를 넘기면 금융위원회의 자회사 편입심사를 거쳐 자회사로 편입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도 받아야 한다. 증권가에서는 삼성화재 자사주 비중이 5%까지 줄면 삼성생명 지분율은 16.93%로 상승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만약 삼성화재가 자사주를 단계적으로 소각하는 과정에서 삼성생명이 삼성화재 지분을 15%가 넘지 않도록 처분하면 자회사 편입 이슈는 해소된다. 하지만 이 경우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에 따른 주가 하락 가능성이 생겨 삼성화재의 자사주 소각 노력이 무위에 그칠 수 있다.
삼성생명은 현재 삼성화재의 자회사 편입 여부 등에 대해 금융당국과 소통하며 조율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삼성화재 자회사 편입 여부는 현재 검토중인 사안으로 확정된 바는 없다"면서 "오는 20일로 예정된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구체적인 얘기가 나올 걸로 본다"고 전했다. 삼성화재 측은 밸류업 공시 이후 가진 애널리스트 대상 콘퍼런스 콜에서 "삼성생명 자회사 편입은 우리의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순수 밸류업 정책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라며 "삼성생명이 자회사 편입 승인 신청을 할지 여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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