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서울보증보험(SGI서울보증)이 다음 달 코스피 상장을 앞두고 오는 20일부터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에 나선다. 서울보증은 2023년 기업공개(IPO)를 추진했다가 수요예측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상장을 철회한 경험이 있다. 올해는 공모가를 낮추고 주주환원 계획까지 밝히며 상장 재수에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국내외 업황이 낙관적이지 않고 기관을 비롯해 개인투자자를 끌어들일 만한 투자매력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보증은 대한보증보험을 모태로 1969년 설립된 국내 최대 종합보증사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부실 금융기관이던 대한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이 합병해 현재 모습을 갖췄다. 각종 계약 이행 보증과 신원 보증, 전세자금 대출 보증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서울보증 최대주주는 지분 93.85%를 보유한 예금보험공사다. 예보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보증에 10조25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 중 5조6364억원을 아직 회수하지 못했다. 통상 IPO는 기업의 자금조달이 주요 목적이지만 서울보증의 IPO는 예보의 공적자금 회수 성격이 더 짙다. 서울보증은 이번 IPO에서 예보가 보유한 지분 중 전체 발행주식의 10%인 698만2160주를 신주 발행 없이 구주매출로 매각한다. 이는 전액 공적자금 상환에 쓰인다.
서울보증이 희망하는 1주당 공모가 범위는 2만6000~3만1800원이다. 서울보증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보면 서울보증은 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을 비교회사로 선정해 이들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을 0.61배로 산정했다. 여기에 자사 재무상황과 할인율 등을 적용해 공모가를 산정했다. 서울보증은 2023년 첫 IPO 도전 당시엔 국내 손해보험사뿐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등 해외 손보사까지 비교대상에 넣었다. 저평가된 국내 보험사만으로는 원하는 공모가를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산정한 높은 공모가(3만9500~5만1800원)는 흥행 참패를 불러왔고 서울보증은 상장을 철회했다. 이번엔 공모가 고평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해외기업을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울보증이 비교회사로 선정한 국내 주요 손보사들은 지난해 회계제도 이슈로 실적 뻥튀기 논란에 휩싸였고 역대 최대 실적 발표로 주가 상승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공모가도 고평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보증은 연초부터 국내외 등지를 오가며 수요예측 흥행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홍콩과 싱가포르 기관투자가 대상 기업설명회(Deal Roadshow·DR)를 열었다. 지난 10일부터 19일까지 국내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DR를 진행 중이다. 서울보증 관계자는 "국내 DR엔 현재까지 기관 30여곳이 참여했다"면서 "18일부터는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DR를 열 계획"이라고 전했다.
서울보증은 기관투자가에게 주주환원계획을 적극 강조하며 장기투자를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보증은 지난달 23일 이사회를 열고 지난해 결산배당금을 2000억원으로 확정했다. 2027년까지 3년간 200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금액(현금배당+자사주 매입소각)을 보장하겠다는 목표도 수립했다.
서울보증이 주주환원계획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안정적 실적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최근 사정은 좋지 않다. 서울보증 당기순이익은 2021년 4915억원, 2022년 4387억원, 2023년 4164억원으로 꾸준히 하락 중이다. 아직 지난해 연간 순이익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3분기 누적으로는 1278억원으로 과거 대비 크게 꺾였다. 국내 보증시장에서 아직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서울보증의 전체 보증시장 점유율은 2020년 26%에서 2023년 24.1%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민간 보증시장 점유율도 61.4%에서 56%로 줄었다. 서울보증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투자위험 요소엔 "향후 보증보험 시장이 개방되면 손해보험사들이 자본력과 영업채널을 바탕으로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신규 시장참여자가 발생하면 서울보증의 시장점유율 하락과 지위 변동 가능성도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국내 공모주 시장도 서울보증의 증시 입성에 우호적이지 않다. 올해 초부터 지난 14일까지 코스피·코스닥에 상장한 기업 11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8곳은 상장 당일 종가가 공모가 대비 하락했다. 데이원컴퍼니는 상장 당일 종가가 공모가 대비 40% 급락했다. 아이지넷(-37.%), 와이즈넛(-36.5%), 미트박스(-25%) 등도 20% 넘게 하락했다. 대체로 단기 차익을 노린 기관투자가가 대규모 물량을 털어내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금융당국은 단타가 판치는 공모주 시장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IPO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앞으로 역량이 부족한 소규모 기관의 무분별한 참여를 방지하기 위한 자격요건이 강화된다. 재간접펀드나 해외 페이퍼컴퍼니 등을 이용한 우회적 참여도 금지된다. 이에 규제강화 전 막차 심리로 서울보증 수요예측에 막판 단기차익을 노리는 기관이 대거 들어와 공모가가 뻥튀기되고 상장 이후 대규모 매도로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
상장 이후 예보가 보유한 지분에 보호예수(12개월)가 풀리면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가능성도 있다. 예보는 서울보증이 상장한 이후에도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의 청산일인 2027년 12월31일까지 최대 33.85%의 서울보증 지분을 수차례 나눠 매도할 계획이다. 이는 서울보증의 자사주 매입·소각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보증 관계자는 "지난해 4월부터 외부 컨설팅을 통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해 왔다"면서 "경영효율화와 시장친화적인 주주환원정책 등을 통해 성공적인 상장과 지속적인 기업가치 증대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