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두고 금융당국과 정치권·건설업계의 갈등이 깊다. 여당과 건설업계가 극심한 지방 부동산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DSR 규제 완화를 요구했지만, 가계부채 증가 및 집값 상승 우려를 하는 금융당국이 이를 거절하고 나서면서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치권은 이달 들어 금융위원회에 스트레스 DSR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4일 '민생 대책 점검 당정협의회' 이후 DSR 규제의 한시적 완화를 금융위에 공식 요청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비수도권·지방의 미분양 사태, 건설 경기 침체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파격적 규제 완화를 포함해 모든 방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지방 미분양 사태에 적극 대처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DSR(Debt Service Ratio)이란 채무자의 모든 대출 원리금(원금+이자) 상환액이 연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주택 대출 외에 신용 대출, 학자금 대출 등 모든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모두 더해 금융기관이 대출을 심사하기 때문에 보다 엄격한 규제로 꼽힌다. 은행은 대출자의 DSR이 40%를 넘지 않는 한도에서만 대출을 내줄 수 있는데 현행 스트레스 DSR 시행 이후에는 가산금리가 붙어서 대출이 더 축소됐다. 국회와 건설업계는 DSR 규제가 강해지면서 부동산 경기가 더 얼어붙었다고 주장한다.
여당 의원들은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도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게 DSR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방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DSR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며 "건설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지금이 대책을 내놓을 골든 타임"이라고 말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도 "비수도권 미분양 주택 문제는 단순한 공급 과잉이 아닌, 금융규제와 수요위축 등이 맞물린 복합적인 문제"라며 "스트레스 DSR 규제의 한시적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융위는 국민의힘의 요청을 받고 DSR 규제 완화를 고심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직 규제를 완화할 때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DSR 규제 완화로 금융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가뜩이나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더 치솟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수준은 작년 1분기 기준 92%로 세계 주요국 중 최상위권이다. 2021년 99%에서 매년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높은 가계부채로 국민들의 소비 여력이 줄고, 집값 상승과 자산 양극화 등 다양한 경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은 가계부채를 장기적으로 적정수준인 80%대 초반으로 낮추고자 한다.
DSR 규제가 실제 가계부채를 낮추고 집값의 과도한 상승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방두완 주택도시보증공사 주택도시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3년 '주택금융정책이 주택경기 및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 분석' 논문에서 주택금융정책과 가계부채의 인과관계를 조사한 결과 DSR 규제가 적용되지 않으면 가계대출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방 선임연구위원은 "실증분석 결과 DSR 기준이 적용되는 기간에는 가계부채가 감소한 반면 주택경기가 좋아지거나 DSR 규제가 적용되지 않으면 가계부채 총량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가계대출 증가 폭이 줄었는데 이는 3분기 2단계 스트레스 DSR이 시행되고 은행권의 자율규제가 강화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줄어든 영향이라고 한은도 분석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국회의원들의 요구에 "지방 건설경기가 어렵고 지원 방안을 찾는 것엔 전 부처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면서도 "보다 실효성 있는 다른 정책들을 먼저 해보는 게 필요하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현장 얘길 들어 보면 (지방 부동산) 미분양이 DSR 규제 때문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DSR 제도를)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정착시키고 있는데, 이번에 또 지방을 뒤로 뺀다면 정책의 신뢰성에 문제가 생긴다"며 규제 완화에 부정적인 인식을 보였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국민들의 자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수요를 촉발해서 부동산경기를 살리는 방식이 지속가능한 방안인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오는 7월로 예정된 3단계 스트레스 DSR 도입을 차질 없이 진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금융당국의 입장이 분명해지면서 전일 정부가 민생경제점검회의에서 발표한 '지역 건설경기 보완방안'에서도 DSR 규제 완화와 관련된 내용은 빠졌다.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약 3000가구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하고,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운영하는 기업구조조정(CR) 리츠(REITs) 출시 등이 핵심 내용이었다.
정부의 대책 발표에 건설업계는 아쉽다는 평가를 내렸다. 한국주택협회는 "이번 대책이 미분양 감소 효과를 내겠지만, 전반적인 주택수요를 진작할 수 있는 세제, 금융 지원 등 핵심적인 유인책이 담기지 않은 점에 대해서 아쉽다"고 평가했다.
다만 정부는 부동산 시장 상황을 봐가며 3단계 스트레스 DSR 적용 범위와 비율을 오는 4~5월 중에 결정하겠다고 일부 규제 완화의 여지를 남겼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3단계 스트레스 DSR은 오는 7월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라며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