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최저한세 무력화에 나선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들도 정부에 유예를 건의하기로 했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에 대한 과세권 침해를 강조하고 나선 만큼, 통상 압박을 피하려면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주요국들이 이미 글로벌 최저한세를 도입한 상황에서 한국만 늦출 경우, 한국 정부만 글로벌 기업에 대한 과세권을 손해 볼 가능성이 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1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한경협은 조만간 기획재정부에 글로벌 최저한세 신고 기간 유예를 요청할 계획이다. 한경협은 글로벌 최저한세 과세 원칙 가운데 소득산입보완규칙(UTPRU·ndertaxed payments Rule) 신고 유예를 건의하기로 했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2021년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이 주도하는 포괄적 이행체계(Inclusive Framework)에 참여한 143개국이 합의한 제도다. 국가마다 시행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미 도입을 결정한 상태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직전 4개 사업연도 중 2개 연도 이상 연결재무제표 매출이 7억5000만유로(약 1조원 ) 이상인 다국적 기업이 어디서든 최소 15%의 법인세를 내도록 하는 게 골자다. 특정 국가에서 최저한세율(15%)보다 낮은 실효세율로 과세되는 경우 다른 국가에 과세권을 부여하는 게 핵심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베트남 지부가 10%의 법인세만 베트남에 납부했다면 본사가 소재한 한국이 나머지 5%를 추가로 과세할 수 있다. 이를 소득산입규칙(IIR·Income Inclusion Rule)이라고 한다.
다만 한경협은 한국 대기업들이 정부에 세금을 추가 납부하지 않도록 IIR을 미뤄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난하고 있는 글로벌 최저한세의 초점이 소득산입보완규칙(UTPR)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UTPR을 미뤄야 한다고 보고 있다.
UTPR은 IIR을 보완하는 과세 원칙이다. 특정 국가가 IIR을 도입하지 않았을 경우 다국적기업의 자회사들이 소재한 나라들이 대신 세금을 걷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만약 삼성전자 베트남 지부가 10%의 법인세만 베트남에 납부했더라도, 한국이 최저한세를 도입하지 않아 5%를 추가로 걷지 않기로 했다면 베트남 정부가 5%를 과세할 수 있단 뜻이다. 글로벌 최저한세를 도입한 나라들은 대부분 두 과세 원칙을 함께 도입하고 있다.
한경협은 UTPR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통상 갈등이 벌어져 우리나라 기업들이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최저한세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우리나라가 UTPR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문제들을 방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이 IIR을 시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구글 코리아 등 미국 기업들에 대해 과세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보복 조치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한경협의 공식 요청이 들어오면 이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미국만 글로벌 최저한세에서 빠지고 대부분의 나라들이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이를 더 유예할 경우의 실익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가 UTPR을 유예할 경우 정작 우리나라의 과세권만 뺏기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UTPR을 유예해 걷지 않은 세금에 대해선 자회사가 있는 다른 나라들에서 걷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글 같은 다국적 기업의 모기업 입장에서는 내야 하는 세금의 총액은 같다. 즉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UTPR을 유지하는 한 한국 정부가 걷어야 할 세금만 줄어드는 것이다. 아직 많은 기업에서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으로 인한 세금의 영향을 정량화해 계산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아직 기재부에서도 글로벌 최저한세 시행으로 인한 추가 과세 규모 등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최저한세를 2024년부터 시행했지만, 아직 실제로 세금을 걷고 있지는 않다. IIR은 2024년 사업 귀속분부터 적용돼 2026년 6월부터 신고가 예정되어 있고, UTPR은 2025년 귀속분을 기준으로 2027년 3월부터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신고를 미뤄주려면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개정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경협의 요청이 정식으로 들어오면 이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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