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미국 해군의 함대 확장 계획에 따르면 향후 30년간 364척의 함정을 새로 건조·구매하며, 총예산은 1조750억 달러(약 140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하지만 미국 내 조선소들의 생산 능력은 한계에 부딪힌 상태다. 전력 공백을 막기 위해선 대규모 생산 체계가 필요한데, 해법은 미국 밖에서 찾을 수도 있다.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강국인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올해 1월 미 의회예산국(CBO)이 작성한 '미 해군의 2025년 조선 계획 분석(An Analysis of the Navy’s 2025 Shipbuilding Plan)'에 따르면, 미 해군은 2054년까지 현재 295척의 전투함을 364척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올해부터 2034년까지 13.5척, 2035년부터 2044년까지 10.8척, 2045년부터 2054년까지 12.1척의 비율로 함선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총비용은 약 1조750억달러로 추산된다. 연평균 약 400억달러가 투입될 예정인데, 이는 최근 5년간 투입된 연평균 275억달러보다 1.5배 가까운 규모다.
함대 확장의 핵심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과 항공모함이다. 특히 콜롬비아급 SSBN(전략 핵잠수함)과 버지니아급 SSN(공격 잠수함)의 생산 속도를 높여야 하는데, 현재 미국 조선소들의 생산 능력으로는 쉽지 않다. 미 해군은 최소 연간 2척 이상의 핵잠수함을 건조할 계획이지만, 조선업계의 숙련된 인력과 생산시설 부족으로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CBO는 지적했다.
미국 조선업계는 20세기 후반부터 경쟁력을 잃어왔다. 미 해군 함정을 주로 건조하는 헌팅턴 잉갈스(HII)와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의 전력만으로는 공격적인 조선 계획을 뒷받침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 미 해군의 프리깃함(FFG)과 구축함(DDG) 건조 일정이 지연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외부 조선소와의 협력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이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상선뿐만 아니라 군함 건조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해군이 운용하는 이지스 구축함(KDX-III)과 차기 호위함(FFX) 모두 한국 조선업체들이 설계·건조한 함정이다.
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은 이미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 한화오션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 조선소를 약 1억 달러에 인수하며 미국 내 조선 사업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다만 미 해군 함정을 해외에서 직접 건조하는 것은 법적 장벽이 있다. 대표적인 규제가 ‘번스-톨리프슨 수정법’으로, 이 법안은 미 해군 함정을 반드시 미국 내에서 건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조선 기업이 함선 확장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예외 조항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첫 번째로 거론되는 예외 조항은 '긴급한 안보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다. 미 해군이 특정 함정을 신속하게 확보해야 하지만, 미국 조선소의 생산 능력이 부족해 일정이 크게 지연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해외 조선소와 협력할 수 있다. 이는 현재 미 해군이 직면한 상황과 상당히 맞아떨어진다.
두 번째는 '국방 협력국(Foreign Military Sales·FMS) 또는 공동 방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경우'다. 미국은 동맹국들과 방산 협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특정 무기 시스템이나 함정을 해외에서 생산하도록 허용한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일본과 호주 같은 동맹국은 미국 방산업체와 협력해 자국에서 미군 장비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조선 및 방산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 조선업체들도 미국 방산업체들과 협력해 함정 일부를 건조하거나 부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조선업체들이 직접 건조하는 방식이 어렵다면 미국 내 한국 조선소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한화오션의 필리 조선소 인수는 이런 가능성을 열어두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또 한국 조선업체들이 미국 방산업체와 협력해 기술을 이전하고 부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일정 부분 해군 함정 건조에 참여할 수도 있다.
미국 공화당 소속 마이크 리 상원의원, 존 커티스 상원의원은 최근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과 '해안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을 최근 공동 발의했다.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은 미국과 상호 방위조약을 맺은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미 해군 함정 건조 또는 부품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해안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 역시 해안경비대 선박을 동맹국에 있는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 해군과 한국 조선업의 협력은 단순한 방산 협력을 넘어 향후 한미 경제 협상에서도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조선업체들이 미 해군 조선 프로젝트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아보일 경우, 한국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관세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이 우리 기업에 부과하려는 반덤핑 관세 철폐를 요구하는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한국 조선업체들이 미 해군 프로젝트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미 양국이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차원에서도, 조선업 협력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업계 관계자는 "미 해군의 조선 계획은 단순한 방산 프로젝트를 넘어, 미국의 글로벌 해군력 유지 전략과 직결된 사안"이라며 "미국이 기존 조선업계만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은 매력적인 옵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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