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2023년 6월에 만난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는 유통업에 꽂혀 있었다. 한국 유통업계 전반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당시 그는 한국 유통업의 4대 천황을 언급했다. 4개 업체가 업계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올리브영, 다이소, 코스트코, 온라인에서는 쿠팡. 요즘 식으로 줄이면 ‘올·다·코·쿠’다.
#올리브영(국내 상장 예정) : 해외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올리브영이다. K뷰티의 성지다. 해외 관광객들을 위한 패키지 상품은 불티나게 팔린다. 올리브영은 CJ의 캐시카우다. 곧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올리브영은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에 반드시 담아야 하는 종목이다.
#다이소(비상장) : 올리브영과 쌍벽을 이룬다. 해외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 쇼핑몰들이 샵인샵(shop in shop) 형태로 모시려 안달이 났다. 다이소 인근 주민들은 마실 삼아 다이소에 간다. 신박한 아이템이 많아 아이쇼핑만 해도 한참 걸린다. 객단가가 의외로 높다. 1000원짜리 사서 쓰다가 버리면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담다 보면 2만~3만원 금방이다. 다이소 매출은 지난해 4조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올해 5조원을 목표로 한다. 박리다매의 전형이다.
#코스트코(미국 상장) : 멤버십인 만큼 고객들의 충성심이 높다. 객단가는 다이소, 올리브영에 비해 '0'이 하나 더 붙는다고 보면 된다. 입점 기준이 까다로워 품질은 보증되고, 창업주 철학에 따라 유통마진 상한이 정해져 있는 만큼 가격은 착하다. 엄청나게 넓은 매장이 평일에도 붐비고, 주말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이유다.
#쿠팡(미국 상장) : 네이버가 맹렬히 추격중이지만, 쿠팡은 안방을 장악했다. 오늘 저녁에, 심지어 내일 이른 새벽에 주문해도 내일 아침 문앞에 갖다 놓는다는 인식이 소비자들 머리에 박혀 있다. 한번 길들여진 소비자들은 벗어나기 힘들다. 쿠팡은 지난해 매출 40조원을 첫 돌파했고, 2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했다고 26일 밝혔다. 14년간 연평균 60%의 폭발적 성장세다.
최 대표 만남 이후 1년 8개월 가량이 지났다. 4대 천황 구도에 큰 변화가 없다. 아트박스, 무신사가 선전해 ‘올·다·아·무’란 말이 새롭게 나도는 정도다.
자신만의 컨셉으로,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 잘나가는 이들 업체들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다만 숨은 의미는 짚어 봐야 한다. 4대 천황의 부각은 유통업계의 양극화를 반영하는 것이고, 구멍가게로 대표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침몰을 상징한다. 한국경제인협회·모노리서치가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자영업자 10명중 4명 이상이 향후 3년 이내 문닫을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다. 취업자 5명중 1명이 자영업자인 현실을 고려하면 이들의 침몰은 국가경제에 심각한 타격이다. 실제 여러 지표도 암울하다. 특히 한국은행이 25일 올해 성장률을 1.9%에서 1.5%로 크게 낮춘 건 가히 쇼크라 할 만하다.
하루빨리 내수를 살리는 정책이 시급하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지금 한창 얘기중인 추경(추가경정예산)은 그래서 더 서둘러야 한다. 추경은 편성에서 확정까지 통상 2개월 남짓 걸린다. 아웅다웅할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김필수 경제금융매니징에디터 pilsoo@asiae.co.kr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