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서 철근을 고정하는 작업자들, 분주하게 오가는 공사 차량, 작업 중인 대형 크레인과 중장비들. 100인치 대형 TV 속 13개 내외로 분할된 화면에서 건설 현장을 비추는 실시간 감시 카메라(CCTV) 영상이 수초 단위로 바뀌고 있었다. 각 화면 상단에는 현재 날짜와 시간이, 하단에는 해당 건설 현장 구역명이 표시돼 있었다.
이곳은 경기 수원시 경기주택도시공사(GH) 본사 사장실. 안전관리실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 사장실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최근 만난 김세용 GH 사장은 "GH가 발주한 건설 현장 20곳에 실시간 CCTV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CCTV를 설치하면 현장 소장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제가 바로 전화하니까 더 신경 쓰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현장을 중시하는 김 사장 아이디어였다. 모든 현장 소장과 근로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안전 관리 압박을 높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경영진이 건설 현장을 점검하면 일선 근로자들의 안전의식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발표한 '건설현장 추락사고 예방 대책'에서 건설사 최고경영자(CEO)의 현장 점검을 유도하는 방안을 내놨다. 국토부는 A건설사 사례를 들며 CEO가 시무식을 현장에서 진행하고, 본사 임원이 2주간 각 현장에 상주하면서 안전의식을 강조한 결과 해당 기간 사망과 부상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GH는 수개월간 준비를 거쳐 지난해 7월부터 '스마트 안전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GH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이 시스템을 통해 건설 현장의 핵심 안전 요소들을 모니터링하고 데이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김 사장은 "이 시스템 덕분인지 지난해 중대재해가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본사 10층 안전경영실에 가면 더 자세한 데이터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김 사장 말을 따라 안전경영실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실시간 현장 영상뿐만 아니라 각 현장의 위험 작업 상황, 근로자 밀집도, 공정별 위험도 분석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안전관리 데이터가 빼곡히 표시돼 있었다.
전경철 GH 안전경영실 부장은 "근로자 개개인의 위험도를 산출해 현장별로 분석한다"며 "위험도를 합산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현장의 리스크 수준을 평가하고 점수에 따라 관리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각 현장에서 시행한 안전보건 관리 활동은 자동으로 시스템에 기록되고, 이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집계돼 화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길이 10.8m의 대형 스크린의 중앙에 자리한 'GH 현장 종합 위험지수 관리'에는 경기도 내 20개 현장이 지도 위에 점으로 표시돼 있었다. 위험도 점수에 따라 50점, 80점, 100점 등으로 구분해서 현장별 수준을 관리한다.
이날 위험지수가 가장 높은 곳은 광주역세권 청년혁신타운 건립사업 현장이었다. 이곳의 근로자 평균 위험도는 59.8%였다. 전 부장은 "평균 위험도가 50%를 넘는다고 해서 당장 사고 위험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며 "작업 강도가 높거나 위험한 공정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위험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이 수치를 위험 요소를 점검하는 하나의 지표로 활용한다"고 했다.
오른쪽 상단에 있는 '위험 작업 알림'에는 총 9건의 경고가 떠 있었다. 이날 경고가 발생한 작업은 5m 이상 높이에서 동바리(임시 지지대)를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작업, 굴착 작업 등이었다. 타워크레인 설치·해체·조립, 교량거더 설치, 고소작업차 작업 등 총 15개 공정별 위험 요소를 사전에 설정해뒀고 위험 작업이 진행되는 날 관리자에게 자동으로 알림이 전송되는 구조다.
근로자 위험도는 직종, 연령, 보유 질환, 근무 기간 같은 개인 특성과 작업 종류, 공사 규모, 공정률, 공사 금액 등을 반영해 100점 만점 기준으로 산출된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이 위험도를 계산한다.
근로자가 출근할 때 QR을 스캔하면 본인의 위험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관리자는 위험도가 높은 근로자에게 즉시 알림을 보내 주의를 주고, 안전 점검, 교육, 휴식 등을 추가로 제공해 위험도를 낮춘 후 현장에 투입하도록 관리한다. 모든 현장에 설치된 CCTV를 통해 근로자의 불안전한 행동이나 상태를 모니터링한다. 출근한 근로자 정보는 QR 인식 시스템과 스마트 안전 관리 시스템을 통해 자동 기록되며, 당일 현장에 투입된 인원과 장비 수도 실시간으로 관리된다.
전체 현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각 현장이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점검한다. 예를 들어 양평, 연천, 고양, 화성, 시흥 등 각 현장의 공정률, 위험 공정 작업 계획, 사전 안전 점검 여부, 위험 청소 이행 여부, 순회 점검 시행 여부 등을 데이터로 관리한다. 한 번에 5개 현장을 집중 관리하고, 이 과정을 4번 반복해 20개 현장을 순환 점검한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월 스마트 안전 관리 시스템 운영 평가를 진행하고 순위를 매긴다.
한국전력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가철도공단 등 여러 공기업이 이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다른 기관들도 안전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건설 현장에 집중적으로 특화된 종합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는 GH가 유일하다.
전 부장은 "지난주에도 대전도시공사에서 벤치마킹을 왔을 정도로 많은 기관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안전 관리 시스템이 문화로 자리 잡는 것도 중요하기에 다른 공기업이나 기관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있다"고 했다. "스마트 안전 관리 시스템 메뉴 구성부터 운영 방식까지, 초기 시행 과정에서 발생했던 문제점과 해결 방안도 공유합니다. 다른 기관들과 협력하면서 함께 안전 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목표예요."
전 부장은 "올해부터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인 도급 사업까지 시스템을 확대하고 스마트 안전 장비와 사물인터넷(IoT) 기술 연동도 강화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시스템을 더욱 고도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GH는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체계적으로 구축한 결과 국토교통부 안전관리 수준 평가에서 2년 연속 우수 등급을 받았고, 행정안전부 경영평가 재난안전 분야에서는 3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수원=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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