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5일 한국은행의 '1인당 국민소득' 발표를 앞두고 규모와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진국 평가 기준인 4만달러를 수년 내 돌파할 것이란 기대가 크지만 건강한 상승과 실질적인 국민 체감 강화 등을 위해선 구조 개혁이 동반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은은 5일 '2024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 발표를 통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잠정치를 공개한다. GNI는 전체 국민이 일정 기간 국내와 외국에서 벌어들인 임금, 이자, 배당 등 총소득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민 구매력과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된다. 1인당 GNI는 국내총생산(GDP)에 국민의 해외 소득을 더하고 외국인의 국내 소득을 뺀 값을 인구수로 나눠 구한다.
우리나라 1인당 GNI는 2021년 3만7898달러까지 올랐다가 2022년 3만5000달러 선(3만5229달러)으로 내려앉은 후 2023년 3만6000달러(3만6194달러)를 회복했다. 1인당 GNI가 3만달러 중후반대라는 건 우리나라 국민 구매력이 높은 수준이란 의미다. 우리나라 1인당 GNI는 1953년 67달러에서 2023년 3만6194달러로 540배 증가했다. 연평균으로는 9.4% 늘었다. 2023년 기준 1인당 GNI는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 중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6위에 해당했다.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3만달러 시대를 처음 연 건 2014년(3만798달러)이다. 이후 10년간 3만달러 선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역시 성장률이 2.0%에 그친 것으로 집계된 상황에서 1인당 GNI가 얼마나 규모를 키울지는 미지수다. 수출은 지난해 6838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호조세를 이어갔으나 내수 부진이 발목을 잡았다. 한은은 5일 1인당 GDP와 함께 경제성장률 잠정치도 공개한다. 지난 1월 공개한 속보치에 연말 산업활동 등 지표를 추가해 수정한 수치다.
1인당 GNI는 환율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도 변동할 수 있다. 환율 영향을 크게 받은 대표적인 예가 일본이다. 일본은 엔화의 기록적인 약세로 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달러 환산 1인당 GNI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 역시 지난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전년 대비 58.57원 오른 1363.98원에 달하는 등 높은 수준을 기록해 1인당 GNI 증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1인당 GNI는 실제 국민 체감 소득과도 차이가 있다. GNI는 가계뿐 아니라 기업과 정부가 번 돈까지 포함한 소득을 따지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1월 사업체 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명목임금은 전년(396만6000원) 대비 2.9% 증가한 407만9000원이다. 물가 수준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월평균 357만3000원으로 전년(355만4000원) 대비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인구 구조에도 영향을 받는다. 똑같이 벌더라도 인구가 줄면 1인당 GNI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인구 감소는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정작 GNI 증가 착시로 나타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관심은 선진국의 상징인 1인당 GNI 4만달러 시대가 언제 열리냐는 것이다. 2023년 GNI 발표 전후로 정부와 한은은 "현재와 같은 흐름이라면 4만달러는 수년 내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숫자 달성보다 중요한 건 4만달러의 내용이라고 봤다.
수출을 중심으로 한 경제 성장 구조에 한계가 있는 데다 이마저 최근 통상 환경 악화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이 지난달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5%로 낮춰잡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는 지속해서 수준을 낮춰온 한국 잠재 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우리나라 2025~2030년 평균 잠재 성장률은 1.8%다. 한국 경제가 반도체·자동차 등 수출 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까지 더해져 성장에 부담이 되고 있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지난해 (990억달러)보다 적은 750억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봤다.
중장기적 성장 동력 강화를 위한 구조 개혁이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전문가들은 혁신 산업 성장에 힘을 실어 수출 쏠림을 줄이는 한편,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위한 노동 구조 개혁 등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 회복으로 내수에 온기가 돌아 국민 체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4만달러를 달성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의미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봤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돈을 써 경제를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민간이 살아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새로운 산업 성장을 돕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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