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부동산 시장은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 멈춰 세우기 어려운 무거운 돌과 비슷하다. 상승 혹은 하락장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이 시장 참여자들에게 각인되면 분위기 반전이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락장에는 규제를 풀어도 가격이 오르지 않고, 상승장에는 여러 카드를 꺼내도 가격을 잡기가 어렵다. 상승이 확인되는 순간 투자에 관심이 많은 수요자 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을 눈여겨 보지 않았던 일반인들도 뛰어든다.
지난달 12일에 서울시가 발표한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는 상승장의 포문을 열었다. 잠실·삼성·대치·청담동 아파트 갭투자가 허용되면서 호가가 뛰었다. 서울 부동산 투자를 엿보고 있던 외지인들까지 투자에 가세했다. 잠삼대청의 상급지인 압구정·반포, 하급지인 마포·성동까지 가격이 상승했다. 특히 잠실은 투자 수요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민평형(전용 84㎡)이 20억 중후반대에 거래되던 잠실 대장 단지 매매가는 30억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해 10월 28억원 중반대에 최고가를 썼던 잠실 리센츠 국평이 32억9000만원에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던 와중에 서울시는 지난달 28일 오후 늦게 이런 현실과는 동떨어진 설명자료를 냈다. 토허제 해제 이후 ‘거래량은 증가했지만 평균 거래가격은 오히려 하락해 가격 급등 현상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 골자다. 해제 전후 2주간 거래된 아파트 평균 가격이 1㎡당 3100만원에서 2955만원으로 5% 하락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2월 들어 강남3구 매매가 변동률(부동산원) 상승 폭이 매주 확대되고 있음에도 서울시는 "실거래가격이 아니"라며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해제 직후 단기 가격 급등은 모두가 예상한 결과였다. 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3232건(6일 기준)을 기록했다. 아직 한 달 가량 거래 신고 기한이 남아있음에도 1월 신고분(3312건)의 97%에 육박하고 있다. 이미 매수 심리의 확대가 비강남권으로 퍼지는 형국이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은 심각한 공급 부족 상황에 직면해있다. 올해 서울의 분양 예정 물량(2만1660가구, 부동산R114)은 지난해보다 9783가구 적다. 집값 상승기 시장참여자들은 상급지 가격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국토연구원 ‘상승기 주택 시장참여자 행태와 시사점’)한다. 이럴 때는 공급 감소가 가격 상승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만큼 매물 감소 등 공급 영향 여부를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서울시가 이런 해명을 내놓는 배경에는 토허제 해제 시점에 시장 추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덜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오세훈 시장에게 비난의 화살이 가지 않게 하려는 의도라는 의심도 나올 수 있다. 서울시는 2020년 6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이후 매년 구역을 재지정했고, 지난해 6월에도 재지정했다. 올해부터 ‘규제 철폐’를 앞세우면서 입장이 바뀐 것인데,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돌은 이미 구르기 시작했다. 토허제 해제가 시장의 맥락을 정확히 이해한 정책이었는지는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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