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유네스코 홀린 K-손맛…청년도, 탈북민도 '장'에 흠뻑
    이율립 기자
    입력 2024.11.10 08:10

MZ 농부 김민솔씨 "화학조미료 범람 속 자연이 주는 '전통의 맛' 지킬 것"

'북한 장' 탈북민 허진씨 "고난의 행군 때 잃은 모친께 이북 된장국 올려"

충남 청양군 '아나농' 마당에 늘어선 장독
[촬영 이율립]

(청양·서울=연합뉴스) 이율립 최원정 기자 = 서울에서 출발해 고속도로를 2시간여 달리고도 굽이굽이 몇십 분을 들어가야 닿는 칠갑산 자락.

한적한 산골 마을에는 약 300개의 장독이 출정을 기다리듯 열을 맞춰 서 있고, 한 편에는 태양 빛을 머금은 검붉은 마른 고추가 자리했다.

지난 8일 충남 청양군에서 만난 전통식 장류 업체 '아나농'(아름다운 나라의 농부)의 김민솔(31) 대표는 우리의 장(醬)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것이 확실시되는 데에 '안도감'을 표했다.

김 대표는 "점점 사라져가는 문화라 생각했는데, 더 많은 사람이 장의 가치를 알게 돼 다행"이라며 "아무리 화학조미료가 쉽게 감칠맛을 낸다고 한들 자연이 주는 풍요로운 맛을 비슷하게 재현하려는 것에 불과하지 않으냐. 그게 장 담그기의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

사범대에서 생물교육을 전공한 김 대표는 제2의 삶을 찾아 장류 사업에 뛰어든 어머니를 따라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이제는 9년 차가 된 업체의 어엿한 대표다.

김민솔 아나농 대표
[촬영 이율립]

처음에는 생계 수단이었지만, 콩이라는 한 뿌리에서 여러 갈래로 맛의 가지를 뻗치는 장의 매력은 김 대표를 점점 장 담그기에 몰두하게 했다.

김 대표는 "장 담그는 게 쉬워 보여도 날씨 등 고려할 게 많아 매해 고민이 달라진다"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이 장을 담그는 재미"라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한국인이라면 아는 맛'을 지켜가는 것이다.

그는 "전통 항아리를 유지하고 전통 가마솥에 장을 만드는 경우도 드문 요즘, 한국 어머니들이 지켜 온 방식을 최대한 보전하고 싶다"고 했다.

고추장이 되기를 기다리는 건고추
[촬영 이율립]

된장과 고추장 등 우리 장맛에 빠진 것은 김 대표뿐만이 아니다.

2006년 탈북한 '된장 명인' 허진(59) 진록식품 대표는 강원 태백시에서 14년째 '북한식 장' 담그기에 매진하고 있다. 허 대표에게 장이란 "생명 그 자체이고 자식과 같은 존재"다.

허 대표는 "이제야 유네스코의 인정을 받았다는 소식에 기뻐서 펄쩍 뛰었다"면서 "우리 몸은 오랜 기다림에서 나오는 장의 깊은 감칠맛을 거부하지 못한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메주에서 간장을 거르지 않고 바로 만든 북한식 된장은 짙은 검은색을 띠며 3년 이상의 숙성을 거쳐 깊고 쌉싸래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오랜 인내 끝에 제맛을 내는 장처럼 허 대표도 제대로 된 이북식 장맛을 찾기 위해 긴 시간을 헤맸다. 남한에서 처음 본 맛소금으로 장을 만들었다가 낭패를 보는가 하면 맛있는 콩과 좋은 장독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허진 진록식품 대표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어느덧 장독대에 그득 들어앉은 항아리 250여개를 정성스레 닦으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허 대표에게 장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음식은 단연 된장국이다.

그에게 된장국은 1990년대 북한에서 굶주림으로 수많은 주민이 삶을 등져야 했던 최대 위기였던 '고난의 행군' 시기 영양실조로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를 그리는 사모곡이기도 하다.

허 대표는 "된장국을 먹고 싶다는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지 못한 한(恨) 때문에 지금도 어머니께 한 그릇을 퍼 올리곤 한다"며 울먹였다.

허 대표는 전통 기법으로 만든 장맛에 빠진 청년들이 기특할 따름이다.

"다들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더 당당하고 멋있게 장을 만들어서 K-푸드에 열광하는 세계인들에게 내놨으면 좋겠어요. 저도 밥숟가락을 놓을 때까지는 장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겁니다."

2yulri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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