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넥슨서 분사…"게이머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회사 만들겠다"
"데이브 판매량 500만장 근접…DLC, 사실상 데이브 1.5 수준"
(성남=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넥슨에서 히트작 '데이브 더 다이버'를 만들어낸 스타 게임 개발자 황재호 민트로켓 대표.
그를 지난 7일 넥슨 판교 사옥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계기는 '왜'라는 질문에서였다.
황 대표는 넥슨코리아 신규개발본부 팀장 시절인 2022년 10월 얼리 액세스(앞서 해보기) 버전으로 '데이브'를 내놨다.
'민트로켓'이라는 서브 브랜드 아래 20여명 남짓한 개발진이 만든 해양 어드벤처 게임 '데이브'는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4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올해 초 영국 아카데미(BAFTA) 게임상 시상식에서는 한국 게임 최초로 '게임 디자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유명 개발자로 이름을 알린 황 대표도 '데이브'의 성과로 팀장에서 '데이브실' 실장을 거쳐 지난 4월 '민트로켓본부' 본부장까지 고속 승진했다.
그로부터 반년가량이 흐른 지난 10월, 민트로켓은 돌연 넥슨코리아에서 떨어져나와 이달 초 정식 출범했다.
민트로켓이 갑작스럽게 '홀로서기'를 하게 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황 대표에게 직접 들어봤다.
◇ "작은 팀서 시작한 민트로켓…사업·개발 일체화된 DNA 가져가고 싶었다"
게임 업계에서는 민트로켓 분사를 두고 여러 '설'들이 오간 바 있다.
하지만 이를 언급하자 황 대표가 가장 먼저 꺼낸 키워드는 뜻밖에도 '자율성'이었다.
황 대표는 "넥슨을 비롯한 대형 게임사는 개발자와 사업 담당 조직이 분리돼 의사결정이 느린 편인데, '데이브' 개발팀은 특이하게도 PD인 내가 사업도 총괄해서 의사결정에 통일성과 속도감이 있었다"라며 "그래서 얼리 액세스 과정에서 이용자 의견을 빠르게 듣고 반영할 수 있었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 규모가 커져도 민트로켓의 특징인 이용자 커뮤니티와의 밀접한 소통, 신속·유연한 의사결정 구조는 계속 가져가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십 명 수준의 개발팀 때라면 모를까, 넥슨코리아라는 국내 1위 규모의 대형 게임사 산하 본부로서는 난관이 많았다는 것이 황 대표의 설명이다.
황 대표는 "경영진들에게 이런 어려움을 토로했더니 먼저 분사를 제안해 주셨다"며 "과거 창업했다 실패한 경험도 있어 꺼려진 것이 사실인데, 새로운 개발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 고민 끝에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몇 언론 기사들은 제가 더 큰 보상을 요구하며 분사를 원했다거나 외부 투자 제안, 특정 경영진과의 갈등을 언급했는데 전부 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황 대표는 '데이브' 성공으로 해외 시상식이나 게임 행사에 초청받아 다양한 외국 게임 개발자들과 교류했다.
그 과정에서 민트로켓만의 개발 문화에 대한 실마리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황 대표는 "근무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근무하되, 결과로만 이야기하는 기업이 많아 놀랐다. 또 프로그래머는 호주에, 아트 담당은 유럽에 두고 일하는 회사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한국 게임끼리 경쟁할 때라면 모를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개발 방식도 글로벌에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 "레이블 체제로 재능 있는 개발자에 자율성 주되 통일감 챙겨야"
황 대표는 게임 업계가 앞으로 음반 업계의 레이블 체제처럼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센스와 재능이 있는 개발자에게 폭넓은 자율성을 부여해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다만 서로 다른 프로젝트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명확한 기조가 있어야 하고, 서로 노하우를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성원의 동기부여에 큰 영향을 줄 보상 시스템도 언급했다. 황 대표는 "개개인의 역할과 책임이 큰 만큼, 인고의 과정을 거쳐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큰 보상을 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트로켓의 자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당분간 걱정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황 대표는 "데이브 더 다이버가 아직도 월 단위로 흑자를 내고 있다. 누적 판매량은 500만 장에 근접했다"며 "얼마 전 메이플스토리와의 협업 이벤트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한국에서 매출이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데이브'의 정규 DLC(다운로드 가능 콘텐츠)에 대해서는 후속작까지는 아니지만 '데이브 1.5' 수준의 변화가 있을 거라고도 언급했다.
그는 "사람이 성공하고 나면 전에 한 일을 답습하는 경향이 생기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데이브'가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던졌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한 번 밥상을 뒤엎고 새롭게 작업하고 있다. 기존 시스템도 많이 바뀌고, 새로운 메커니즘도 등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데이브'의 IP를 다른 장르로 확장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고 싶다"라고도 덧붙였다.
◇ "시장 변화 예측하기보다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봐야"
그는 개발자이자 기업 대표로서 게임 개발에 대한 철학도 선명하게 드러냈다.
황 대표는 "시장 변화를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수익성만 바라보게 보면 결국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나 방치형 키우기 게임에 갇히게 된다. 그러면 레드오션을 마주하고, 마케팅비를 마구 늘리고, 결국 얻고자 했던 수익성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 대신에 황 대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게임에서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 면밀하게 살펴보고 이에 맞춘 게임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트리플A(블록버스터급) 게임이면 무조건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 대신에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서 어떤 게임이 대세지?'를 더 많이 본다"며 "그래서 마케팅에 큰 비용을 쓰기보다는 커뮤니티 관리에 집중해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뭔지 직접 소통하며 파악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데이브 같은 경우만 봐도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하니 바다를 소재로 게임을 만들자'에서 시작해 '바다를 무대로 한 3D 게임은 피로감이 심하니 2D로 만들자', '바다만 나오면 재미없으니 스시도 넣자'는 식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다음 번에 나올 게임도 그렇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목하는 트렌드나 장르를 묻자 민트로켓이 개발 중인 차기작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슈퍼 패미컴(슈퍼 컴보이) 시절의 JRPG(일본식 RPG) 향수를 재현하는 게임에 요즘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과도한 경쟁보다는 느긋하게 즐기는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이라며 "과거에 흥했다가 지금은 죽은 장르를 눈여겨보고 있다. 과거 오락실에서 많이 하던 탄막 슈팅(총알이 화면을 뒤덮는 슈팅게임)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게임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황 대표는 "요즘 취업 준비생 중엔 게임업계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란 말이 있는데 거기 게임사는 없다"며 "성공 사례도 과거보다 적어졌고, 게임의 재미보다는 양대 앱 마켓 순위를 기준으로 평가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깊은 울림을 주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미 보여줬고, 앞으로도 보여주고 싶다"며 "게임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라고 강조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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