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14일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 한쪽 숲 사이로 구불구불 난 비탈길을 오르자 끝이 어디인지 모를 깊은 동굴 입구가 보였다.
총길이 550m, 깊이 120m에 달하는 인공동굴인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에 도달한 것이다.
지하처분연구시설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만들기 전 처분장에서 폐연료를 저장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실증하는 곳이다.
지하에 거대한 연구시설을 마련한 이유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보관하는 처분장이 통상 지하 500m 깊이에 '심층처분' 방식으로 지어지기 때문이다.
김진섭 원자력연 저장처분실증연구부 공학적방벽시스템 팀장은 "고준위 폐기물 처분법은 우주에 폐기하거나 해저나 빙하에 묻는 등 다양한 방법이 논의됐지만 기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가장 현실적 해법은 땅속 500m 이상 깊은 암반에 영구히 처분하는 것"이라며 "천연 방벽을 통해서 10만년 뒤 방사선이 안전한 수준까지 떨어지는 깊이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지하 처분장은 구리로 만든 원통에 방폐물을 담은 후 벤토나이트라는 점토성 물질로 감싸 땅에 묻어 보관하게 된다.
부식에 강한 구리를 쓰면서 물을 머금으면 팽창하는 벤토나이트가 외부 물 유입을 막아 용기 부식을 최대한 막는 원리다. 화장품 흡착재로도 쓰이는 벤토나이트는 만에 하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을 때 이를 흡착하는 역할도 한다.
이 연구시설에서는 실험실과 전혀 다른 환경인 지하에서 방폐물을 담을 용기의 안전성과 방사성 물질의 외부 확산 정도를 분석한다.
순수 연구시설로, 사용후핵연료와 방사성폐기물을 반입할 수 없는 대신 100도 이상 올라가는 폐기물의 높은 온도를 히터로 대체하고, 방사성핵종 대신 안정동위원소로 방사성물질 확산을 모사한다.
KURT는 가장 깊은 곳이 산 정상 기준 120m 깊이다. 실제 방폐장의 5분의 1 수준으로, 실험 조건도 5분의 1 수준으로 완화한다.
경사도 10%의 살짝 가파른 내리막길을 계속해 내려가다 보니 동굴 벽 곳곳에는 콘크리트가 어디서 균열이 발생할지 찾기 위해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하기 위한 데이터를 받는 센서들이 꽂혀 있었다.
중간중간 개미굴처럼 파인 공간에는 500m 깊이까지 뚫린 시추공들이 바닥 곳곳에 널려 있었다.
100m 깊이 지하에서의 실험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일부 시험설비는 시추공을 활용해 500m 실제 환경도 만들어 검증한다.
김 팀장은 "지하 500m에서는 지하수에 산소가 존재하지 않아 혐기성 미생물이 자라고 pH도 10까지 높아지며 유속도 훨씬 느려지는 등 환경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KURT 가장 아래까지 도달하자 KURT 곳곳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모은 물이 수조에 담겨 있었는데, 하루에만 35t의 물을 바깥으로 빼낸다.
이런 암반 균열을 따라 흐르는 지하수는 심층처분시설의 안정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 중 하나라고 김 팀장은 설명했다.
가장 아래 실험시설에서는 처분용기를 500m 아래 묻고 열과 수압을 견디는지 분석하는 실험, 처분용기 재료 후보물질들의 부식 여부를 검증하는 시험 등이 진행되고 있었다.
KURT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확보한 기술과 데이터들은 500m 깊이로 새로 지어질 지하연구시설(URL)에서 최종 검증을 거쳐 고준위 방폐장에 도입된다.
정부는 오는 2026년부터 지하 500m 깊이에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스템의 성능을 실험·연구하는 연구시설을 추가로 짓기로 하고 지난 6월 부지 공모를 시작했다. 현재 강원 태백 등이 거론되고 있다.
김 팀장은 "예를 들어 균열이 없는 깨끗한 암반은 굉장히 열을 잘 발산하는데 균열이 있으면 열을 발산하지 않는다"며 "현장 시험이 실내 시험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지하연구시설(URL) 실험으로 데이터 신뢰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shj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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