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퍼스트 버디(first buddy·1호 친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우선주의를 위해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미국의 칼날을 막아내는 '제2의 키신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후 중국에 보일 행보는 불 보듯 뻔하다. '관세맨'을 자처한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 부과를 예고한 상태다. 이미 1기 집권 시절 중국산 제품 수천개에 고율 관세를 매기며 '무역 전쟁'을 개시한 경험이 있는 만큼, 취임 첫날부터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에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내수 부진으로 수출 의존도가 높아진 중국 입장에서 관세 폭탄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은행권·지방정부의 부채 위기 등을 겪으며 경제 동력이 약해진 상태다. 래리 후 맥쿼리그룹 중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추가 관세로 중국의 연간 수출이 8%, 경제성장률이 2%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중국이 트럼프 1기 때보다는 잘 버틸 것이란 관측도 있다. 중국은 과거 미국 수출길이 끊기자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등에서 대체 수출시장을 개척했고, 현재 청정에너지 분야의 지배적인 공급처로 발돋움했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규제망을 꺼내들자, 중국은 기술력 자급자족을 추진해 성과를 내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대로 관세 폭탄을 투하해 중국과 더 센 무역전쟁을 치를 경우 머스크 CEO 역시 입장이 난처해진다는 점이다. 테슬라의 해외 최대 공장은 중국 상하이에 있다. 테슬라의 첫 해외공장으로서 2019년 가동을 시작한 상하이 기가팩토리는 건설 초기부터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당초 2년으로 계획했던 공장 건설 기간은 '규제 프리패스'를 밟은 듯 1년 만에 완공됐다. 현지 국영은행들로부터는 110억위안(약 2조원) 상당의 저금리 대출도 받았다.
테슬라는 중국 본토에 독점적으로 공장을 소유한 처음이자 유일한 외국 자동차 업체이기도 하다.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 등 중국 내 대부분의 외국 자동차 업체가 중국 현지 파트너와 합작사 형태로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생산 부품의 95%를 현지에서 조달하고 있는 테슬라 상하이 공장은 최근 누계 생산량 300만대를 돌파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폭탄 관세'를 예고한 중국은 테슬라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머스크 CEO의 최대 고객이라는 점에서 미·중 관계가 더 틀어질 경우 머스크 CEO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머스크 CEO가 사활을 걸고 있는 자율주행 사업을 위해서도 중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테슬라는 지난 6월 상하이에서 테스트 승인을 받고 완전자율주행(FSD) 시스템 탑재 자동차 출시를 목표로 절차를 밟고 있다. 중국 토종 전기차 기업들이 테슬라에 맞서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터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과 대립각을 세울 경우 테슬라의 중국 내 FSD 자동차 출시가 불투명질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총애를 받는 머스크 CEO가 중국 사업 보전을 위해 '트럼프표 관세장벽'에 맞서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과의 관계 유지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인물은 머스크 CEO뿐만이 아니다. 그의 모친 메이 머스크(76)가 2020년 발간한 회고록 '여자는 계획을 세운다'(A Woman Makes a Plan) 중국어판은 중국에서 베스트셀러다. 메이 머스크는 베이징 등 중국 대도시 중산층 여성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테슬라의 홍보대사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중국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머스크 CEO가 차기 행정부에서 '제2의 키신저' 역할을 해줄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리처드 닉슨 행정부와 제럴드 포드 행정부 시절 활동한 '외교 거목'으로, 중국을 100차례 이상 방문해 양국 정상회담을 성사하는 등 냉전 시대 첨예하게 대립했던 미·중 관계를 개선한 핵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머스크 CEO는 지난 4월 중국을 깜짝 방문해 리창 총리와 회동하는가 하면 올해 초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산 전기차에 부과하는 관세를 100%로 인상하자 미·중 갈등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스콧 케네디 중국 비즈니스·경제 부문 수석은 "몇 달 새 머스크가 워싱턴과 베이징 간의 교류를 중개하는 제2의 키신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연구소의 왕이 웨이 소장 역시 "머스크는 중국과 미국을 모두 이해하는 사업가"라며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한 폭탄 관세를 취소하거나 완화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CNBC는 "키신저가 남긴 공백을 머스크가 메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그가 중국 고위 관리들과 더 자주 접촉하면서 생겨났다"고 짚었다.
베이징 소재 싱크탱크 '중국과 세계화센터'(CCG) 설립자 왕휘야오는"머스크, 팀 쿡(애플 CEO), 스티븐 슈워츠먼(블랙스톤 CEO) 등 저명한 비즈니스 리더들이 힘을 모아 '키신저 그룹'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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