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까지 중국발 공급과잉 지속…"중국의 판단미스와 경기침체 영향"
동남아, 韓·中 격전지로 부상…스페셜티 확대에 정부 지원도 동반돼야
(서울=연합뉴스) 강태우 기자 =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주력 제품이자 기초 소재인 에틸렌 등의 '중국발 공급과잉'이 지속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을 앞세워 돌파구 마련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글로벌 경기침체, 미국의 대중국 제재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과 중동을 중심으로 오는 2026∼2030년 합산 약 4천만t의 에틸렌 설비 증설이 계획돼 있다. 예정대로 증설이 진행될 경우 길면 2028년까지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수급 불균형'이 심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중국의 경기 부양책 실시로 석유화학 제품들의 수요 개선 기대감이 컸으나, 생각보다 그 효과가 크지 않아 누적됐던 물량의 해소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태에서 향후 증설로 인한 물량까지 더해지면 공급과잉 장기화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중국발 공급과잉은 투자를 그동안 과하게 해버린 중국의 판단미스 때문"이라며 "중국 경기도 나빠지면서 자국 내 수요 또한 크게 줄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불확실해진 미국과의 관계로 교역이 막힌 것도 공급과잉을 일으킨 요인"이라며 "트럼프가 재당선되면서 수요는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생산하는 범용 제품이 미국으로 직접 수출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이를 활용하는 중국산 완성품·소비재들의 수출길이 점점 좁아지는 데다 경기침체로 중국 내 소비가 줄어드는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공급과잉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중국이 국내 업체들이 겨냥하고 있는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교수는 "중국 업체들이 다른 곳으로 물량 밀어내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국내 업체들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며 "우리가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도 끊긴 상황에서 이제 동남아 시장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국내 업체들은 중국이 점령한 범용 제품이 아닌 스페셜티 제품을 포함한 미래 먹거리 발굴과 육성에 주력하며 살길을 찾고 있다.
LG화학은 기존 폴리염화비닐(PVC)이 가진 단점인 내열성을 극복한 초고중합도 PVC를 개발했다. 유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이 제품으로 현재 수입산 위주인 전기차 급속·초급속 충전 케이블 소재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한다.
롯데케미칼은 강철 소재 대비 약 30% 무게를 줄인 '열가소성 장섬유 복합재(LFT)'를 개발하고 모빌리티 구조물, 가전제품, 산업자재 등에 적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고기능성 플라스틱 소재, 건축용 고부가 인조대리석 소재 등도 시장에 선보이는 중이다.
금호석유화학은 고기능성 타이어용 합성고무(SSBR)와 이차전지 신소재로 주목받는 탄소나노튜브(CNT)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스페셜티 제품도 경쟁자가 늘고, 진입장벽이 낮아지면 미래에는 범용 제품이 될 수 있다"며 "스페셜티에서도 중국이 따라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투자를 통해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기업만의 노력만으로는 불황 돌파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경제 회복과 미중 패권 경쟁 등 외부 불확실성도 크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스페셜티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30년 전부터 나오는 것으로 중국 역시 이 분야에서 야심이 크다"며 "불황 속에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활로를 찾게 돕기 위해서는 화학 산업과 관련한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이 이 산업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이라며 "화학산업은 위험하다는 사회적 인식도 함께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burning@yna.co.kr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