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정부가 이달 내놓는 석유화학 사업 경쟁력 강화 방안과 관련해 업계 자율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정책금융 지원과 세제 혜택으로 석화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유도한다는 방침인데, 정부 개입이 미뤄질 경우 기업 간 ‘치킨게임’ 양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석화 업계 사업재편에 대해 "자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번 대책에는 사업 재편을 시도하는 기업에 대한 저리(低利) 정책금융 지원, 인수합병 과정에서의 세제 혜택 등이 포함되는데, 산업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 현대석유화학을 LG화학과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 분할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에 개입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적 위기가 아닌 만큼 개입에 선을 긋고 있다.
정부는 자율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업활력법)을 석유화학 업종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활력법은 공급과잉 업종에 속한 기업이 자발적으로 설비를 감축하거나 인수합병(M&A)을 추진하면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제도다.
해당 기업에는 ▲사업재편 절차 간소화 ▲공정거래법상 규제 유예 ▲고용안정 지원 ▲세제·자금 지원 등 혜택을 지원한다. 기업활력법상 지원 대상은 과잉 공급·산업 위기·신산업 진출·탄소중립·공급망 안정 등으로, 석화기업이 이를 활용해 구조조정에 나선 사례는 없었다.
정부는 지난 9월 기업활력법의 공급과잉 업종 판단 기준을 개정하며 적용 폭을 넓혔다. 기존에는 장기 10년, 단기 3년간의 실적만을 기준으로 삼았으나 개정 후 20개 분기(5년)와 4개 분기(1년)를 비교하는 방식을 추가했다. 기존 방식으로는 급격히 변화하는 산업 환경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업계에서는 그러나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해선 효과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사업재편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책임 소재 문제 등으로 정부 개입 없이는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나프타분해설비(NCC) 공장 매각을 검토 중이지만 적합한 인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석화 산업의 사이클상 다시 상승세가 나올 것으로 보고 적자에도 공장을 가동하는 ‘치킨게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기업들은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며 현금 확보에 나서는 양상이다. LG화학은 지난해 IT 소재 사업부의 편광판 및 소재 사업을 중국 업체에 약 1조1000억원에 매각했고, 올해 3월에는 여수 스티렌모노머(SM)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롯데케미칼은 해외 법인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약 1조3000억원을 확보했으며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 법인(LUSR) 청산을 결정했다.
정부는 2021년 발표했던 탄소중립 사업재편 대책의 연장선에서 구조조정을 지원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시 정부는 ▲구조조정 추진 기업이 자산 매각 대금을 신규 투자에 활용할 경우 양도차익 법인세 과세 유예 ▲연구개발(R&D) 비용 지원 확대 ▲사업구조 개편 추진 전용 금융 프로그램 조성 등 종합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중 갈등도 격화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정부의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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