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국내 이차전지 기업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 북미 이차전지 시장이 역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정원석 IM증권 애널리스트는 22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북미 이차전지 시장이 8%에 머물렀다"며 "전기차 보조금이 크게 감소한다면 올해 마이너스 성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성장 정체), 중국의 추격, 트럼프 리스크 속에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효율화하는 동시에 초격차 기술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정원석 애널리스트와의 일문일답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실적이 좋지 않다. 배경을 분석하자면?
"북미, 유럽의 전기차 수요가 생각보다 많이 부진하다. 북미 시장의 경우 전기차 보조금을 지원하는 상황에서도 지난해 8% 성장에 그쳤다. 유럽에서는 중국 기업에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다. 유럽에서는 한때 한국 기업들이 60~70%대의 점유율 차지했으나 지금은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졌다. 수요는 감소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엄청나게 증설했다. 결과적으로 가동률이 낮아지면서 고정비 부담이 늘어나고 수익성 압박이 확대됐다. 올해에는 공급 과잉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전기차 수요는 언제쯤 다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나
"전기차 수요 정체는 가격 경쟁력, 충전의 불편함, 안전성에 대한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러한 부분들이 개선될 때 보조금없이도 자생적으로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와 같이 소비자들이 정말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제품이 확대된다면 전기차 수요가 다시 늘어날 수 있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전기차 캐즘이라고 불리는 수요 부진은 생각보다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배터리 기업의 수익성이 회복하는 시점은 언제로 전망하나?
"공급 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은 우선 당분간 시설 투자를 보수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2027년~2028년에는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며 국내 기업들도 수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미국이 어떻게 보조금을 없앨지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정말로 보조금 지원이 축소되거나 훼손이 될 경우에 가격 부담이 높아지면서 올해 미국 전기차 시장의 수요가 지난해보다 더 부진할 수 있다. 만약 전기차 보조금이 완전히 없어진다면 올해 역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전기차 시장을 상쇄할 수는 없나?
"재생에너지가 보급되면서 ESS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 자체가 크지 않다.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대비 10분의 1 정도의 규모다. 더욱이 국내 기업들이 타깃으로 하는 곳은 미국 ESS 시장으로 제한돼 있다. 유럽 등 다른 ESS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이 많이 장악한 상태다."
▲국내 기업들이 개발하고 있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중국과의 가격 경쟁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삼원계 배터리의 평균 판매가격은 킬로와트시(kWh)당 80달러, LFP 배터리는 50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배터리의 평균 판매단가는 각각 120달러, 90달러다. LFP의 경우 중국산 배터리에 80%의 관세를 부과해도 한국 배터리와 비슷해진다. 거기다 중국 LFP 배터리의 성능도 우수하다. 한국 LFP 배터리의 시장은 유럽보다는 북미, 그것도 전기차용보다는 ESS로 제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LFP의 대항마로 여겨지는 고전압 미드 니켈 배터리의 전망은?
"굉장히 제한적인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하이니켈은 가격이 비싸지만 고에너지밀도이고, LFP는 약간 에너지밀도는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하다. 고전압 미드니켈은 그 중간으로 애매한 위치에 있다."
▲국내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결국은 무엇보다 기술 차별화가 필요하다. 반도체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디스플레이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있듯이 이차전지에서도 확실하게 차별화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에서 중국에 앞서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도 연구개발(R&D)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CATL의 R&D 비용이 연간 3조원인데 비해 LG에너지솔루션은 1조원 규모다. 이같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들이 좀 더 치열하게 R&D에 나서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앞설 수 있는 분야는?
"건식 전극 공정, 전고체 배터리, 실리콘 음극재 등에서 우리가 중국보다 앞서야 한다. 전고체 배터리의 경우 삼성SDI가 2027년을 상용화 시점으로 제시했으나 중국 기업은 이보다 앞선 2026년에 상용화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아직 적극 나서지 않고 있는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도 시장이 형성되면 바로 중국이 상용화할 가능성이 있다. 실리콘 음극재도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다. 실리콘 음극재 비중을 30%까지 확대할 수 있다면 전기차 충전 시간을 3분 이내로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테슬라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데.
"휴대폰이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갔듯이 전기차도 앞으로 스마트카, 자율주행차 시대로 발전할 것이다. 전기차가 피처폰이라면 자율주행차는 스마트폰에 비유할 수 있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하면서 상당수 기업이 정리되고 애플과 삼성전자 정도만 남았듯이 자율주행차 시대에도 구조조정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거기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후보가 테슬라다. 따라서 테슬라의 공급망에 편입돼 있는 국내 기업들은 향후 성장 여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