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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전기차 캐즘 끝나면?…현대차그룹, 글로벌 1위 열쇠는 '유럽'
    입력 2025.02.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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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편집자주[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는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3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혁신 비결을 정리한 콘텐츠입니다. 예로부터 자동차 산업을 주도한 국가가 글로벌 경제의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제조업의 꽃인 자동차 산업은 기술 발전과 수출, 고용의 측면에서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과거 현대차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였다면 이제는 산업을 이끄는 선두 주자(first mover)로 부상했습니다. 글로벌 취재 현장에서 느낀 현대차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주소를 그대로 전달해드립니다. 연재는 40회 이후 서적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최근 유럽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더라고요. 현지 딜러들 분위기도 상당히 침체돼 있습니다. 유럽이 아무리 선진국이라 해도 충전 인프라 구축에 나라마다 편차가 있더라고요. 게다가 중국 전기차 업체도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2024년 연말 유럽 시장을 둘러보고 온 현대차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8.2%로 2년 연속 8%대에 머물고 있다. 판매 대수로는 2018년 처음으로 100만대를 돌파한 이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연간 100만대 판매를 넘어섰다. 하지만 판매 증가율로 보면 성장은 둔화하고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의 직격탄을 맞으며 지난해에는 아예 하락세(-3.8%)로 돌아섰다. 같은 기간 연간 최대 실적을 경신한 미국·인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현대차그룹에 미국·인도는 적극적인 투자로 점유율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주요 타깃 시장이다. 즉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시장이다. 반면 유럽과 한국은 그동안 늘려왔던 점유율을 지켜야만 하는 시장이 됐다. 공격적으로 판매량을 늘리기 어렵다면 적어도 점유율이 떨어지지는 않아야 한다. 유럽차 시장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전 세계 3위 규모다. 중국을 제외한 주요 시장 중 캐즘이 가장 빨리 끝날 것으로 기대되는 시장이기도 하다. 필자는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1위를 결정하는 열쇠는 결국 유럽 시장이 쥐고 있다고 본다. 미국·인도의 상승세와 더불어 유럽 시장에서 의미 있는 확장이 뒷받침될 때 전체 글로벌 판매 실적에서 1위를 노려볼 수 있다.

뚝뚝…유럽 점유율 둔화 이유는

현대차는 올해부터 유럽 생산 기지인 체코공장 생산 속도 조절에 나섰다. 체코공장의 2025년 생산 목표를 29만5000대로 전년 생산량 대비 10%가량 낮춰잡았다. 시간당 생산량도 기존의 66대에서 60대 수준으로 줄였다. 유럽에서 전기차 수요가 감소하면서 전반적인 시장 침체가 예상되는 탓이다. 여기에 최근 유럽법인 경영진도 교체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지난해 현대차는 15년 만에 새로운 유럽법인 최고경영자(CEO)를 임명했으며 기아도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제품·마케팅 총괄 담당 부사장을 교체했다.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되면서 유럽 시장 전반적인 산업 수요도 감소하고 있다. 2024년 유럽연합(EU)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그리고 영국까지 포함한 유럽 경상용차 판매는 1296만3614대로 전년 대비 0.9% 증가에 그쳤다. 그중에서도 가솔린(-6.8%), 디젤(-11.8%)을 비롯해 순수 전기차(BEV·-1.3%),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3.9%)까지 모든 차종 판매가 줄었다. 하이브리드(HEV) 차량만이 유일하게 19.6%의 유의미한 증가세를 보였다.

대중적인 시선에서 선진 시장인 유럽은 충전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고 환경 규제도 엄격해 전기차 전환이 빠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럽에 가보면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현황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열악하다. 또 유럽은 국가마다 인프라 구축 편차가 클뿐더러 각국의 이해관계도 다르다.

2023년 3월 독일 함부르크 시내를 돌아다니며 전기차 충전기 사용과 설치 현황을 둘러본 적이 있다. 도심 근처에 대형 충전소는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대형 빌딩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충전기는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돼 접근이 불가능했다. 시내 곳곳에서 지상 충전소도 눈에 띄었지만 평일 낮 시간대인 데도 충전 중인 차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폭스바겐 독일 본사 담당자는 "대부분 전기차 차주들은 본인의 집에 자가 충전기를 설치해놓고 사용한다"며 "정해진 장소에서 충전하고 정해진 거리(통근용)를 이동하기 때문에 공공 충전기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독일 함부르크 대형 빌딩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모습. 평일 낮시간인데도 전기차 주차 자리는 텅 비어있다. 우수연 기자
독일 함부르크 시내 지상 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평일 낮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주차 자리는 텅 비어있다. 우수연 기자

글로벌 차충비(충전기 1대당 전기차 비율) 수치만 봐도 유럽의 열악한 인프라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공공 충전기 1기당 전기 승용차 등록 대수는 세계 평균 11대다. 미국 26대, 유럽연합이 14대, 중국이 8대로 나타났다. 33개 국가 중에 차충비가 가장 낮은 국가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충전기 1대당 전기차 3대가 나누어 쓰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럽은 국가별 편차가 유독 심했다. 전 세계 전기차 보급률 1위인 노르웨이는 차충비가 34대에 달했다. 영국은 31대, 독일은 25대였다. 반면 프랑스는 14대, 이탈리아 11대, 네덜란드는 5대 수준이었다. 각국의 충전기 설치 및 전기차 보급 편차가 크기 때문에 유럽 시장을 바라보는 완성차 브랜드가 일괄적인 전기차 전환 전략을 펴기가 어렵다. 세분화된 시장별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관세 빗장' 유럽…"中 전기차 공세 막아라"

중국산 전기차 공습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속내도 천차만별이다. 중국 전기차에 징벌적 관세 부과 방안만 해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각국 입장은 모두 다르다. 유럽연합(EU)은 중국 정부가 자국 전기차 업체에 과도한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룰을 깼다고 생각한다. 연구개발(R&D) 자금 지원, 저리 대출, 전기세 감면, 원자재 가격 할인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전기차 산업의 뒤를 봐주는 중국 정부의 지원 정책이 공정 무역 질서를 해칠 만큼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 독일 업체는 글로벌 판매에서 중국 비중이 30%가 넘는다. 독일은 중국산 전기차 관세 부과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유럽이 중국차에 관세를 물릴 경우 중국 정부가 보복 관세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종 소비재를 파는 완성차 기업은 중국인의 민심도 챙겨야 한다. 독일이 중국산 전기차 관세 부과에 함부로 찬성할 수 없는 이유다.

반면 중국 판매 비중이 높지 않은 이탈리아나 프랑스는 찬성한다. 르노, 스텔란티스 등 대중(mass) 브랜드를 보유한 이들 국가는 중국산 전기차에 안방 점유율을 내어줄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수많은 논의와 투표를 거쳐 EU는 2024년 10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기존 관세 10%에 더해 최대 35.3%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부과 대상은 BYD, 지리차, 상하이차 등 중국 로컬업체는 물론 중국 현지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해 유럽에 들여오는 테슬라, BMW 등 미국·독일 업체에도 적용된다.

단기적으로 보면 유럽의 중국산 전기차 관세 부과는 현대차·기아에 반사이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무역장벽 없이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유럽에 중국산 전기차 침투율이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포스에 따르면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의 점유율은 2024년 6월 11.1%까지 높아졌다. 당시 7월부터 초기 관세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으로 업체들이 판매량을 급격히 늘린 영향이다. 관세 부과가 시작된 11월부터는 점유율이 7.4%까지 낮아졌다가 연말(12월)에는 8.2%를 유지했다. 이번 조치는 무역 장벽을 세우지 않으면 2025년에는 유럽 신규 판매 전기차 4대 중 1대는 중국산 전기차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이뤄졌다. 관세를 올려 중국산 전기차의 최대 강점인 가격 경쟁력을 없애버리겠다는 유럽의 선전포고와도 같다.

현대차·기아는 중국이 관세로 주춤하는 틈을 비집고 유럽 친환경차 시장에서 서둘러 자리를 잡아야 한다. 특히 유럽인이 선호하는 소형차(A·B세그먼트) 시장에서 누가 경쟁력 있는 전기차를 먼저 내놓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현대차는 2024년 말부터 소형 전기차 캐스퍼(현지명 인스터) 판매를 시작했다. 독일에서 캐스퍼 전기차 시작 가격은 2만3900유로(3600만원) 수준이다. 비슷한 체급의 시트로엥 e-C3(2만3300유로), 상하이차의 MG4(2만8990유로), 폭스바겐 ID.3(2만9760유로)와 비교해도 경쟁력 있는 가격이다. 기아도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3로 유럽 보급형 전기차 시장을 공략한다. 현대차그룹은 대부분의 주력차종에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추가해 전기차 캐즘을 버텨낸다는 전략이다.

강화된 탄소 배출 규제…현대차의 복잡한 셈법

올해는 유럽의 탄소 배출 규제가 한층 강화된다. 유럽연합은 2025년 완성차 업체의 신차 평균 탄소배출 규제 목표를 1㎞당 115.1g(2021~2024년)에서 93.6g으로 18%가량 엄격하게 세웠다. 처음 세웠던 목표치보다는 속도를 늦췄지만 계속해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기조는 유지하고 있다. 업체별 탄소배출 규제 목표는 판매 차량의 평균 무게와 전기차 판매 대수에 따라 달라진다.

완성차 업체들은 규제 강화에 따른 벌금을 물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기차 판매를 늘릴 수밖에 없다. 2025년 유럽 전기차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을 기대하는 이유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유럽 전체 BEV 시장이 256만대로 전년 대비 24%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직전 연도 전기차 판매가 1.4% 감소세로 위축됐던 상황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이 같은 시장 전망은 보급형 전기차와 HEV 풀라인업을 구축한 현대차그룹에 기회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기회는 탄소배출권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규제를 충족하고 벌금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BEV, PHEV, HEV 판매 비중을 높이고 내연기관의 효율성을 높인 마일드 HEV 개발에 열을 올리는 방법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길은 브랜드 간 탄소배출권을 사고파는 방식이다. 테슬라 같은 전기차 업체는 2024년 1~3분기 동안 탄소 배출권 판매가 총매출의 3%를 차지할 정도다. 특히 유럽에서는 여러 완성차 업체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합산해 공동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의 '풀링(pooling)' 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전기차 판매 비중이 낮은 업체는 풀링 제도를 활용해 평균 탄소 배출량을 낮추고 벌금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유럽 환경 분야 비영리단체 '교통과 환경(T&E)'에 따르면 유럽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10개 완성차 업체의 2025년 탄소 배출 목표 대비 2023년 실제 탄소 배출량 격차를 비교한 결과 기아가 2위, 현대차가 4위로 상위권에 올랐다. 볼보자동차그룹의 경우 이미 2023년에 2025년 목표치를 달성했으며, 기아는 2025년 목표치 대비 ㎞당 5g 미만의 격차를 보이고 있어 목표 달성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차·기아가 유럽 시장에서 보급형 전기차의 판매를 늘리고 HEV 라인업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확대한다면 2025년 이후 현대차그룹과 풀링을 원하는 완성차 브랜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탄소배출권을 판매하는 새로운 방식의 비즈니스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의미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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