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사법리스크'의 족쇄가 풀리자 반도체 업계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만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이르면 다음 달 17~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엔비디아가 여는 'GTC 2025'를 통해 만날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도 나온다. GTC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3E 12단 제품 샘플을 전시하고 현장에서 황 CEO의 서명을 받은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개발자 콘퍼런스 행사다.
4일 재계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전날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2심 선고가 나오기 직전까지 사업별로 보고된 회사 실적 내용을 면밀히 살피며 올해 경영 방향을 구상했다. 특히 반도체 사업의 실적은 예상치를 하회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킬 승부수가 필요해졌다는 평가가 대내외적으로 나온다. 실적들을 검토한 이 회장 역시 그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이 황 CEO와 만나 회사가 공급을 노리고 있는 HBM 관련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 관계를 새로 정립하려 할 가능성에 업계는 무게를 싣고 있다.
다음 달 이 회장과 황 CEO의 만남이 성사되면 이는 1년10개월 만의 일이다. 이 회장과 황 CEO는 2023년 5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일식집 '사와스시'에서 만난 후 그간 대면하지 못했다. 사법리스크로 받는 이동의 제약이 컸다. 이 회장은 약 4년5개월간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을 받으면서 글로벌 경영 행보를 밟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기소된 후 재판은 매주 1~2회 열리는 탓에 출장을 가더라도 길게 가기 어려웠다. 출장 기간이 짧았던 탓에 주요 인사들과 회동 약속을 잡기도 애매했다. 고대하던 미국 출장도 1심 무죄 판결이 나온 후 2심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결 여유로워진 지난해 6월이 돼서야 가능했다.
이런 가운데서 이 회장은 여러 사정으로 황 CEO와도 만날 여력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회동을 여러 차례 검토했지만 동선이 맞지 않았던 관계로 실현되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해 6월 이 회장의 미국 출장 때도 황 CEO는 다른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이유로 만남이 불발됐다는 후문도 있다.
하지만 전날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이 회장은 해외 출장이 자유로워졌다. 재판 일정이란 걸림돌이 사라지면서 출장과 회동 일정을 잡는 데 충분한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좋은 여건이 마련된 상황에서 이 회장이 이젠 적극적으로 황 CEO를 만나기 위해 나설지 주목된다.
황 CEO는 현재 세계 AI 칩 시장에서 단연 핵심 인물로 부상해 시장 동향을 확인하고 엔비디아의 차후 구상 등을 들어보기 위해서라도 이 회장으로선 황 CEO와의 만남이 필수적이다. AI 반도체 개발에 관한 구상을 주고받고 협력 방안을 폭넓게 논의해볼 여지도 있다. 특히 회사 안팎에선 HBM 공급 문제와 관련해 담판을 짓기를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5세대 HBM인 HBM3E의 8단 제품이 지난해 말 엔비디아의 퀄테스트(품질검증)를 통과하고 납품을 승인받은 것으로 전해졌지만 아직 HBM3E 12단 제품은 퀄테스트를 받고 있다. 이 절차를 넘어야 향후 6세대 HBM4 공급도 논의해볼 수 있어 삼성전자는 이 문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퀄테스트 과정에선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과 삼성전자의 일부 개발 담당자들이 황 CEO 등 엔비디아의 수뇌부 일부와 몇 차례 만나 제품에 대한 보완점과 개발 방향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지는데, 업계에선 결국 최종 납품을 성사하기 위해선 이 회장이 반드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 차원에서 볼 때, 황 CEO와의 만남에는 이 회장이 나가야 격이 맞다. 그간 황 CEO나 엔비디아 입장에선 그런 부분에 불만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며 "SK하이닉스의 사례를 보더라도 곽노정 CEO보단 최태원 회장이 매번 직접 나서서 황 CEO를 만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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