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이코노미뉴스 김국헌] 운칠기삼( 運七技三)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모든 일은 운이 70%이고 재주는 30%'라는 의미다. 포스코그룹 최정우 전 회장과 장인화 현 회장을 보면 이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최정우 전 포스코 회장과 장인화 현 회장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최정우 전 회장은 예상못한 철강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2021년 9조원이 넘는 사상최대 영업이익을 올리고 연임에 성공해 명예롭게 퇴진한 반면, 장인화 현 회장은 중국의 저가수출로 철강사업이 심각한 부진에 빠진데다 전기차 캐즘으로 신사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미국의 관세폭격까지 더해지고 있다. 전현직 회장 개인 측면에서 볼 때 최정우 전 회장이 운이 좋았다면, 장인화 회장은 지금까지로서는 운이 나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포스코그룹의 실적 악화를 회장 탓으로 돌려선 곤란하다는 판단이다.
최정우 전 회장이 운 좋은 이유...전혀 예상못한 호재 '철강 슈퍼사이클'
최정우 전 회장은 재임 동안 2차전지 소재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진행, 포스코그룹을 전통 철강사에서 미래 종합 소재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등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지만 포스코 사상 최초로 연임 후 임기만료까지 완수하게 만든 것이 예상치 못한 실적급등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재임기간 역대급 철강 슈퍼사이클의 수혜자였다.
최정우 전 회장은 지난 2018년 7월 포스코 9대 회장에 올랐고, 2021년 3월 연임에 성공했으며 2024년 3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포스코그룹 역사상 최초로 연임 후 임기를 마친 첫 회장이 됐다.
최 전 회장은 회장 재직기간 동안 어려움도 겪었다. 취임 이후 코로나가 터지면서 곧바로 위기에 봉착했고, 2022년에는 2022년 9월엔 포항제철소 침수 사태까지 겪었다.
그럼에도 최 전 회장의 운이 좋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2020년 하반기부터 터진 '철강 슈퍼사이클' 때문이다. 철강은 원래 사이클을 타는 산업이지만 2021년처럼 역대급 슈퍼 사이클이 도래한 적은 전무하다.
2020년 하반기부터 철강재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하더니 2021년 초 톤당 86만원이던 열연강판 유통가격은 같은 해 하반기 톤당 130만원으로 올랐다. 같은 기간 냉연강판 가격은 톤당 82만원에서 133만원으로, 철근 가격은 톤당 73만원에서 123만원까지 올랐다.
철강재 가격이 오른 것은 코로나19 여파에서 주요 전방산업의 수요가 회복된 이유도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철광석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 주요 철광석 생산국인 호주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억지로 철광석 가격을 대폭 인상했는데 이로 인해 중국의 철강 생산이 차질을 빚고 전세계 저가 수출량이 줄어들면서 철강재 공급부족 현상이 심화된다. 코로나 이후 철강 수요 회복까지 겹치며 철강재 가격 급등을 불렀다.
2021년 철강 슈퍼사이클 효과로 포스코는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2021년 포스코는 76조3323억원의 매출과 9조238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매년 4~5%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내왔던 포스코 였지만 2021년 영업이익률은 무려 12.1%에 달했다. 당시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다른 철강사들의 실적도 역대최고를 찍은 것을 고려하면 포스코가 잘해서 최대 실적이 났다기 보다 예상못한 철강 슈퍼사이클 영향이었다고 결론낼 수 있다.
당시 회장이었던 최정우 입장에서는 로또를 맞은 것 같은 엄청난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철강 슈퍼사이클 여파는 2022년에도 이어졌다. 매출 84조7502억원을 기록하며 2021년 역대최대치를 경신했고, 영업이익은 4조8501억원으로 줄어들었지만 평년과 비교하면 양호한 성적이었다.
이런 실적은 최 전 회장이 역대 최초 연임을 하고도 임기를 완주하는데 크게 일조했고, 3연임 도전까지 생각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최 전 회장은 3연임에 나서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현재 포스코의 상황을 보면 최 전 회장 입장에서 '신의 한수'가 됐다. 지금도 회장직을 하고 있었다면 부진한 실적과 신사업 부진, 트럼프 관세 등으로 위기를 겪을 뻔했다.
장인화 회장이 불운한 이유...중국 수출 대공세에 전기차 캐즘, 미국 관세까지
반면, 현재 포스코그룹 회장인 장인화에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우선 실적을 보면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72조6880억원, 영업이익 2조174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5.8%, 38.4% 감소했다. 그룹 매출 절반을 차지하는 철강 부문 영업이익은 1조637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36% 줄었다.
김승준 포스코홀딩스 재무·IR본부장은 지난 3일 콘퍼런스콜에서 "중국 철강 공급 과잉과 건설 경기 침체로 중국 수출 물량이 증가하면서 아시아 지역 철강 가격이 지지부진했다"며 "에너지 소재 사업은 전기차 성장률이 둔화해 핵심 광물 가격이 하락했고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최악의 철강업황 부진이 포스코 실적을 악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전세계에 밀어내기 수출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철강사들을 수렁에 빠뜨리고 있는 중국 철강의 문제가 심각하다. 포스코 입장에서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질 않는다.
실적 부진으로 시가총액도 크게 감소했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 분석에 따르면 포스코그룹의 지난해 말 기준 시가총액은 42조5000억원으로 전년 보다 54.7%나 감소했다.
신사업으로 그룹 전체가 밀던 전기차 배터리 소재사업도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의 장기화로 심각한 부진에 빠져있다. 포스코그룹의 미래가 될 것이라 믿었던 포스코퓨처엠 주가는 2023년 7월 28일 69만4000원을 찍었으나 2024년 2월 현재 12만원 대로 추락했다. 2021년 1217억원의 영업이익이 2022년 1659억원으로 증가하며 장미빛 미래를 꿈꾸게 했으나 거기까지였다.
2023년 영업이익이 359억원으로 쪼그라들더니 지난해에는 7억원으로 간신히 흑자를 유지했다. 당기순손실은 2313억원에 달했다. 포스코그룹의 미래 신사업의 핵심 계열사의 한해 영업이익이 고작 7억원이라는 사실은 포스코그룹의 미래 역시 힘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신사업 역시 최정우 전 회장이 밀어붙인 사업이었다.
포스코는 전기차 소재사업 재조정에 나서고 있다. 2월 11일엔 이차전지 원료 니켈 생산을 위해 중국 CNGR과 함께 설립한 합작 법인을 청산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9월 포스코퓨처엠은 중국 기업과 공동으로 추진하던 포항 전구체공장 건설 사업을 전면 백지화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기차를 의무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배터리 소재 사업의 미래가 더욱 불투명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의 관세 폭격까지 더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일 서명한 철강·알루미늄 관세 포고문은 집권 1기 때인 2018년 철강제품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일부 예외를 적용했던 한국 등에도 일률적으로 25% 관세를 적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은 2018년 트럼프 1기 때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발표했을 당시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별도 합의를 도출한 뒤 그동안 대미 철강 수출에서 263만t 물량에 대해 무(無)관세를 적용받아왔으나 내달 12일 이후로는 한국의 모든 대미 철강·알루미늄 수출 물량에 대해 25% 관세가 적용되게 됐다. 포스코의 북미 수출비중은 전체의 약 15%에 이른다. 포스코 입장에서 미국 수출품에 관세가 추가되면 현지에서 경쟁하는 미국·일본 철강 대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장 회장 경영능력 한계? 대형 악재들 모두 외부 요인...운 좋았다 말할 날 오길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인화 회장은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태다. 포스코그룹은 지난해 저수익 사업과 비핵심자산 구조개편 프로젝트 125개 중 45개를 완료해 현금 6625억원을 창출했다. 올해까지 61개 프로젝트를 추가로 마쳐 총 106개 프로젝트에서 누적 현금 2조1000억원을 확보해 자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성장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잇따른 대형악재들 앞에서 포스코가 추락을 거듭하면서 장인화 회장이 경영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과 기사들이 속속 나오는 중이다.
하지만 장인화 회장이 무슨 죄가 있나. 포스코를 둘러싼 이런 모든 위기들은 장인화 회장이 자초한 것이 아니다. 철강업 자체의 하향산업화가 진행 중인 가운데 중국 철강의 미친듯한 저가수출, 전기차 캐즘이란 복병을 만난 신사업, 미국의 관세 무역전쟁 등 모든 악재가 외부에서 온 것이다.
장 회장 할아버지가 와도 지금과 같은 악재들 속에서는 뭘 보여줄 수가 없는 환경이다. 장 회장 본인도 취임할 때 이런 거대 위기가 줄지어 닥칠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장 회장은 불운(不運)하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임기를 보낸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 회장을 향한 비판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
전세계 1위 경쟁력을 가진 철강사 답게 포스코가 현재의 위기 속에서도 버텨내기에 성공한다면 중국 철강사 줄도산 이후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철강업이 사이클 산업인 만큼 반드시 또 기회가 올 수 있다. 장 회장 임기 안에 올지도 모를 일이다. 장 회장이 운이 좋았다고 말할 날이 나중에라도 꼭 올 날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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