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2025년 2월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글로벌 표준 지수(MSCI Global Standard Index) 구성 종목에 새롭게 편입됐다. MSCI지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주가지수로 꼽힌다. 이 지수에 편입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대규모 자금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전 세계 큰손들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논의할 때 이 지수에 올라온 종목들을 먼저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이번 현대차 인도법인의 편입은 MSCI가 중국 대신 인도 비중을 늘린 영향이 컸다. MSCI는 전 세계 신흥시장 중에서도 인도를 주목했고 특히 인도에서 현대차의 성장성을 높게 봤다. 현대차는 2024년 10월 인도 증시에 상장하며 4조5000억원을 조달했다. 기업공개(IPO) 조달 자금 기준으로는 인도 증시 사상 최대다.
반면 한국 증시에 상장된 현대차 본주의 주가는 어떨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지적하는 지정학·정치·지배구조의 측면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감안하더라도 심하게 저평가돼있다. 최근 3년간(2025년 2월12일 기준) 테슬라, 도요타 주가는 각각 14%, 33% 상승했으며 비야디(BYD)는 무려 52%가 올랐다. 반면 현대차 주가는 8% 오르는 데 그쳤다. 기아는 16% 올랐다.
2025년 1월 기준 MSCI 글로벌 자동차 및 부품 지수(MSCI ACWI Automobiles and Components Index)를 구성하는 세계 10대 자동차 종목을 살펴보자. 테슬라, 도요타, 제너럴모터스(GM), 페라리, 메르세데스-벤츠, 혼다, 포드, BYD, 마힌드라, 스텔란티스 순이다. BYD는 2023년부터 3년 연속 순위에 들었지만 현대차·기아는 목록에 없다.
2024년 글로벌 판매량 순으로 현대차·기아는 3위를 기록했으며 같은 해 1~3분기 누적 기준 영업이익률도 기아가 압도적인 1위(12.4%)였다. 현대차(8.9%)도 테슬라와 BYD를 앞섰다. 하지만 시가총액 기준으로 보면 현대차·기아는 테슬라는 물론 BYD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2025년 2월12일 기준 현대차와 기아의 시가총액을 합하면 78조4496억원 수준이다. 테슬라는 현대차·기아의 19.6배, 도요타는 5.3배, BYD도 1.6배에 달한다.
현재 주가 평가를 나타내는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로 비교해보자. 우선 PER은 시가총액을 순이익으로 나눈 지표로, PER이 높을수록 기업이 버는 돈에 비해 주가가 높다는 뜻이다. 보통 PER이 10 이상이면 고평가됐다고 생각하는데, 2024년 12월 말 기준 현대차의 PER은 4.37, 기아는 3.98 수준이다. 같은 기간 테슬라는 149.8, 도요타는 7.2, BYD는 29.6이다.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PBR로 봐도 저평가는 뚜렷하다. 보통 PBR 1을 기준으로 높으면 고평가, 낮으면 저평가로 생각한다. 현대차의 PBR은 0.54, 기아는 0.74로 두 회사 모두 1을 넘기지 못했다. 기존의 전통 완성차 업체 중 PBR 1을 넘긴 회사는 도요타(1.02)가 유일하며, 신생 회사인 테슬라(14.5)나 BYD(6.4)는 보유한 자산가치에 비해 심하게 고평가됐음을 알 수 있다.
지표상으로 보면 테슬라와 BYD는 현재 이익이나 자산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도요타는 제값을 받는 반면 현대차·기아는 심각한 저평가 상태다. 최근 3년간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린 현대차·기아의 주가는 도대체 왜 이렇게 정체돼있을까?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자본시장 관계자 4인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이하 고)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위원(이하 임) ▲가치투자펀드운용사 대표(이하 가) ▲행동주의펀드운용사 대표(이하 행))을 만나 각자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를 좌담회 방식으로 재구성했으며 1편에서는 주가, 2편에서는 거버넌스를 진단해본다.
A. 현대차·기아는 3년 연속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기대보다 오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임: 자동차 산업의 화두는 전기차에서 자율주행으로 이전됐다. 2년 전 챗GPT로 시작된 인공지능(AI) 열풍이 이제 우리가 사는 물리 세계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웨이모와 테슬라가, 중국에서는 바이두와 화웨이, 샤오미, 니오 등 상위 전기차 업체가 로보택시 서비스를 하고 있고, 운전자 개입을 최소화한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자율주행 서비스가 곳곳에서 본격화되는 시점이다. 현대차·기아의 판매 대수와 재무 실적은 여전히 견조하지만, 투자자들은 자율주행 서비스가 본격화된 이후의 현대차·기아의 실적에 대해서는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다.
▲고: 현대차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현대 속도'다. 현대차는 일단 시장성 있는 시장을 일단 찍으면 바로 공장을 설립하고 완성차 생산에 돌입했다. 과거 현대차의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 BYD를 보라. 최근 4년 동안 글로벌 공장 22개를 지었다. 이제 속도전에서 현대차가 밀리기 시작한다는 거다. 중국은 광속이다. 우리는 '패스트(fast)'를 잃었다. 또한 그동안 현대차의 속도는 기계 공학 쪽에 치중됐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대단한 속도로 완성도 있게 만들어냈고 하이브리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 AI 시대는 결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점을 직시해야 한다.
▲가: 주가 측면에서 현대차는 사실 지금 애매한 국면이라고 본다. 최근 몇 년 동안 퍼포먼스도 너무 좋았고 로봇이나 도심항공교통(UAM) 등 신사업도 다 좋은데, 어쨌든 본업이 피크를 쳤기 때문에 올해부터 조금씩 꺾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향후에도 계속 잘할 수 있겠냐는 걱정이 있는 것이다. 주주환원 가치 제고 높이기 위해 밸류업 정책도 세게 내놓고 있는데 주가가 오르지 않는 건 모두 이런 걱정 때문이다.
A. 시장에서 보는 현대차·기아에 대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에 대한 우려는 어느 정도인가?
▲임: 현대차·기아의 소프트웨어 기술은 여전히 부족하다. 2026년 전차종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적용을 선언했다가 '페이스카(Pace Car)'에 먼저 적용한다고 범위가 크게 축소됐고, 자율주행 '레벨3(조건부 자동화 단계)'는 아직 상용화되지 못했다. 물론 테슬라나 중국 전기차의 자율주행도 아직 레벨3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운전자의 개입 정도와 도로의 객체 인식 수준은 (현대차보다) 크게 앞서있다. 2025년 자율주행 부분에서 'Chat-drive moment(로보택시에 필요한 기술을 모두 구현)' 같은 순간이 오면,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 기술 역량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커질 것 같다.
▲고: 과거 휴대폰 시장에서도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기존에 피처폰 업체는 다 사라졌다. 전화기라는 사실은 똑같지만 기능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스마트폰은 인터넷과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지면서 우리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된다고 본다. 전기차도 자율주행이 되는 차와 안 되는 차는 소비자 입장에서 누릴 수 있는 편익의 차이가 너무 크다. 이제는 기본적으로 AI 기반의 자율주행이 불가능한 차는 시장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A. 앞으로 현대차·기아의 자율주행 개발 방향은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보나?
▲고: 지역적으로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 우선 미국은 자율주행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테슬라와 손을 잡아야 한다. 일정 부분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테슬라의 시스템을 적극 받아들여 미국에 출시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기술적으로 취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뽑아내야 한다.
반면 한국은 반드시 한국형 자율주행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자율주행 기술 개발의 시초는 방산 산업이다. 자율주행 장갑차·탱크 등 무인 군사 무기를 만들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국가 안보의 차원에서도 한국에 특화된 자율주행 기술 개발이 절실하며, 그 역할은 현대차그룹이 맡을 수밖에 없다. 우리 군사 무기를 우리의 소프트웨어로 제어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A. 현대차·기아 주가의 본격적인 상승을 위해서는 어떤 과제부터 해결해야 할까?
▲임: 현대차·기아가 갖추고 있는 요소기술에 대해 시장이 인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배터리 설계 기술, 스마트 팩토리, 자율주행 기술, 로봇 기술 등 현대차그룹은 2020년 이후 많은 신사업과 신기술에 투자를 해왔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기술 수준이 글로벌 경쟁사 대비 어느 정도인지, 이런 요소 기술들이 어떻게 수익성에 기여할지 등에 대한 주식시장의 이해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가: 투자자의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얘기하고 싶다. 로보틱스·자율주행 등 미래 산업 기술에 투자하고 싶어도 전 계열사에 사업이 분산돼있다. 예를 들면 자율주행 기술에 투자하고 싶다고 가정한다면 현대차가 하는 건지 기아가 하는 건지 또는 현대오토에버가 하는 건지에 대한 콘셉트가 불명확하다. 로보틱스 업체인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도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가 모두 지분을 쪼개서 보유하고 있지 않나. 그러니 신기술에 투자하고 싶어도 딱히 어느 회사에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현재 현대차에 절실하게 필요한 건 성장 산업으로의 집중이다. 로보틱스나 UAM, 자율주행 등 신산업을 각자 다른 독립 사업체로 만들고 재무구조를 효율화해서 보유현금을 투자에 집중하는 게 대한민국을 위해서 현대차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삼성전자가 휘청이는 가운데 자율주행에서 현대차까지 밀리면 대한민국 경제엔 답이 없다. 물론 주주 입장에선 배당을 늘리는 것도 좋다. 하지만 투자를 통한 사업의 성장이 우선이다. 기존 사업과 신사업을 나누어 그룹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유망 사업에 현금 투자를 늘리는 방안이 절실하게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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