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미국이 한국에서 수출하는 모든 알루미늄 연선·케이블(AWC)에 86% 수준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LS전선이 미 상무부 조사에 불응하다 징벌적 제재를 받게 됐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 미국의 타깃은 '우회 수출'이 적발된 중국 투자법인이었고, LS전선은 1kV급 케이블을 수출하지 않아 해당사항이 없다. 특히 미국이 우리 정부를 거치지 않고 개별 기업마다 일방적인 공문을 보낸 점도 혼란을 키웠다.
7일 미 연방 관보에 따르면 상무부는 올해 1월 중국산 원재료를 사용해 한국에서 제작된 AWC 수입이 '중국산 AWC에 대한 반덤핑·상계관세'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중국산 수입 제한 품목이 한국을 거쳐 '우회 수출'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에 따라 중국 AWC와 동일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반덤핑·상계관세는 각각 52.8%·33.4%다.
조사는 2023년 10월 시작됐다. 그해 12월 우리 전선기업 11곳을 상대로 '2020년 1월~2023년 9월 중국산 거래분에 대한 수출량 및 수출액' 자료를 보름 안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대부분 기한 내에 자료를 내지 못했고, LS전선 자회사인 가온전선은 이듬해 7월 답변서를 제출했다.
논란이 된 건 상무부가 "조사에 비협조적인 LS전선·가온전선 등에 '불리한 가용정보(AFA)'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부분이다. 향후 불리한 방식으로 덤핑 마진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상무부는 동시에 '대상 품목'이 1kV 이하 저압 케이블이라고 밝히고 있다. 핵심은 LS전선을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해당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짜고짜 '수신인 없는' 공문 날린 美 상무부= LS전선이 '관세 폭탄'을 맞게 됐다는 오해가 퍼진 배경에는 3가지 특이점이 있다. 먼저 외교 관례상 미 상무부의 카운터파트는 산업통상자원부다. 우리 기업들 전반에 대한 요구사항이 있다면 산업부를 통해 일괄적인 요청을 넘기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상무부는 이례적으로 개별 기업들에 직접 서류를 발송했다. 더구나 일부 기업들에 발송된 서류에는 수신인이 기재되지 않는 등 기업들의 대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LS전선 등은 '의무 답변자'로 지정돼 있지도 않았다. 주요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1kV 이하 저압 케이블'을 수출하는 건 부산케이블앤엔지니어링·대한전선 2곳뿐이다. 수출하지도 않는 품목에 대한 자료까지 내라는 건 다소 무리한 요구로 볼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에도 이런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정기적인 조사 아니라 특정 이슈가 발생할 때 이뤄지는 조사 과정이라 개별 기업 입장에서 곤혹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정해진 타깃, '택갈이' 하러 한국 들어온 中 자본= LS전선 등은 애초 미국의 타깃이 아니었다. LS전선이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은 35kV급 중전압 케이블로,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우회 수출이 적발된 건 '부산케이블앤엔지니어링'이라는 업체다. 중국계 화통케이블그룹이 100% 투자한 '중국 기업'이다. 중소기업이지만, 2023년 기준 매출액은 1531억원에 달한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이 업체는 중국산 알루미늄을 들여 와 한국에서 케이블을 가공·생산했고, 이를 미국으로 수출하다 적발됐다. 업계에선 이른바 '택갈이'를 하러 한국에 공장을 차렸다고 본다. 중국 자본이 한국을 '우회 수출' 통로로 삼아 중국산 AWC에 대한 반덤핑·상계관세를 회피한 것이다. 조사가 1kV 케이블로 한정된 것도 이 업체 수출 품목을 겨냥한 것이다. LS전선 관계자는 "미 상무부 조사로 이슈가 된 1kV급 케이블은 미국에 수출하지 않고 할 계획도 없다"며 "무엇보다 모든 생산 품목에 중국산 알루미늄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관세 부과 상식은 '기업' 아니라 '품목' 기준= 실제 조치가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LS전선이 '관세 폭탄'을 맞게 됐다는 오해는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우려를 키운 모양새가 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압박을 펼치는 동안 한국 기업들의 입지를 더 좁아지게 만든 것이다.
관세는 기업 단위가 아니라 '품목'에 따라 다르게 책정·부과된다. LS전선·가온전선 등 기업에 AFA 조치 이력이 남는 건 최소한 향후 수출 협상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지만, 앞으로도 1kV급 케이블을 수출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만큼 사실상 영향이 없다.
LS전선은 오히려 태양광 시장까지 보폭을 넓히면서 미국 매출을 키우고 있다. 지난 6일 2500만달러(약 363억원) 규모의 태양광발전단지용 '알루미늄' 전력 케이블을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반덤핑·상계관세 혹은 AFA 지정 영향이 '품목' 단위로 책정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조사의 핵심은 관세가 아니라 '우회 수출' 여부였다"며 "중국산 자재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은 타격 여부를 논할 게 아니라 애초부터 연관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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