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발(發) 관세 압박이 심화하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 곳곳에서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실질적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 지수는 5년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크게 악화했다. 이에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며 설비 투자도 급감하는 모양새다.
기업들은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급변하는 미·중 관계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해 1997년 외환위기 수준 이상의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우려하고 있다.
10일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발표한 '경제정책 불확실성이 투자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는 365.14를 기록했다.
2014년 12월(107.76) 대비 3.4배나 증가한 수치다. 10년 전보다 경제 불확실성이 3배 이상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종전 최대치는 한일무역분쟁이 있던 2019년 8월 538.18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정국 등 국내외 정치·경제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64개월 만에 최대 수준으로 치솟은 셈이다.
문제는 투자 위축이다. 최근 경제정책 불확실성이 60개월 내 최대로 상승했다는 점은 올해 상반기 설비투자가 크게 감소하고, 불확실성 해소 전까지 기업의 투자 위축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올해 1월 설비투자가 지난해 12월 대비 14.2% 줄어 투자 감소가 현실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가희 SGI 연구위원은 "정치·대외 충격에 따라 경제정책이 자주 바뀌면 기업들은 투자 시점이나 규모를 결정하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 이미 계획된 투자조차 늦춰지거나 취소될 수 있다"며 "불확실성 해소와 그에 따른 충격 완화, 기업의 위험 관리 등이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기업 차원에서 잠재력 있는 기업과의 인수합병(M&A)을 통해 해외로 진출, 투자에 따른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기업들이 정책불확실성에 영향을 주는 대내외 여건 변화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하고, R&D 투자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장기적 관점의 대응 전략 마련도 중요해진 상황이다.
박양수 SGI 원장은 "반도체, 자동차 등의 업종은 경제정책 불확실성에 따른 단기적인 영향은 크지 않고, 국가전체의 투자변동성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의 장기 안정적 투자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10곳 중 3곳 "자금 사정 악화"
기업들의 투자와 관련해 채용·R&D 등 전반적인 경영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자금시장 심리도 얼어붙었다. 올해 자금 수요는 오히려 늘어날 전망임에도 불구, 기업들의 자금 운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지배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사정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 10곳 중 3곳(31%)은 작년보다 올해 자금사정이 '악화했다'고 답했다.
자금사정이 ‘호전됐다’는 응답(11%)의 3배에 달했다. 기업들은 자금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환율상승(24.3%), 원자재 가격 및 인건비 상승(23%), 높은 차입 금리(17.7%) 등을 꼽았다.
현금은 없는데 필요한 돈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기업은 36%였다. 원자재·부품 매입(39.7%), 설비투자(21.3%) 의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란 관측에서다. 원자재와 설비투자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이슈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에 따라 공급망을 바꾸거나 설비를 미국으로 이전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경협은 산업계 전반적으로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와 글로벌 공급과잉 영향 탓에 장기 부진을 겪고 있어 자금 조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봤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최근 금리 인하에도 극심한 경기불황을 겪고 있는 건설, 철강,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자금사정 악화가 지속되고 있다"며 "환율 변동성을 축소해 기업들의 외환 리스크를 완화하고 정책금융·임시투자세액공제 확대 등의 금융·세제지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자금 악화는 M&A나 신규 사업 확장 계획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자금 경색이 지속되면 기업들은 더 높은 이자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순이익 감소와 신용등급이 하락할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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