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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AI·양자·6G 미래기술, 한 국가 확보 불가능…종합전략 필수"
    입력 2025.03.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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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편집자주반도체 시장에서 조용히 몸집을 키운 대만 TSMC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에 '실리콘 방패' 전열을 새로 짜고 있다. 최근 미국에 1000억달러(약 145조9000억원)의 깜짝 투자를 발표하면서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에 대응하는 동시에 대만 내 생산기지에도 공을 들이며 대중 견제력을 높이는 모양새다. 특히 반도체 초미세 공정 설비 구축에 속도를 내면서 시장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한때 생존을 위해 무명(無名) 산업에만 매달렸으나, 이제는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지키고 나선 TSMC. 아시아경제는 대만 현지 취재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글로벌 무역전쟁에 대응하는 TSMC의 전략과 위기 요인, 한국에 올 기회를 총 4회에 걸쳐 진단한다. <글 싣는 순서> <1> 神이 된 TSMC…'2㎚' 성지 가보니 <2> TSMC 발목 잡는 '6결'과 기술 안보 <3> 無名 대만이 열린다 <4> 한·대만, 견제와 협력 사이
"삼성이 '미국과 중국' 두 마리 토끼를 계속해서 쫓는다면, 앞으로 10년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양루이린 대만 공업기술연구원(ITRI) 산업경제지식센터 연구총감(CRO)은 시종일관 단호한 표정으로 한국 기업, 그리고 삼성전자가 맞닥뜨린 위기 요인을 짚었다. 한국 반도체가 직면한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누적된 '잘못된 의사결정'의 결과이며, 앞으로 도래할 시장 변화를 고려해 지정학적 변화에 서둘러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양 총감이 소속된 ITRI는 현재 대만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패권을 일부분 쥐도록 한 가장 강력한 배후다. 특히 양 총감은 현재 대만 반도체 분야 '막후의 조언자'로 불릴 정도로 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꼽힌다. TSMC의 사세가 급성장했던 차이잉원 2기 당시 대만 정부는 '반도체 백서'를 발간한 바 있는데, 이 백서도 양 총감이 작성했다. 그가 한국 언론과 단독 인터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양 총감은 파운드리와 메모리 등 한국 반도체가 최근 맞이한 위기의 핵심으로 '미·중 양다리 걸치기'를 꼽았다. 그는 "TSMC는 트럼프 1기부터 미국 정부의 동향에 주의하며 중국 시장 접근에 최대한 주의해왔다"면서 "한국이 미·중 양다리 걸치기를 해온 게 오늘날의 차이를 가져온 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TSMC를 비롯한 대만 기업들은 중국으로부터 디커플링을 진행 중이며 한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유럽연합(EU)에도 진입했다"고 비교했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시장의 논리'보다 '내부의 논리'를 우선시하는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TSMC의 반도체 공급과 서비스 대상이 전 세계 기업인 반면, 삼성은 내부 수요를 위해 일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게 양 총감의 진단이다.

ITRI는 오늘날 TSMC의 산실로 꼽힌다. 미국 전자회사 RCA로부터 기술이전료 250만달러(약 36억원), 기술사용료 100만달러를 주고 10년간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게 그 시작이었다. TSMC는 1984년 ITRI 산하 전자공업연구소의 초대형 집적회로(VLSI) 육성프로젝트에서 파생돼 탄생했다. 창업주인 모리스 창 역시 ITRI의 원장으로 재직하다 시장에 뛰어들어 TSMC 회장에 취임한 것이고, 쩡판청 TSMC 전 부회장은 ITRI의 시범공장 책임자였다. TSMC를 탄생시킨 요람인 ITRI가 대만의 경쟁력과 대응전략의 최중심에 있다고 볼 만한 이유다.

로이터연합뉴스

양 총감은 무엇보다 중국 시장 접근에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삼성이) 중국 자본과 합작법인(JV)을 만들면서 기술 유출에 대한 내부 통제가 어려워졌다"면서 "삼성과 TSMC 모두 지난 20년간 중국 시장에 집착해왔지만 TSMC는 영업 기밀이나 노하우를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적 시각에서 삼성전자가 경쟁력을 가진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는 갈수록 모방이 쉬워지고 로직 반도체는 오히려 어려워질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파운드리 분야에 대해서는 삼성전자가 '2등 전략'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는 진단도 내놨다. 1등을 따라잡겠다는 목표가 아닌, 2등에 머문다는 현실 인식하에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TSMC의 고객들은 독점을 경계하기 때문에 시장은 삼성을 2등으로 계속 생존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재 채용 역시 '적격자(right person)'를 써야 한다고 꼬집었다. 양 총감은 "많은 경쟁사가 자격이 부족한 인물을 기용하고 있다"면서 "지금 반도체 생태계는 '전국 7웅 시대(격렬한 전쟁이 전개되는 약육강식의 시대)'와도 같다"고 분석했다.

대만의 산업 성장 방식이 '정답'은 아니라는 진단도 내놨다. 그는 "대만은 파운드리 영역에서만 성공했고 글로벌 브랜드가 없다"고 자평했다. 이어 "TSMC도 업무량과 압박이 상당하고 업무 할당 목표치도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높을 때가 많다"면서 "이것을 어떻게든 해내는 업무수행 방식이 TSMC의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양 총감은 향후 미·중 간 디커플링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양국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 패권 전쟁에 주변국(양 총감은 '소국'이라고 표현했다)의 각축전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의 핵심은 미래 기술을 둘러싼 국가의 종합 전략이 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인공지능(AI), 양자 기술, 6G 등 주요 미래 기술은 모두 상호 연계된다"면서 "이들 구현에는 반도체가 필요하고 관련 기술을 한 국가가 모두 확보하기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종합적인 국가 전략이 필연적이고 어떤 국가와 어떻게 협력할지가 현재의 이슈"라고 강조했다.

양 총감은 기업이 방향을 정하는 데 있어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에서 전략을 세워야 기업이 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만이 공급망을 포함한 종합 국가전략을 수립했다"면서 "각국이 AI, 양자 기술, 6G 등의 영역에서 한 귀퉁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현재 서두르고 있다"고 짚었다.

타이베이(대만)=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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