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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경북 월성 원전 10기 시험대…"수명 만료 후에도 가동해야"[AI 시대 電力이 국력]⑦
    입력 2025.03.1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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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전 전경(왼쪽부터 4, 3,1,1호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 아시아경제 ] 지난달 20일 한국수력원자력 월성본부가 위치한 경북 경주시 양남면. 마을 어귀엔 짓다 만 건물에 ‘유치권 행사중’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도로 주변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듯한 빌라들이 흉측하게 방치된 채 버려져 있었다.

양남면에서 35년간 거주하며 횟집을 운영해온 주민 하홍렬씨는 "월성 2·3·4 호기가 계속운전을 한다면 지역 경제가 다시 살아날 것 같다"며 "안전이 보장된다면 계속운전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설계수명이 만료된 후에도 심사를 거쳐 지속적인 원자력 발전이 가능하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한수원은 지난해 12월부터 월성2·3·4호기의 계속운전을 위한 방사선영향평가서 초안 주민공람을 실시하고 있다. 방사선환경영향평가는 원전 계속 운전으로 인해 환경에 미치는 방사선 영향(일반인에 대한 선량)을 평가한 것이다. 공람을 통해 주민 의견이 반영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발전소운영변경허가 심사를 위해 사용된다.

"계속운전, 지역경제 살릴 것"

경주 양남면은 월성 원전과 가장 근접해 있는 마을이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도 있는 원전 사고시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월성원전 계속운전에 대해 주민들은 그다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날 주민공람을 위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이 비치돼 있는 양남면 주민센터를 방문해보니 현재까지 열람명부에 서명한 주민은 50여명에 불과했다. 양남면 주민센터 관계자는 "주민들의 관심도가 높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계속운전이 큰 이슈가 되지 않는 건 이미 수년 전 월성1호 경험 때문이다. 주민 하홍렬 씨는 "1호기 계속운전을 결정할 당시에는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으나 막상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로 결정했을 때 오히려 아쉬워하는 주민도 많았다"고 전했다.

경주시 양남면 주민센터 직원이 주민 공람을 위해 비치된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초안을 살펴보고 있다. 강희종 기자

월성1호기는 국내 최초의 가압중수로형 원자로였다. 2012년 설계수명 만료 후 원안위 승인을 받아 2015년 계속운전을 시작했다. 당시 주민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며 소송전까지 갔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8년 6월 한수원이 돌연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조기 폐쇄를 결정해 아직까지 석연찮음이 남아 있다.

양남면을 비롯해 감포면, 문무대왕면등 월성 원전과 가장 가까운 동경주 지역은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각종 지원을 받고 있다. 이 지원금을 이용해 양남면 주민들은 해수목욕탕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등 수익사업을 벌이고 있다.

월성원전과 거리가 있는 경주 시내에서도 원전 설계수명 만료 이후 운전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았다. 경주지역자활센터장을 맡고 있는 정희근씨는 "똑같은 자동차라도 어떤 차는 10만㎞밖에 못 타고 어떤 차는 20만㎞를 타기도 한다"며 "설비를 잘 정비한다면 계속운전 해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월성 1호기는 정권에 의해 밀어붙이기식으로 강제적으로 폐쇄됐다"며 "경주시민 대다수는 월성2·3·4호기는 당연히 계속운전을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월성원전 가동이 앞으로도 순탄하게 진행되리란 보장은 없다. 경주, 울산 지역 환경단체들은 설계만료 원전의 계속운전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앞으로 있을 공청회에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주민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던 전남 영광 한빛원전1·2호기에선 공청회가 파행을 겪기도 했다.

월성원전에선 울산 지역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 원전과 가까이 있지만 지자체가 달라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환경단체들의 감시와 견제 덕에 원전 운영이 더욱 투명해지고 안전이 강화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면서도 "너무 이념적으로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계속운전하면 신규 원전 건설비 절감"

원전 계속운전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제때 대응하기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30년까지 허가 기간이 끝나는 원전은 월성 2·3·4호기를 비롯해 모두 10기다. 이들 원전의 총 시설용량은 8.46GW에 이른다. 이 정도 규모의 전기를 새로 발전소를 지어 만들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만한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땅과 바다를 파헤쳐야 하고 이를 위해 치러야 할 경제적, 사회적 비용 또한 막대하다.

이미 고리 2호기(2023년 4월), 고리 3호기(2024년 9월)는 멈춰 서 있다. 고리 4호기도 올해 8월 운영허가 기간 만료에 따라 가동이 중단될 예정이다. 한빛 1·2호기는 각각 올해 12월과 내년 9월에 허가 기간이 끝난다. 한울 1·2호기는 2027년 12월, 2028년 12월이 종료 시점이다. 월성2·3·4호기는 각각 2026년 11월, 2027년 12월, 2029년 2월에 운영허가 기간이 끝난다.

이런 상황에도 계속운전을 승인하는 속도는 느리다. 2년째 가동이 중단된 고리 2호기조차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계속운전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원안위는 올해 상반기까지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심사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KINS의 심사 이후에도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 검토와 원안위 회의를 통과해야 계속운전이 확정된다.

한수원은 2022년 4월에서야 고리 2호기의 계속운전을 위한 주기적 안정성 평가(PSR)를 제출했다. 운영 허가 기간 만료를 불과 1년 앞둔 시점에서였다. 운영변경 허가 신청은 2023년 3월에서야 이뤄졌다.

실제 계속운전 기간은 10년 아닌 7~8년

허가 신청이 늦어진 건 오락가락하는 정부 정책 탓이 컸다. 탈원전 정책을 표방했던 이전 문재인 정부는 계속 운전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가 영구정지 되는 상황에서 계속운전을 추진할 동력을 잃었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원전 생태계 복원 정책이 확정되고 나서야 한수원은 부랴부랴 계속운전을 준비했다.

계속운전 심사가 본격화하면서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선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10년 주기로 계속운전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법으로 정해진 10년간의 기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심사 절차가 복잡해 심사 기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권고하는 주기적안전성평가에 더해 미국의 운영허가 갱신제도(LR)인 주요기기수명평가(LER), 방사선환경영향평가(RER)를 추가해 안전성을 평가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한 주민 의견수렴 결과를 반영한 운영변경 허가를 신청해 원안위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에 따르면 국내 계속운전 심사 기간이 3.5년인데 비해 미국은 공청회 개최 여부에 따라 22~30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인 고리 2호기의 경우 계획대로 재가동하더라도 실제 운영 기간은 7~8년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계속운전을 위한 정비 및 설비 교체에 수천억 원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용 낭비일 수밖에 없다. 월성원전과 같은 가압중수로형의 경우 압력관 교체가 필요해 계속운전 준비 기간과 비용이 늘어 경제성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 계속운전 심사를 전후해 여론 분열, 주민 갈등 등 높은 사회적 비용도 수반된다.

전문가들은 우선 복잡한 계속운전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10년의 계속운전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설계수명 만료일로부터 10년인 현행 규정을 허가일로부터 10년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계속운전 심사를 받아야 하는 규정도 최대 20년 주기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미 미국과 일본은 20년 주기로 계속운전 심사를 받고 있다.

경주 시민들도 계속운전 심사 주기 확대에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경주시내에서 만난 주민 정한근씨는 "10년마다 계속운전 심사에 수천억 원이 소요되는데 이 비용은 결국 국민이 내는 전기요금과 세금으로 충당된다"며 "평소에 안전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한다면 20년으로 늘려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주현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심사 절차를 효율화해 공백 기간 없이 10년간 계속운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을 통해 계속운전 기간을 20년 이내에서 사업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국민들의 원전 계속운전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원전 계속운전제도 적절한가’ 세미나를 개최한 박충권 의원(국민의힘)은 게속운전 주기를 최대 20년으로 확대하는 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美 40년 이상 원전 54기 가동…"멈췄던 원전도 돌린다"

해외에서는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완전히 멈춰 섰던 원전까지도 재가동하는 상황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해 9월 미국 전력 기업 콘스텔레이션과 스리마일 원전(1호기)으로부터 20년간 전력을 구매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2019년부터 가동을 중단했던 이 원전은 정비 및 규제 기관의 승인을 거쳐 2028년부터 재가동할 계획이다.

스리마일원전은 지난 1979년 2호기에서 노심이 녹는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당시 확인된 피폭자는 없었으나 원전에 대한 공포심이 높아지며 이 사건 이후 미국 내에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대거 취소됐다. 1호기도 2019년 경영난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탈원전의 상징과도 같은 스리마일 원전이 데이터센터 시대를 맞아 재가동에 들어가는 것이다. MS는 20년의 장기 계약을 체결해 해당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전량 구매할 예정이다.

미국의 경우 2023년 6월 기준 가동원전 93기중 84기가 계속운전중이거나 계속운전 승인을 받았다. 93기중 90기는 30년 이상된 원전이고 40년을 넘어 운전중인 것도 54기에 달했다. 전세계적으로도 설계 수명이 끝난 후 계속 운전에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세계 가동 원전 410기의 57%가 계속 운전을 허가받았다. 30년 이상 운전하고 있는 원전이 67%이며 40년을 초과한 경우도 31%에 이른다. 미국은 지난 2021년 버지니아주 서리원전 1·2호기 운영허가를 60년에서 80년으로 연장하기도 했다. 문주현 단국대 교수는 "계속 운전은 전 세계적으로 입증된 기술이며 미국 등 원자력 선진국에서도 계속 운전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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