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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화수소 밸브 국산화·수소버스 2000대 도입…수소경제의 개척자들[디깅에너지]
    입력 2025.03.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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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지난 10일 평택제천고속도로 남안성 톨게이트에서 나와 자동차로 10분가량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니 수림테크 사옥이 나왔다. 회의실과 겸해 사용하고 있는 이덕재 수림테크 대표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각종 군용 잠수함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 수가 10여명에 불과하지만 수림테크는 국내 극저온 가스 밸브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곳이다. 국내 잠수함에 들어가는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의 초저온 밸브 정비를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주요 방산 대기업들이 손을 놓은 것도 우리가 정비하고 있죠." 잠수함 정비가 이 회사의 캐시카우 역할을 한다면 액화수소 밸브는 미래 먹거리다.

액화수소 밸브 국내 첫 상용화

수림테크는 액화질소, 액화헬륨, 액화산소 등 극저온 가스 밸브에 특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액화수소 밸브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2022년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액화수소 플랜트에 긴급 차단 장치, 4인치 체크 밸브 등을 공급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23년 수소의 날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도 받았다. 액화수소 밸브의 국산화로 값비싼 수입 밸브를 대체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수림테크는 지금은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각종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함께 액화수소 관련 연구과제를 수행 중이다. 수소 전문기업으로도 지정돼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이덕재 수림테크 대표가 경기도 안성 수림테크 본사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강희종 기자

수소는 미래 청정 연료로 주목받고 있지만 부피가 커서 운반이 어렵다. 수소를 운반하기 위한 여러 기술이 논의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액화수소다. 액화수소는 수소를 영하 253도로 냉각한 것이다. 수소를 액화하면 기체 수소에 비해 부피가 800분의 1로 줄어들어 한 번에 운반할 수 있는 수소 양을 10배로 늘릴 수 있다. 액화수소는 수소 충전 속도도 4배 빠르다. 액화수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저장할 수 있는 탱크와 함께 액화수소용 배관과 밸브가 필요하다.

액화수소 밸브는 탱크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액화수소를 생산하는 플랜트부터 충전소, 연료전지 등 모든 밸류 체인에 반드시 들어가는 부품이다. 그동안 국내 액화수소 시장 규모가 작은 데다 기술도 까다로워 해외에서 액화수소 밸브를 사서 썼다. 액화수소와 관련한 안전 기준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액화수소 밸브를 국산화하지 못하면 계속 확대되는 수소 사회에서 외산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액화수소와 관련된 부품은 진공 단열 방식으로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개발하기 어렵다. 밸브의 경우 액화수소가 기화하지 않게 막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이 대표는 "기체 수소가 액화하는 -253도에서는 강철도 0.3% 정도 수축하기 때문에 뒤틀림이 발생할 수 있다"며 "열침입에 의한 기화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림테크가 개발한 액화수소 밸브들. 사진=강희종 기자

수림테크는 당초 독일 스토어(Stoehr)사의 초저온 가스 밸브를 국내에 공급하는 파트너사였다. 2006년에는 나로호 발사대용 초저온 밸브를 공급하기도 했다. 2021년 경기테크노파크의 개발과제에 참여하면서 액화수소 밸브를 국산화할 수 있었다.

수림테크는 1964년 설립된 독일의 비영리 연구기관인 ILK드레스덴과 기술 협력을 통해 과냉각 액체수소 펌프를 개발하고 있다. 과냉각 액체수소 펌프는 액체수소의 압력을 증가시켜 수소를 과냉각 액체수소로 만드는 펌프다. 과냉각 액체수소를 이용하면 더 많은 연료를 저장할 수 있고 충전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지난해 2월 다임러 트럭과 린데가 과냉각 액체수소 연료 공급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수림테크가 개발한 액화수소 진공단열 파이프, 긴급차단장치, 안전밸브, 유량제어기, 수동밸브의 모습. 사진=강희종 기자

이 회사는 기계연구원 등과 함께 액화수소 운반선 개발 과제에도 참여 중이다. 2028년까지 2000㎥급 액화수소 운반선을 제작하는 이 사업에서 수림테크는 액화수소 밸브를 공급하게 된다. 액화수소 운반선이 상용화되면 해외에서 수소 수입이 원활해져 국내 수소 생태계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대표는 국내 수소 산업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수소 수요를 늘릴 수 있는 전방 산업이 발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것이 수소 버스의 보급이다. 수소 버스는 승용차 대비 5배 이상 충전할 수 있어 수소 수요를 크게 확대할 수 있다.

수소 전세버스 2000대로 확대

원더모빌리티는 수소 버스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이다. 전세버스 브랜드인 ‘온버스’를 운영하고 있는 원더모빌리티는 지난 1월 환경부, 현대자동차, 효성하이드로젠, 삼성물산(에버랜드) 등과 함께 ‘수소 전기 통근버스 도입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업무협약에 따라 원더모빌리티는 2030년까지 2000대의 수소 버스를 통근버스용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270여대의 직영 버스를 보유하고 있는 원더모빌리티는 삼성전자, 삼성에버랜드, 현대차, SK하이닉스, LG, 쿠팡, GS, 청담어학원, 크레버스, 경희대, 강남대 등의 통근버스 및 통학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친환경차 전환 추세에 따라 2023년 12월부터 자사가 운영하는 전세버스를 수소 버스로 전환하고 있다.

12일 성수동 본사에서 만난 전수연 원더모빌리티 대표는 "수소 버스는 소음과 진동이 없고 친환경적이기 때문에 고객사 직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원더모빌리티는 올해 수소 버스를 250대, 2027년과 2028년 300대, 2029년 400대, 2030년 500대 추가로 늘려 누적 2000대의 수소 전세버스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전 대표는 "올해 이미 240대 출고 계약을 맺었다"며 "수소 전세버스 확대를 위해 추가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수연 원더모빌리티 대표가 성수동 사옥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전국의 전세버스는 약 4만대다. 전세버스는 택시와 마찬가지로 면허제이기 때문에 그 수를 마음대로 늘리기 어렵다. 수소 버스를 2000대까지 확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업자로부터 면허를 사야 한다. 전 대표는 이 대목에서 정부 정책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23년 제6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타 버스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수소 전세버스의 증차 허가 여부를 검토하기로 한 바 있다.

원더모빌리티는 현재까지 총 62대의 수소 버스를 통근버스로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과 평택사업장, 삼성물산 에버랜드,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수소 버스를 통근버스로 이용하고 있다. 올해에는 현대차, 삼성전기, SK하이닉스, 분당서울대병원, 고대구로병원, 여의도성모병원의 통근버스를 수소차로 전환할 계획이다.

정유석 현대자동차 국내사업본부장 부사장(왼쪽부터), 전수연 원더모빌리티 대표이사, 이병화 환경부 차관, 윤종현 효성하이드로젠 대표이사, 조영민 삼성물산(에버랜드) 상무가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5.1.22. [현대자동차·기아 제공 연합뉴스

다른 전세버스 사업자들이 대부분 지입 차량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원더모빌리티는 직영 차량 중심이다. 그래서 다른 전세버스 사업자들보다 수소차로의 전환이 수월하다. 하지만 전세버스를 수소차로 전환하는 일은 상당한 도전적이다. 아직 수소 생태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자동차 시장은 장기적으로 친환경차로 전환할 수밖에 없고 전세버스는 사실상 디젤차와 수소 버스 2종류밖에 없다"며 "남들보다 먼저 수소 전세버스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과감하게 신규 사업에 진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수소 버스의 출고 가격은 대당 7억원 정도로 고가다. 여기에 정부 보조금,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등을 고려하면 실제 구입 비용은 대당 2억원가량이라고 한다. 차량 가격만 놓고 보면 기존 디젤 버스와 큰 차이가 없다. 전 대표는 "지역별로 수소 버스에 대한 보조금 여력이 다르다 보니 출고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현대차 유니버스 수소전기버스. 현대자동차·기아 제공 연합뉴스

연료비의 경우 정부가 ㎏당 5000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최근 수소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기존 디젤 버스 대비 연료비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이 전 대표의 전언이다.

가장 큰 애로는 충전소다. 전 대표는 "현재 수도권 내 수소충전소는 준공영인 시내버스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민간 전세버스는 후순위로 밀려 수소 충전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경우에는 충전을 위해 3~4시간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기다리다 지쳐 멀리 충북 제천에 있는 수소충전소를 이용하기도 한다.

결국 원더모빌리티는 수소 전세버스를 운영하기 위해 수소충전소를 직접 운영하기로 했다. 수소 충전소 사업을 위해 지난해 12월에 계열사인 원더에너지를 설립했다. 올해 내에 경기 용인 지역에 수소충전소 1호를 구축하기 위해 환경부 공모에 참여할 계획이다. 전 대표는 "200바(bar) 압축 수소를 사용하는 기존 수소충전소와 달리 450바 압축 수소충전소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소 전문기업은 109개 돌파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소경제 이행을 위해 일정한 요건을 갖춘 수소 기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수소 전문기업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수림테크도 수소 전문기업으로 지정돼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은 경우다.

한국수소연합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수소 전문기업은 109개, 예비 전문기업은 48개를 넘어섰다. 정부는 2030년까지 수소 전문기업을 600개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수소 전문기업은 총매출액 대비 수소 사업 매출액이 일정 비율 이상이거나 수소 관련 연구개발(R&D) 투자 금액이 일정한 비율을 웃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매출액이 300억~1000억원인 경우 수소 사업 매출액 비중이 20% 이상이거나 수소 관련 R&D 투자금액 비중이 5% 이상이어야 한다.

수소 전문기업에 대해서는 경영컨설팅, 기술사업화, 판로 개척 등을 지원한다. 또 수소 전문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수소 전문기업 플러스(PLUS)’ 제도도 운영한다. 올해의 경우 수소 전문기업 지원에는 8억3000만원, 수소 전문기업 플러스에는 2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수소 전문기업과 별개로 지자체는 수소 분야 우수 기술과 사업 아이템을 보유한 기업들에 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지원하는 예비 수소 전문기업을 육성하고 있다. 올해에는 9억원을 들여 예비 수소기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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