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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기자수첩] 포스코가 지킨 '강호의 도의', 조선사 이어 받아야
    진명갑 기자
    입력 2025.03.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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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갑 미래산업부 기자
진명갑 미래산업부 기자

"강호의 도의는 땅에 떨어졌다." 무협지와 무협 영화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대사다. 이 대사 속 '도의(道義)'란 사람이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할 도덕적 의리(義理)를 뜻한다.

이 도의는 무협의 세상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글로벌 경제 시대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이익을 좇지만, 그 속에서도 상호 존중과 협력이라는 '도의'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때로는 사업보고서나 재무제표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업계 전체의 생태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조선업과 철강업의 관계도 그렇다. 두 산업은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이면서도, 때때로 치열한 가격 협상을 벌이며 갈등을 빚는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후판 전쟁'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후판은 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철강 판재로, 선박 건조에 있어 필수적인 철강재다. 매년 상·하반기 조선사와 철강사가 협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한다. 올해 협상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지고 있다.

철강사들은 어려워진 업황과 미국의 25% 관세 부과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후판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철강사들의 후판 사업은 수익성이 낮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국가 경쟁력 보존을 위해 후판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선사들은 지난해부터 수주 호황을 이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만큼, 후판 가격 인상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더 이상 국내산 후판에 의지하지 않고, 저렴한 중국산 후판 사용 비율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후판 가격 협상은 각각 업계 선두 주자인 포스코와 HD현대중공업이 주도한다. 특히 포스코는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도의'를 지켜온 기업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선박 발주가 급감하면서 조선사들은 수주 절벽에 직면했고, 비용 절감이 생존의 관건이었다. 포스코는 이 위기 속에서도 조선업계와의 동반 성장을 고려해 가격 인하를 단행하며, 국내 조선산업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국내 판매 가격을 낮추면 해외 수출 고객사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국가 경쟁력을 고려한 대승적 차원의 결정이었다. 당시 철강업계는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조선업계가 버틸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렇다면 이제 조선업계가 철강업계를 도울 차례가 아닐까?

현재 철강업계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 원자재 가격 변동성 확대, 공급망 불안 등 복합적인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여기에 중국산 저가 후판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국내 철강업체들은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해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138만 톤으로, 전년 대비 23.1% 증가했다. 가격 또한 국내산 후판보다 톤당 20만원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는 이러한 점을 이유로 국내 후판 사용을 줄이고 중국산 후판 비중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국내 조선업에도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포스코와 같은 국내 철강업체들이 경쟁력을 잃으면, 결국 후판 공급망이 무너지고 조선업계도 중국산 후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조선업과 철강업, 두 산업이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결국 공멸할 수밖에 없다.

조선업과 철강업은 오랫동안 함께 성장해온 동반자다. 단기적인 원가 절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내 철강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한 전략임을 인식해야 한다.

포스코는 과거 어려운 시기에 조선업계를 위해 희생하며 '강호의 도의'를 지켰다. 이제 조선업계도 과거를 돌아보고, 철강업계와의 상생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무협 소설에서 도의를 지키지 않는 자는 결국 몰락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경쟁 속에서도 협력과 상생을 지키는 것이 결국 양쪽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조선업과 철강업이 다시 한 번 상생의 항해를 이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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