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40대 중반 직장인 A씨는 출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책상 한쪽에 늘어놓은 건강기능식품을 한 움큼 섭취한다. 아침에 먹는 건 유산균과 종합비타민, 비타민D, 오메가3, 밀크씨슬, 루테인. 오후 시간 잠시 나른해질 땐 홍삼 스틱을 하나 꺼내 물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엔 마그네슘과 콜라겐도 먹는다. A씨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이인데, 한해 한해 체력이 달리는 게 느껴져 몸에 좋다는 건 다 챙겨 먹게 된다"며 "매달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효과가 좋다면 조금 비싼 제품이라도 기꺼이 구매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건강·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누구나 손쉽게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을 구매하고 한두 가지 이상 챙겨 먹는 시대가 됐다. 최근 저렴한 가격으로 눈길을 끈 '다이소'표 건기식과 관련해 일부 제약업체와 약사 단체가 충돌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할 정도로 논란이 된 배경에도 건기식에 대한 이 같은 높은 관심이 자리하고 있다.
건기식이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과학적인 근거를 평가해 인정한, 인체에 유용한 기능성을 가진 원료나 성분을 사용해 제조 또는 가공한 식품을 일컫는다. 다만 말 그대로 '식품'일 뿐 질병을 치료 또는 예방할 목적으로 복용하는 '의약품'과는 구별된다. 19일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2020년 5조원 수준이던 국내 건기식 시장 규모는 지난해 6조440억원으로 성장했다. 건기식 구매 경험률은 82.1%로 국내 10가구 중 8가구가 연 1회 이상 건기식을 구매했고, 가구당 평균 구매액도 연간 약 34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기간을 거치며 급격히 성장한 건기식 시장이 최근 2~3년간 다소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고령화에 접어들면서 소비력 있는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데다 20~4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건강을 중시하는 풍조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도 기업들이 건기식 시장에 새로 진출하거나 사업을 강화하는 이유다.
이정민 트렌드랩506 대표는 "건기식 시장이 특정 연령이나 성별의 한계를 벗어나 전 연령층으로 확장된 '모두의 시장' 시대가 도래했다"며 "젊은 세대가 '저속노화' '비만 방지' '스트레스 관리' 등의 이슈에 관심을 가지면서 주요 소비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3년을 기준으로 식약처에 등록된 국내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는 약 12만7400곳, 이들이 생산하는 품목유형만 3만7000여건에 달한다.
홍삼이나 비타민 제품처럼 소비자들이 장기간 믿고 구매하는 '스테디셀러'도 있지만 건기식의 인기는 특정 성분의 유행이나 광고, 입소문 등 마케팅에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장 건강이 중요하다며 한동안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가 필수인 것처럼 유행을 타다가, 간 기능 보호 효과가 있다는 밀크씨슬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피부 개선 효과가 있다며 콜라겐 제품이 인기를 끄는 식이다.
인기 연예인이 방송에서 언급해 판매가 급증하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 직접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바이럴 마케팅을 하고 공동구매까지 하면서 판매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말 그대로 '시류를 잘 타면 대박 나는' 아이템이다 보니 수많은 군소업체가 수백가지 비슷비슷한 상품을 내놓고 난립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건기식은 그 어떤 먹거리보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소비자들의 취사선택이 자유롭다 보니 판매·제조사 입장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라며 "끊임없이 광고·마케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들고, 이것이 결국 제품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이소의 저가 건기식이 국민적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킨 건 가격과 유통망 측면에서 기존 건기식과 차별화를 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건기식 시장은 온라인 판매가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편중돼 있고 가격 정책도 '1+1' 또는 3개월·6개월분 등 대용량으로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반면 다이소는 오프라인에서 소비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소량(1개월)씩 구매할 수 있는 이점을 내세웠다.
건기식 시장이 이처럼 성장하면서 건기식을 둘러싼 제약업체들의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제약업체의 경우 이미 갖춰놓은 의약품 생산시설을 통해 손쉽게 건기식을 개발·생산할 수 있는데다 높아진 건기식의 인기에 힘입어 비교적 수월하게 매출을 올릴 수 있어서다.
심지어 기존의 대표 의약품을 건기식으로 전환한 경우도 있다. 동아제약은 당초 일반의약품으로 허가받은 혈액순환개선제 '써큐란'을 건기식으로 재론칭했다. 휴온스가 복부비만 치료제로 내놓았던 '살사라진', 안국약품의 안구질환 의약품 '토비콤' 등도 비슷한 사례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다이소의 건기식 매출이 순조롭게 나오면서 업체들이 건기식의 오프라인 판매 가능성을 확인했고, 소비자들도 건기식의 합리적인 가격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일부 제약사가 약국들의 반발에 못 이겨 다이소 입점을 포기하더라도 조만간 다른 업체들이 추가 입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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