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 발생 이후 결제 서비스까지 모두 차단하면서 사실상 잠정적 영업 중지 상태에 돌입한 명품 플랫폼 발란이 결국 우려대로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에 착수했다.
‘제2의 티메프 사태’를 우려하는 것은 판매자(셀러)들 뿐만이 아니다. 불과 몇 주 전 발란에 15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며 사업 성장을 약속했던 화장품 유통기업 실리콘투 역시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업계에선 실리콘투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날 발란은 “올 1분기 내 계획했던 투자 유치를 일부 진행했으나, 당초 예상과 달리 추가 자금 확보 지연으로 단기적인 유동성 경색에 빠지게 됐다”며 “파트너들의 상거래 채권을 안정적으로 변제하고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발란 미정산 사태’는 지난 24일 발란이 시스템 재점검을 이유로 일부 입점사에 정산대금을 입금하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발란은 본래 입점사별로 일주일, 15일, 한 달 등 세주기로 입점사의 판매대금을 정산하는데 당일 정산 주기가 돌아온 입점사에 대금을 제때 주지 못한 것이다. 발란의 월평균 거래액은 300억원 안팎이며, 전체 입점사 수는 1300여개다.
회사는 이후 공지를 통해 28일까지 파트너사별 확정 금액과 지급 일정을 공유할 계획이라고 알렸지만, 정작 당일(28일) 최형록 발란 대표가 입장을 번복한 데다 입장문에서 정산금 지급 일정에 대한 언급이 빠지면서 논란은 점점 커졌다.
더군다나 현재는 결제 서비스까지 전면 중단된 상태다. 결제창에는 ‘모든 결제 수단 이용이 불가하다’는 안내문만 나와 상품 구매·결제가 모두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신용카드사와 전자결제대행(PG)사의 서비스 중단뿐만 아니라 발란의 자체 결제서비스인 발란페이도 사용 불가능하다.
정산 시스템 오류, 전직원 재택근무, 기업회생 돌입 등 일련의 사건 흐름이 지난해 유동성 위기로 촉발된 티메프 사태와 유사한 흐름을 보이면서 이미 업계 안팎에선 판매자(셀러) 보상 방안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은 투자사 실리콘투도 마찬가지였다.
물류, 유통망을 활용해 중소 K뷰티들의 글로벌 진출을 도와온 실리콘투는 이달 10일 발란에 무려 150억원을 투자해 주목받은 바 있다. 경영난에 처해 있던 발란 입장에선 구원투수나 다름없었던 데다, 지난 2022년 10월 이후 2년 4개월 만에 유치한 투자였기 때문이다.
해당 건은 발란이 발행하는 전환사채(CB)를 인수해 1·2차 두 차례에 걸쳐 75억원씩 투자하는 형태며, 실리콘투는 지난달 28일 이미 투자금의 절반인 75억원을 지급했다. 나머지 75억원은 올해 11월1일부터 내년 5월1일까지 매달 1일 기준으로 직매입 제품 판매 비중 50% 이상, 매월 영업이익 흑자 등 거래 조건을 충족하면 지급하기로 약정한 상태다.
계약 당시 발란이 여전히 연간 적자 및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었던 터라 실리콘투의 투자 소식이 한층 더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주부터 벌어진 일련의 미정산 사태에 졸지에 실리콘투까지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이다.
업계 내에서는 발란이 기업회생 및 정산 지연 문제를 실리콘투 투자금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냐는 분석도 나온다. 발란이 기업 가치를 이전의 대폭 깎아가며 투자를 유치한 것도 정산 자금을 확보를 염두한 조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발란이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하면서 실리콘투로부터 받은 선투자금이 셀러들에게 지급될지 여부도 미지수로 남았다. 기업회생 절차가 시작되면 모든 채무가 동결되고, 법원은 관리인을 지정해 자금관리와 경영 활동을 맡기게 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발란에 대한 투자를 하기 전 실사를 통해 이번 미정산 사태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일단 실리콘투는 대외적으로 일련의 발란 사태에 대해 공유받은 내용이 없어 상황을 파악 중이며, 글로벌 시장 확장에 대한 비전을 보고 투자를 단행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발란에게 현재 플랫폼 정상화 및 소비자·판매자 신뢰 회복이 급선무로 떠올랐기 때문에 실리콘투와의 전략적 협업, 글로벌 사업 확장 등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고 밝혔다.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